발리에 산다고? 나 놀러 갈게!
빈말이 아니라 정말 덜컥 표를 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몇 달 전부터 괜히 설레어 그들을 기다린다. 아, 참이슬을 기다리는 건 물론 아니다.
대학 후배는 아기를 안고 왔고, 연애하던 커플은 부부가 되어 왔다.
짧은 일정으로 어렵게 친구들이 오면, 안 가던 우붓 왕궁도 한 번 더 가고, 요가도 같이 하러 가고, 평소에 가지 않던 관광객스러운 식당도 함께 간다. 일상을 과감히 뿌리치고 술도 자주 마시며 관광객스러운 기간을 보낸다. 거주자의 눈에서 방문자의 눈으로 우붓을 다시 보는 것도 좋다.
손님들은 주로 내가 있는 우붓에 머무는데 한 번쯤은 손님들을 데리고 남쪽 해산물 투어에 나선다.
우리가 가는 곳은 짐바란 근처에 있는 끄동아난 어시장. Pasar Ikan Kedonganan
아는 사람만 아는, 관광객들은 모르는 발리의 수산물 공판장이다.
로맨틱 선셋 디너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점심이 더 적당하다.
허름하게 넓은 공간에 좁은 통로가 요리조리 연결되어 있다. 쫀쫀한 생선 비린내가 공기 중에 가득 떠다닌다.
툭 튀어나온 생선 꼬리에 부딪치지 않게 어깨에 맨 가방은 바짝 당겨 들어야 한다. 바닥에는 정체모를 시커먼 물이 흥건하다. 옛날 옛적, 엄마 손 꼭 잡고 신발이 젖지 않게 발가락에 힘 바짝 주고 조심조심 걷던 재래시장 생선 코너처럼.
게들은 꽁꽁 묶여 가지런히 누워 있고, 새우들은 크기별로 색깔별로 그득그득 담겨 있다. 싱싱한 갈치도 있고 이름은 잘 모르지만 구워 먹으면 맛있는 생선들이 여기저기서 눈을 치켜뜨고 있다. 귀여운 아기 상어도,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물고기들도 많다. 몇 번 와 보니 이제 맛있는 생선도 자연스레 골라 담고 흥정도 척척이다. 새우와 오징어, 생선을 골고루 담는다.
건물 바깥으로 나오면, 음료와 밥을 팔며 손님들이 직접 사들고 온 생선을 구워주는 가게들이 여럿 있다.
손님이 없는 테이블에 파리 떼가 시커멓게 붙어 있는 곳은 양념이 매콤하니 좋은데 파리 쫓으랴 입에 넣으랴 손이 쉴 틈이 없다. 너무 더러워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그냥 쓰기엔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숟가락과 포크들은 옷이나 휴지, 물티슈에 한 번 쓱 닦고 먹는 수밖에 없다. 발밑에는 그늘을 찾아 들어온 개들이 손님이 오든 말든 낮잠만 잔다.
새로 생겨 나름대로 깔끔하게 구색을 갖춘 곳은 양념 없이 구운 다음 소스를 찍어먹는 곳이다. 그 집에는 고양이 식구들이 테이블마다 다니며 야옹야옹 귀여운 소리를 낸다. 입으로 들어가던 생선살이나 새우살을 던져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운다.
바람은 살랑살랑, 저 멀리 짙푸른 바다, 매콤한 생선 냄새, 양념이 끈적하게 달라붙은 손가락, 무엇보다 맛있는 해산물에 시원한 맥주 한 잔까지! 오감이 한껏 살아나 팔딱거린다.
이럴 때는 밥도 현지인처럼 손가락으로 먹어야 제맛이다. 빨갛게 매콤한 삼발 소스도 좋고, 양파를 넣어 색은 하얗지만 깔끔하게 매콤한 삼발 마타도 좋다. 강한 양념 냄새는 밥을 다 먹고 손을 씻어도 잘 가시지 않는다.
산처럼 쌓인 새우를 다 먹어치우고 뼈에 붙은 생선살까지 야물게 발라 먹는다.
그렇게 배를 두드리며 이제 꾸따 비치로 노을을 보러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디스커버리 쇼핑몰. Discovery Shopping mall
꾸따는 그렇게 손님들이 와야 한 번씩 가게 된다. 쇼핑몰에 주차를 하고 잠시 흩어져 쇼핑을 한 다음 해가 떨어질 즈음 해변에서 만나기로 했다. 몰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해가 질 때쯤이면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로 가득 찬다.
계단 아래 해변은 관광객, 현지인들이 뒤섞여 북적북적하다.
형에게 서핑을 배우는 조그만 남자아이가 저만치에서 보드에 올라타 있고, 다른 쪽에서는 등치 좋은 개 한 마리가 신나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밭에 철퍼덕 주저앉아 발가벗고 뛰노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가 있고, 풍덩 뛰어들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누나 둘이 발만 첨벙거리고 있다. 땅콩 지게를 진 아저씨가 돌아다닌다. 사진 찍는 연인들을 지나 모래밭에서 나와 해변 길로 잠시 걷는다. 조잡한 액세서리를 파는 가판대들을 지나 다시 계단참으로 돌아와 발에 붙은 모래를 털었다.
어느새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다들 말이 없다.
그렇게 잠시 멈춘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계단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차 안, 분명 누군가는 배가 고프다. 한 사람이 조심스레 입을 열면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배고픔을 이실직고한다.
그럴 때 또 늘 가는 식당이 있다. Renon Restaurant
추천 메뉴는 해물 국수. 메뉴판에는 없는, 역시 아는 사람만 아는 특별 메뉴다. 해물 국수에 나시고랭, 미고랭, 야채 요리 찹차이capchay까지 푸짐하게 시켜 점심 건너뛴 사람들처럼 맛있게 먹는다.
다시 우붓으로 올라오는 길, 어두워진 차 안에 기분 좋은 피로가 흥건하다.
그 피로에 뒤섞여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한국에서 보던 친구들도,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못 봤던 내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그들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한다. 힘차게 앞으로만 전진하느라 보지 못했던 그들의 옆얼굴을, 여기 따뜻한 열대의 햇살 아래서는 찬찬히 들어다 볼 수 있게 된다. 덕분에 관계도 새로워진다.
무사히 우붓에 도착하고,
며칠 후 손님들이 돌아가면,
이제 참이슬을 가져올 다음번 손님을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