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의 여행자들 구경하기
머리가 한 겨울 벙어리장갑 같은 오동동한 체격의 노부인과 입술이 한 여름 바닷가의 비키니처럼 선명한 젊은 여인이 그 날 2층의 첫 손님이다.
1층에 자리가 없어서, 원래는 11시 오픈인 그 카페의 2층은 엉겁결에 문을 열게 되었다. 다리가 불편한지 손잡이를 꼭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벙어리장갑의 뒤를 따라 나도 나선형 계단을, 아주 천천히 빙글빙글 돌아 올라왔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까페 2층의 적막함은 벙어리장갑의 무게와 비키니의 발랄함으로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얼른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직원 하나가 올라와 여긴 11시 오픈이라 주문이 안 된다고 심드렁하게 말한다. 곧이어 다른 직원이 올라와 도대체 누가 올라가도 된다고 했냐며 따져 묻더니 그나마 켜져 있던 형광등까지 모조리 끄고 내려가 버렸다.
벙어리장갑과 비키니와 나는 모두 당황했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침인데도 어두컴컴한 허름한 까페의 2층에 앉아, 셋은 묘한 동질감으로 말없이 기다렸다. 누군가 다시 올라와 주기를, 형광등을 켜 주기를, 커피 한 잔 갖다 주기를.
곧이어 나선형 계단에서 자기 얼굴의 반만 한 링 귀걸이를 한 여자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또 뒤를 이어 막 요가를 끝내고 온 듯한 서로 닮은 젊은 여자 둘이 들어온다.
속으로 생각했다.
'2층도 어쩔 수 없이 영업을 해야겠군.'
어느새 바리바리 풀어 헤쳐 놓은 짐을 싸서 다시 내려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엉덩이가 더 무거워졌다.
적막하던 까페 2층이 어느새 분주해졌다.
벙어리장갑과 비키니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링 귀걸이와 그녀의 남친은 분위기가 별로 안 좋은지 서로 외면한 채 바깥 풍경만 바라보고 있다.
결국 커피가 왔고 음식이 나왔다.
링 귀걸이 남친은 정성스러운 손길로 여자 친구의 음식에 소금을 골고루 뿌려주었지만 서로 좋아 죽는 연인의 분위기는 한참 전에 막을 내린 듯 했다. 서로 닮은 두 명의 요기는 딱 봐도 몸에는 좋지만 맛은 없을 것 같은 음식을 부지런히 먹고 있다. 나는 아까운 커피만 홀짝 홀짝.
어느새 내 옆에는 시커먼 수염이 복슬복슬한 거구의 남자와 별 특징 없는 그녀의 애인이 들어와 나란히 앉아 있다. 둘다 테이블에 선글라스를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킨들로 책을 읽는다. 직원들만 분주하다. 먹기 바쁜 닮은 여자들과 말 없는 연인과 책 읽는 연인 사이에서 벙어리장갑과 비키니의 목소리만 두런두런 들려온다.
2층의 테라스로 무성한 잎을 들이밀고 있는 나무들만 봐도 열대 지방 햇살의 열기가 느껴진다. 바야흐로 열대의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독립 기념일을 맞이해 드높이 매달린 국기가 나뭇잎 사이에서 더위를 피한다. 국기의 강렬한 붉은 색과 깨끗한 흰색의 이미지가 어쩐지 비키니와 벙어리장갑을 닮았다.
구름이 잠시 화가 났는지 햇살로 반짝이던 잎들이 생기를 읽고 2층 테라스 전체가 정전이라도 된 듯 어두컴컴해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바깥만 바라보고 있는 연인들의 뒤통수와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털북숭이의 발가락과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담배 한 대씩 피워 무는 젊은 여인들의 입술을 바라보며
오픈하기도 전에 카페 2층을 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비키니와 벙어리장갑에게 감사를 표하며
나는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방울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