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22일)엔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오늘 날씨는 청명한 가을이지만 어제는 비 온 뒤 살짝 구름은 끼고, 높은 하늘은 가을이지만 낮은 곳에 구름은 떠있고 볕은 또 아직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었거든요. 사람 참 설레게 하는 날씨더라고요. 평소처럼 9시에 매장에 나왔지만, 여름과 다르게 전면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두고 청소를 살짝 했습니다.
꽃집은 가로로 긴 직사각형인데, 앞면이 모두 폴딩도어라 지나가시는 분들과 (원한다면) 눈 맞춤을 계속할 수 있어요. 오전 열 시경에 날이 좋아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한분이 매장 밖 꽃냉장고 앞에서 꽃을 한동안 구경하시더니 언덕 위로 사라지시더라고요. 종종 있는 일이라 (이제는 익숙해진 채로) 시선을 돌렸는데, 몇 분 뒤 되돌이 산책에서 강아지와 함께 매장으로 들어와 집에 둘 꽃 한 송이를 사가셨어요. 강아지도 귀엽고, 꽃은 예쁜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옥수동 아파트 단지들과 주택들 사이에 쏙 자리 잡고 있는 꽃집인지라, 주말엔 특히 오전과 점심시간 지난 오후 세 시경까지에 주문이 몰리는 편이에요. 토요일은 점심약속이나 저녁약속에 가져갈 꽃 주문이 있고, 집에서 푹 쉬고 싶은 일요일 오후는 아주 한가한 편입니다. 이곳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나니 '아 오늘은 한가하겠구나' 하는 감각이 있어요. 어제는 날씨도 좋고, 추석 지난 일요일인 데다가 오전 내내 예약이나 문의전화가 없었어서 산책 겸 스타벅스를 들리러 오후 한시쯤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적어두고 매장을 나섰습니다. 3분 거리의 스타벅스에 도착하기 직전에 매장에서 전화가 와서 후다닥 뛰어올라와 보니 본격적인 등산복 차림에 손님이 계시더라고요. 냉장고 안 꽃병을 보시고 딱 이 정도 꽃병에 꽂을 꽃이 필요한데, 빨간색은 이 것뿐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제가 빨강을 덜 좋아하는 편인지, 매장에 새빨간 꽃들을 잘 두지 않는 편이라 매장에는 맨드라미 다섯 송이뿐이었어요. 빨강이 없으니 진보라 카네이션 전부, 아 그래도 뭔가 부족해 저 진파랑 옥시 전부, 아 뭔가 부족해 저 진초록 전부, 아 노랑은 싫어요 하며 꽃을 열심히 꺼내드렸는데 화병에 꽂힌 색과 모양이 마음에 안 차셨는지, 시간이 없다며 죄송한데 안 사도 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조용한 주말에 귀인이 오셨나 열심히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달래며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왕창 꺼낸 꽃들을 다시 정리하며 나쁜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나도 지금 막 등산을 시작하는 차림새에, 가격을 걱정하는 저와 달리 굉장히 쿨한 모습에 '그냥 지나가시다 잠깐의 유흥으로 들어오신 건가'라는 생각이 자꾸 뾰족이 올라와 서둘러 스타벅스에 다녀와 달달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세 시경에 근처에 계신 다른 관련업계 대표님이 산책하며 들르셨어요. 웨딩에 쓰고 남은 꽃과 풀들, 그리고 사 왔더니 고2 아들이 안 입는다는 가디건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문을 열어두면 어제 같은 날씨에도 살짝 쌀쌀하다 느끼는데, 매장에 두고 막 입으라며 가져온 가디건이 너무 찰떡이라 아까의 서운한 감정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매장 앞에 앉아서 강아지랑 놀며, 얘기하다 보니 하늘이 또 너무 예쁘고, 날씨가 참 좋아서 이 정도면 괜찮은 일요일이다 싶었습니다.
오후 여섯 시쯤부터는 이제 아 오늘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집에 갈까 하는 유혹에 빠지는데, 어제는 손님이 한 명 밖에 없었고! 일곱 시까지 정말 안 올 것 같지만! 그래도 영업시간은 지켜야지 하는 마음으로 셜록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는데, 몇 번 찾아주신 손님이 7시에 꽃다발 예약을 했습니다. 백종원 선생님 말씀처럼 영업시간을 잘 지킨 날 칭찬해 주는 마음과, 손님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해가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맨 끝의 영업시간 한 시간은 참 길고 어려워요. 이렇게 한번 긍정경험을 얻고 나면 한동안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주말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하루 10시간이 정말 매일이 다릅니다. 모든 사장님과 꽃집 사장님들이 다 그러시겠지만 손님이 많고 바쁠 때는 후다닥 지나가지만, 3일쯤 손님 없이 입을 다물고 지내다 보면 10분 사이에 시계를 몇 번이나 보는지 몰라요. 좋지 않은 의미로 한가했지만 또 괜찮게 지나간 한 번의 일요일이었습니다.
빨간 꽃이 없어서 주문을 못 받은 적이나, 매장에서 빨간 꽃을 찾으셨지만 다른 색으로 권해드린 적이 몇 번 기억나요. 그래도 매장에 있어야 하는 색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썩 손과 눈이 가지 않기도 합니다.
하루에 꽃다발을 10개쯤 만들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갑니다. 아쉬운 점은 그랬던 날이 몇 번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10개월 차 새로운 장소에서 별 거 없이 시작하는 꽃집 사장의 넋두리입니다. 마케팅을 할 때는 '자리 잡는데 3년이 기본이야'라는 말을 참 편하게도 했는 데 말이죠.
손님이 안 올 때 매장에서 하는 일들을 글로 남겨야지 싶지만, 보통 여러 영상매체를 보고 책을 읽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다인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깊은 이야기는 조금 더 희망찬 상황이 온다면 적어보겠습니다. 지금의 물 깊이에 다이빙을 하면 분명 다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