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정리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예전에, 출근을 위해 아침에 눈을 뜨면,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거움이 가슴 한쪽에 내려앉았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왜 내 옆에 붙어 있는지 잘 몰랐고
이런 기분을 그냥 무시하고 넘기는 게 익숙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고 감정을 무시하며, 딱히 문제라고 느끼지도 않았던 날들을 보내다
기록을 해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일기를 써보거나 그날의 기분을 정리해 봤지만, 그렇게 몇 줄 적고 덮어버린 노트를 다시 펼쳐본 적은 별로 없었다.
결국엔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만 남았고 다시 일상에 파묻히기가 일상이었다.
어쩌면 감정을 무시하는 게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여러 번 감정을 외면해 보니, 큰일은 나지 않았고 모든 일이 시원하게, 스무스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뭘 원하고, 뭘 두려워하는지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감정을 계속 무시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누군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걸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단 사실을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예전엔 감정이란 걸 ‘극복해야 할 것’으로만 여겼었는데 (지금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요즘은 좀 달라진 게 있다.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이 감정이 나에게 뭘 말해주려는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 자체가, 하루의 무게를 조금 덜어준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체감하고 있다.
얼마 전,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는데, 감정을 억지로 분석하거나 기록하는 대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오늘 하루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고민하고 행동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 감정이 나를 어떻게 움직일지, 뭘 피하고 싶게 만들지 떠올려보고 그 상태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고른다.
무리하지 않고 뭘 해내겠다는 다짐을 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 걸 목표로 둔다.
예전처럼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짧게라도 멈춰서 내 상태를 확인해 보고 거기서 작게라도 행동해 보는 거다.
그 자체로 기분이 달라지진 않지만 내 감정을 완전히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는 전날 밤에 잠을 설쳐서 몸도 마음도 무거웠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움직여야겠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노트북을 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던 순간에 그냥 잠깐 멈춰서 내 기분을 돌아봤다.
지금 내가 이렇게 무기력한 건, 혹시 얼마 전 지인에게서 나를 잘 알지 못한 채 들은 쓴소리가 마음에 남아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니 그때 조금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좀 신경 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날은 거창한 목표 대신
내 노트북에 저장된 내 커리어와 기록들을 살짝 훑어보고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한 시간쯤 걸렸던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던 것 같다.
기존의 감정 기록 구조들은 감정을 선택하고, 그걸 기반으로 통계를 보여주는 게 많다.
그런 방식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감정을 고르고 기록은 했지만 오늘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상태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찾는 방식이 더 맞는다고 느꼈다.
하나의 감정이 왜 떠오르는지 고민하고 아주 작게라도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했다.
어떤 질문이 효과적인지 또 어느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물어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무엇보다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중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 불안할 땐 오늘 해야 할 일 중 가장 쉬운 것 하나만 해보기
- 무기력할 땐 창문을 열고 바람 쐬기
- 답답할 땐 지인, 친구에게 커피 한잔 하자고 먼저 말 걸어보기
이런 식으로 내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내 상태 및 감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다.
감정을 그때그때 짚고 넘어가려면, 단순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을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감정을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마저 지나치게 되고, 삶의 의미나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아주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감정을 가볍게라도 체크하고 그걸 출발점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근데 사실 이렇게 말하면 되게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내가 하는 방식은 매우 소박한 것들이다.
그저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감정 위에서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하나 정하는 것
하루의 끝에 오늘이 어땠는지 떠올리는 것보다
하루 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더 또렷하게 남는 하루를 보내는 것
이렇게 내 감정을 방치하지 않았고,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작게나마 움직여봤다는 사실들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런 날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다음 날이 전날보다 약간은 덜 버거워지는 것 같다.
※ 이 글은 감정 기반 루틴 구조를 실험 중인 개인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고, 계속 조금씩 바꾸고 다듬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능이나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실험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한 틀과 흐름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기능 소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