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yor Swift의 진실되고 견고한 세계를 들여다보다.
아주 한참 동안 내게 Taylor Swift는 재수 없는 천재소녀, 결과물은 늘 좋은데 사람엔 정이 안 가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모델 같은 키와 몸매를 가진 것도 모잘라 음악적 성취는 나날이 눈부셨다. 엄청난 규모의 팬덤이 그녀를 지지하고 가끔 데이트하거나 사귀는 남자들은 모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그녀의 흠을 잡는 가십이나 스캔들을 흥미롭게 소비했고 솔직히 Kim Kardashian과의 전쟁으로 인해 Taylor Swift는 예전만큼의 사랑과 명성을 얻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보란 듯이 반전을 보여줬다. 그동안 고수하던 빼빼 마른 몸에서 건강하고 탄탄한 몸으로, 착하고 모범적인 소녀에서 공격하면 사납게 물 수도 있는 여성으로. 천재라는 수식어만 제외하고 모든 걸 바꾼 것 같았다. 대중은 예전보다 더 열광했고 사랑했다. 그때부터 나도 위기를 기회로 삼는 그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는 시간보다 뭐 볼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는 Netflix의 법칙을 깨고 이례적으로(?) 주저 없이 ≪미스 아메리카나≫를 골랐다.
2020년 마지막 주에 돌이켜보니, 지난 1년간 감상한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 중 하나다. 유독 몇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데 그런 장면들을 위주로 감상평을 적어볼까 한다.
Taylor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고 한다. 이를 말하는 그녀의 북받친 표정은 그 족쇄를 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지 가늠하게 했다. 아마도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착한 소녀'라는 이미지가 어린 그녀에게 사랑과 영광을 한 순간에 가져다준 왕관이자 족쇄이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항상' 노력했다는 게 안쓰러웠다. 노력하지 않았으면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삿대질과 눈총을 마주 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노력하고 싶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그녀는 노력해야만 했다. 언론과 Hater와 언제든 적으로 바뀔 수 있는 타인들이 만드는 '착한 사람의 공식' 안에서 말이다.
스캔들과 거짓 루머가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고 세상 모두가 뱀 같은 X 년이라 비웃을 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그의 세계관은 더없이 위태로웠다.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꾼 앨범이 Reputation이었다. 그 앨범이 그래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스태프의 전화에 그녀는 실망감, 속상함을 애써 억누르고 더 나은 앨범을 만들면 된다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Me! 곡 작업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완성되자 엔지니어가 이렇게 지금까지 모든 게 좋으니 잠깐 쉬라고, 쉬어야 할 거 같다고 말한다. Talyor는 피로와 만감이 교차한 지 얼굴을 가리면서 안 쉬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잘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답한다. 재능만큼이나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무시무시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많은 생각이 드는 장면 중 하나로, 차 안에서 Taylor는 그동안 자신이 몸에 지나친 강박을 가져왔다고 고백한다. 특히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에 누군가 그녀를 뚱뚱하다거나 임신한 거 같다는 얘기를 하면 그녀는 굶거나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44 사이즈를 유지하던 시절, 공연 중간이나 끝에 쓰러질 거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지금은 음식을 먹으면 강해지고 그런 느낌을 받지 않고도 공연은 끝낼 수 있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로 충족할 수 없는 미의 기준이 있다는 걸. 모델같이 마르면 모두가 원하는 엉덩이가 없고, 원하는 엉덩이를 가지면 배는 납작하지 못한, 아이러니를 깨닫고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섭식장애 고백을 넘어서 Taylor 팬덤의 주요층은 10대 소녀이고, 그녀가 Global beauty icon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미스 아메리카나의 감독 Lana Wilson는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왔지만, 그중 Taylor의 섭식장애 고백은 많은 이들은 연대하게 만들었고 특히나 자신의 몸을 미워하고 다이어트와 싸우는 10대들에게 그로부터 벗어나라는 용기를 심어줬다고 인터뷰했다.
Taylor는 어릴 때 '착한 소녀는 자신의 생각으로 남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에 침묵했다. 그게 잘못된 일이란 걸 깨닫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고 침묵을 깨기로 한다. 성추행을 고발했고 이로 해고당한 가해자의 고소에 $1로 맞고소로 대응한다. 결과적으로 승소했지만 그 과정이 치욕스러웠다고. 1년 뒤 Taylor는 무대에서 그 날을 떠올리며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놓인 분들을 위로하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노래한다. 가장 그녀 다운 방식의 응원을.
섭식장애나 성추행 소송에서 더 나아가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일에도 거리끼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가족과 지인들은 이를 말리지만 그녀는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고, 역사의 올바른 쪽에 서고 싶다고 호소한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자신이 고수하던, 가사를 쓰고 노래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단 걸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엔 옳은 선택임을 "13년 동안 자신을 잘못 보여줬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지금껏 있었던 모든 일의 종착역이 이 순간이란 걸 깨달았다"라는 말로 증명한다. 자신의 노래와 행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가져다주는지 알기에 그녀는 바란다. 계속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민감하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이 작품을 계기로 그동안 일궈낸, 두드러진 음악적 성취 이면에 그녀가 어떤 노력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앞으로도 그녀의 행보를 좀 더 애정 있게 지켜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