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11월 말에 작성됐습니다.)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바쁜 한 달.
그동안 바르셀로나, 독일(프랑크루프트와 쾰른), 영국(런던), 이탈리아(밀라노와 피렌체)를 차례대로 다녀왔다.
스스로 다그치기도, 실망하기도, 기뻐하기도 한
1달 여의 시간 동안 내가 한 생각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마드리드에서의 일상은 여유를 잃었다.
한 달 동안 마드리드에서 일상은 비행기표와 숙소편을 알아보고, 여행 일정을 짜고, 짐을 싸고, 여행을 가는 동안 하지 못하는 과제와 집안일을 해결하는 보조적인 일상으로 대체되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여행을 하는 모든 시간은
나와의 끝없는 독대였다.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본 나는 어떤 순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만끽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순간에 최악이었다. 대단한 사건사고 없이 흘러가는 보통의 시간 안에서 가능한 한 가장 별로인 나와 마주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했던 도시는 쾰른이었다.
초보여행자는 내 손으로 선택한 여행지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돌아보니 쾰른은 그저 내 취향의 도시가 아니었을 뿐인데, 나는 그걸 쾰른의 탓으로 돌리는 방법을 몰랐고 초보여행자인 스스로를 탓했다.
왜 나는 직접 선택한 여행지에서 더 기뻐하지 못하지 하며 실망스러운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그다음은 꿈만 같은 런던여행. 고심해서 선택한 모든 행선지가 최고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나 가능한 한 최고로 감탄했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 행선지를 선택해서 가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고, 나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서툴고 우왕좌왕했다.
런던 여행 중 하루는 일정을 비워두었는데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까지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다. 우선 점심을 해결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다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이 방향의 지하철을 타야 하나 반대방향으로 가야 하나 알 수가 없었다.
런던의 가장 붐비는 거리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에서 가만히 정지한 채로 사방으로 난 길 한가운데를 한참 쳐다봤다. 그래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횡단보도의 빵빵거리는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기 시작할 때 나는 정신을 차렸고, 일단 자전거를 타고 아무 방향으로 바퀴를 굴려 붐비는 거리를 벗어났다.
여행에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선택의 결과는 직접 경험하기까지 알 수 없지만,
그 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주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느 도시에, 언제, 얼마나 머무를지, 그 중 어떤 동네를 갈지, 모든 것은 내 결정에 달렸다.
문제는 나의 판단이 시시각각 달라졌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학기가 끝나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유럽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어떤 날은 눈을 뜨니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교환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진 여행의 의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오전에는 모든 여행을 포기할까 싶다가도, 저녁이 되니 갑자기 새로운 여행지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근사한 곳에서 숙박을 하고 싶다가도, 한 시간이 지나고선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싶어서 처음부터 숙소를 다시 알아보기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의 매일 일어났다. 여행을 하는 와중에 거리 한복판에서 이런 고민이 시작되는 골치 아픈 순간도 몇 차례 있었다.
너무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인간(나)를 데리고 여행하기란 참 벅찬 일이었다.
어느 여행에서 나는 낯선 동네를 자신있게 헤치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지겨울 정도로 주저하는 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것도 진실로 나의 일부였다.
내 안에서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일까.
나의 감정과 판단은 시시각각 달라졌고, 가치관도 종종 바뀌었고, 심지어 성격마저도 지난 몇 년간 조금씩 변했다.
나의 뿌리는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건 무엇일까.
내가 감정기복이 심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이라는 사실?
오랫동안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걸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으로 삼아도 되는 걸까?
한때는 풍부한 관심사와 방대한 취향이 나라는 인간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축구나 건축이나 나의 현재 취미생활 중 어떤 것이라도 당장 내일 눈을 뜨면 흥미가 뚝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언제까지 좋아할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다.
다양한 취미생활 덕에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일상이 뿌리가 굳건하고 열매가 풍성하게 맺힌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때가 되면 언제든지 씨를 흩뿌리고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민들레 언덕에 가까웠다.
지난주에는 피렌체에 다녀왔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인생여행지로 꼽는 피렌체...미디어와 지인들의 강력추천으로 다녀왔는데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대부분은 들뜨기보다 잔잔한 배회가 계속되었던 피렌체 여행을 마치고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알고 보니 피렌체에서 보낸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3일 내내 매일 이만오천보 정도를 걸었다.
생각보다 실망한 여행지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기대에 미치치 못했지만 어김없이 열심을 다했다. 쉬지 않고 걷고 보았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가만히 놔두어도 본능적으로 열심을 다하는 사람.
몸이 안 좋아서 몇 일을 침대에서 골골대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나는 성실한 생활자.
기분이 좋았던 순간에도, 나빴던 순간에도, 신이 나서 날뛸 때도, 크게 실망하고 좌절했을 때도
모든 순간에 변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 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던 것 같다.
그 성실함과 진지함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도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지독하리만치 연이어서 생각했고, 이 다음에 어찌해야 하나 늘상 끈질기게 매달렸다.
충분히 행복하고, 안정적이고 씩씩하게 일상을 잘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자주 생각했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부축여 겨우겨우 평지로 넘어오면서 삶의 새로운 막이 열렸고,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아예 다른 페이스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절망했던 시간에도 어김없이 나였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언제나 똑같은 나였다.
그때에도 내 삶에 성실했다.
좋을 때의 자신만만함과 무모함, 나쁠 때의 움츠러듦과 심한 불안감도 모두 삶을 아주 정성스럽게 가꾸는 같은 태도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노력이라는 실험, 실험이라는 노력.
독일, 영국, 스페인을 오가면서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피카소 작품을 봤다.
피카소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이 분은 어찌나 열심히 작품 생활을 했던지
어느 나라의 주요 미술관을 가도 피카소의 작품이 꼭 한 점 씩은 있어서 어쩌다보니 많은 작품을 보게 됐다.
접시나 물병에 물감으로 휘적휘적 그린 그림부터,큐비즘 이전의 화풍, 게르니카를 완성하기 위해 그린 부분부분의 습작과 스케치까지.
이토록 성실한 창작자의 그림을 계속 보다가
문득 피카소가 예술가라기보다 실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들어맞고,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찾기 위해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보는 실험가.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형상들을 휘리릭 그려내는 천재라기보다는 성실한 실험가.
생각해보면 김환기 화백도 뉴욕으로 이주한 뒤 추상주의 화풍을 완성했으니,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화가의 개성을 거의 말년에 와서 발견한 셈이다.
다른 작가들의 개인전도 몇차례 흘끔대고, 이런저런 예술사 이야기를 엿듣다 보니 많은 경우가 비슷했다.
고독의 방에 갇혀서 붓질하고, 지워버리고, 궁리하고, 또 붓질하는 시간의 반복. 작품 한 점 한 점이 마스터피스가 아니라 기점마다의 소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자 실험작인 건가. 목적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끄적이며 실험하는 거, 그런 게 인생인 건가.
'실험'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운 것 같다.
삶이라는 작은 실험실.
그렇다면 나도 자그맣고 평범한 실험실이 있다.
성실한 생활자인 나도 아주 소박한 실험을 일상에서 반복하고 있다.
허겁지겁 아무거나 차려먹는 아침이지만, 하루종일 이어지는 번잡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침을 먹을 때 책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머리를 말리거나 세수하는 시간을 활용해서 스페인어 더빙판 뽀로로를 본다. 가능한 축구 중계도 스페인어 현지 중계로 보려고 한다. 잔뜩 움츠린채 바쁘게 걸어다니느라 허리가 아픈 날이 많아져서 매일 10분 정도 간단한 홈트레이닝을 하고, 자기 전에는 서투르지만 짧은 5분 명상을 한다.
너무 빠르게 밀려오는 과제들과 잔뜩 쌓인 결정들에 짓눌릴 것 같을 때는 최대한 감각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눈을 올려다 보면 발바닥이 지끈거릴 정도로 속도를 벗어나 걷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세찬 바람에도 조용히 살랑거리는 초록이 있다. 몇가닥 남지 않는 햇살이 오후의 막판에 뿌리는 색깔을 보려고 하고, 매캐한 자동차 연기일지라도 거리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에는 반짝거리는 과실 내음이 퍼지는 거리를 걷게 되었다.
여행에서도 다음 행선지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무지 애를 쓴다. 사진을 찍는 게 그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작은 노트와 샤프를 주머니에 꽂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뭐든 휘적거려본다.
세 달 간의 반복된 실험을 통해 이렇게 마드리드에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본능적으로 작고 잦은 실험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 목적지는 보다 평온한 일상이기를 바라며.
힘겨울 때도 있겠지만 결국 편안함에 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