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사임당 Jan 01. 2024

새해 못난 꽃



 새해 아침 제일 못난 꽃망울에 꽃이 폈다. 전시 축하로 받은 꽃다발을 물병에 꽂아 둔지 나흘 만의 일이다. 활짝 핀 갖가지 꽃들 사이 저 혼자 웅크리고 '나 덜 여물었다' 시위하던 녀석이었는데. 처음 꽃다발을 받고서 나는 꽃집 주인의 매정함에 대해 생각했었다. 채 펴보지도 못한 너의 뿌리를 인정 없게 잘랐구나 안쓰러웠다.



 1월 1일의 첫 밥을 먹다 우연히 눈길이 갔다. 시드는 꽃들 사이 너 혼자 새롭게 고조하고 있다. 노란 튤립도, 오렌지 장미잎도 끝이 돌돌 말려들며 향기를 휘발한지 오래인데, 혼자 역행하며 늦은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 것이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얼마 전 화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벽면 곳곳에 걸린 선생님의 작품 속 숨어있는 비밀 얘기였다. 가만 보니 선생님의 작품들엔 공통점이 있다. 아주 크고 화려한 꽃들이 배경을 압도하고, 그 사이로 (대체로 귀퉁이나 아랫 쪽에) 소박하고 작은, 그러나 아주 정교히 묘사된 흰 들꽃이 하나씩 꼭 들어가 있었다. 그냥 포인트인 건가. 막눈인 나는 그렇게만 여겼다.

 그러나 이유인즉, 강렬한 큰 꽃들은 세간의 유명한 화가들을, 구석의 작은 꽃줄기는 우리 선생님을 의미했다. 아, 선생님이 붓으로 하고 싶던 말은 이것이었구나. 자세히 보니 당신이란 꽃은 그 어떤 세밀화보다도 치밀히 그려져 있다. 뜻을 알고 보니 더 돋보였다. 유명해지면, 돈이 많이 따라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간이라면. 선생님의 솔직한 술회에 흔들린 나는 또다시 관념 속 글쓰기를 행하고 있다. 계획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흔히 일컫는 '명작'이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우연히 일궈낸 거품 같은 것이라 했다. 명작은 작가가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소위 '천지 도수'가 맞아떨어져야 나오는 게 명작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그림은 별로인데 관람자가 만드는 명작도 있는 법이니까. 알 수 없단 얘기다.



 모토가 떠오른다. 새로운 해에는 늦게 피는 꽃이 되자. 기대 없던 어느 날 우연히 눈길 가도록.


작가의 이전글 수육, 짠한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