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은 크다.
방학 중 시작한 새벽 기상이 이젠 몸에 배어서 아침에 눈이 잘 떠진다. 아직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책상에 앉아 새벽 기상반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독서를 한다. 조금씩 주변이 밝아지면 출근 준비를 한다. 이런 나의 변화를 보고 딸아이가 신기해한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아침이면 늘 동동거리며 출근을 서둘렀는데 여유롭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엄마 최고! 엄지 척을 해 준다.
겉만 예쁘장하지 속은 쿨한 남자가 하나 들어앉아 있는 딸은 공대생이다. 생각하는 것도 맘 쓰는 것도 지 아빠랑 똑같아 가끔 보호자 같이 굴 때가 있다. 맘도 잘 통해 우리는 늘 소울메이트라고 말하곤 한다. 뚝딱뚝딱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공대생답다. 학교 다니면서 딸이 자발적으로 책 읽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저 꼭 필요에 의한 책만 본다.
그런 딸이 갑자기 얼마 전부터 나보다 더 먼저 알람을 맞춰 놓고 새벽에 일어난다. 일어나 공부방으로 들어가 영어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한다.
"아니, 갑자기 웬 독서를 하시나?"
"글쎄, 요즘 책 읽는 맛을 알겠네. 좋아."
"그래, 책에 뭐라고 쓰여있디?"
"크크크, 엄마한테 잘하래."
"그래, 책에 쓰여 있는 대로 해. 더 분발, 알았지? 흐흐흐"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다 내 덕분인 줄 알았다. 새벽에 일어나 책 읽는 엄마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군! 생각했다. 부모는 자식들이 내가 가르친 대로 자란다는 착각을 한다. 아, 내가 그랬다.
몇 년째 사귀고 있는 딸의 남자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아이가 맘에 쏙 든다. 가끔 전해 듣는 이야기로는 시간 관리를 잘하고, 성실하며 특히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해마다 예쁜 다이어리를 딸에게 건네며 커플로 잘 기록하자며 선물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딸이 한 달 이상을 꾸준하게 기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둘이 너무 다르다며, 딸아이에게 너 무식한 거 들키지 않게 신경 좀 써야겠네 놀려먹었다. 그 남자 친구가 몇 년 공들인 보람이 있는지 딸아이가 올해는 다이어리도 꼼꼼하게 잘 기록하는 것 같다. 거기다 둘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딸의 새벽 기상은 바로 남자 친구와의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나를 본받은 줄 알고 혼자 흐뭇해했었다. 둘이 같은 새벽에 일어나 같은 책을 읽고, 만나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미소 짓게 된다. 듣는 내가 행복해진다.
오늘 아침 새벽에 일어나니, 딸은 벌써 공부방에 앉아 독서 중이다. 나는 나대로 책을 읽었다. 각자 출근 준비를 마치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좋은 하루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