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도망치듯, 어른이 되었다

2막: 어른이 되어도 아프더라 (성인기, 붕괴)

by ARI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초, 중학교를 함께한 친한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1학년이 되자 서로 다른 반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찾아가 인사했을 때

그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좀 사귀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혼자인지를 실감했다.


어쩌면 진심 어린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쓰리고 아팠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부터,

친구들을 가려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조차 버거워졌고

거리를 두는것에 익숙해져만 갔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자리잡은 거리감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학기 초, 반장 선거가 있었고

친구의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이번엔 나도 조금은 달라지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싶었다.

무엇보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어 담임 선생님께 말했다.

“저, 반장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돌아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얘야, 돈 없으면 반장 못 해.

너네 집, 급식 지원받던데?”

그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들켜버린 것 같아 너무 창피했다.


내가 바꾸고 싶었던 건 ‘나’였는데,

내 노력과 무관하게 세상은 내 형편부터 들여다봤다.

그 말을 듣은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내 기회를 뺏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말을 듣은 엄마가 학교로 달려왔다.


교무실밖에서 선생님께 따져 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한테 그래도 되는겁니까?무슨 그런말을 하는거예요?"

엄마는 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계속해서 선생님께 화를 냈다.

그리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선생님은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선 나를 다시 불러들였다.

"너 엄마한테 쪼르르 가서 일렀더라?

이것도 일러보지 왜. 앞으로 학교생활 어떻게 되나 두고보자 너"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조여 왔다.

굉장히 분해서 그랬는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엄마에게는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그날 이후, 학교는 다시 점점 숨막히는 공간이 되었다.

아침마다 눈 뜨기가 두려웠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등교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나에겐 아무런 기회가 허락되지 않는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튀어서 또다시 그런일이 반복될까봐 나는 계속해서 숨을 죽였다.

웃어야 할 때도, 나서고 싶을때도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는 무색하게

어른이 되는 건 선택이 아니었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다.


모두들 대학에 가면 '다 좋아진다, 다 해결된다' 라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마음은 전혀 안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하기만 했다.


개강 첫 주,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던 날이었다.

계산대 앞에 선 나는 문득 예전에 엄마가 책값을 손에 쥐고 망설이던 모습을 떠올렸다.

"무슨 책값이 그렇게 비싸?"

"... 전공 필수과목이라 그런가 봐."


그날의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내게는 책 몇 권이,

엄마에겐 한 달 생활비였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학교를 다니는게 잘하는걸까,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말하는게,

내 마음의 빚으로 이어졌다.


결국 등록금을 낸 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그만뒀다.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서 기회가 되면

그때 다시 공부해야지'라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 애써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며 일찍 사회로 뛰어들었다.


경제적인 상황은 갈수록 엄마에게 힘들기만 했고,

아빠 없이 애둘을 키우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가 엄마를 도우려 해도,

자꾸만 엇나가는 상황들이 갈수록 버거워졌다.

갈수록 말이 사라지는 동생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그 모든게 왠지 내 탓같기도 했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 좀 숨쉬는 기분이 들까?'

그날로 나는 도망치듯 집도 나왔다.


구체적인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매일 조금씩 쌓이던 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엄마의 한숨 소리,

밤에 숨죽이며 흐느끼는 소리.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 집을 나선 날,

고시원 방에 홀로 앉아 있자 그 좁은 공간이 오히려 감옥처럼 느껴졌다.

작은 침대와, 조그마한 싱크대, 화장실만 있는 공간을 보며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자유로워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낯설고 공허할까 싶었다.

혼자가 되고 싶어 했던 내가, 정작 혼자가 되니 더 외로웠다.


독립 후엔 생계를 위해 뭐든 했지만,

그마저도 그만두기에 급급했다.

잠깐 일하고, 금세 지치고, 다시 그만두길 반복했다.

그렇게 손에 쥔 돈은 늘 공허함을 채우는 데 쓰였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샀다.


옷을 사고, 할인하는 생활용품을 모았다.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돈이 생기는 대로 자꾸만 무언가를 사는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멈추질 않았다.

점점 통장 잔고는 비어갔고, 그럴수록 마음이 불안해져갔다.


퇴근후엔 저녁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놀았다.

처음엔 친목을 위한 만남들이었지만,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단지 시간을 떼우기 위한 핑계인 것만 같았다.

마음 속에 허기는 나날이 계속해서 늘어만 갈 뿐이었다.


누군가를 만나 외로움을 덜어보려 했다.

말없이 바라봐 주는 누군가를 바랐지만,

마음을 내보일수록, 점점 더 혼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욱더 조심스러워졌다.

사람을 믿는 일도,

기대하는 일도,

차츰 줄어들었다.


어느새 완전히 혼자가 익숙해졌고, 그게 편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뭔가 비어가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무언가로 채우려 애쓸수록,

나는 점점 더 텅 빈 깡통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