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 착한아이의 탄생

1막: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견디던 시간들 (과거)

by ARI

다음날, 학교를 다녀오니 아직 아빠가 있었다.

다녀왔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채 내 방으로 들어가려 할때였다.

"아빠랑 잠깐 나가자, 할 얘기가 있다"

아빠의 표정을 보니 화가 난것만은 아닌것 같아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릴때처럼 차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묘하게 어린시절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반가운 아빠와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 좋았는지 묘하게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그런 나를 보며 아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주야, 아빠가 자리 비우는 사이에 많이 힘들었니?"

다정한 아빠의 질문을 듣자 마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응..아빠도 보고싶고, 나는 그러려던건 아닌데,

엄마랑 맨날 다투고 그러기 싫어서 집에 오기 싫었어.

그러다 보니까 친구들이랑 어울렸는데...내가 미안해 아빠"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속마음이 하나씩 새어 나왔다.


아빠는 자기도 많이 보고싶었다고 했다.

그 동안 상황을 수습하느라 떨어져 있었던 시간에 무얼하고 있었는지 설명해주셨다.

애견훈련소를 차리게 되었다고, 그래서 아빠가 그동안 바빴다고 그랬다.

다들 힘들었을 마음을 안다고,

그렇지만 그럴때일수록 더 뭉쳐야 하는게 가족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아빠 대신 내가, 엄마와 동생을 많이 도와주고 돌봐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이상하게 마음에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고 숨이 막혀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에겐 알겠다고,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며 밝게 웃어보였다.

또다시 아빠를 실망시키기 싫었다.

이제라도 내가 뭔가를 잘 해내면, 아빠도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도 생겼다.


아빠는 잠시 시간을 내서 온거라고,

다시 돌아가야 하니 다음에 아빠에게 놀러오라는 말을 남기고 지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와 다시 대화하게 되었다.

"어제 무슨일이었어?"

"그게.. 친구들이랑 놀러갔는데, 이상한 음료수를 마셨어."

엄마가 그게 뭔지 물었고, 초록병과 이온음료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량스런 친구들과 어울린다는걸 아는 엄마는,

내게 얘기했다.

"너 이제 학교 마치고 집에 바로 와라."


아빠의 부탁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후여서 그랬는지,

엄마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답답했던 마음이 더 조여오는것 같았다.


"친구들도 만나지 말라고?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것도 내맘대로 못해? 싫어!"

엄마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러버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를 뒤로하고,

씩씩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괜히 엄마에게 화를 내버렸다고 후회가 됐다.

엄마도, 아빠도 실망시키기 싫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었다.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끔찍한건, 통제되지 않는 내 마음이었다.

이따금씩 불쑥불쑥 찾아오는 먹구름같은 것들이 자꾸만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꾸만 이렇게 엄마랑 멀어지기 싫었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사과하고, 다시 잘 지내고 싶었다.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나를 못본척했다.

아직 화가 많이 난것 같았고, 나는 무슨말을 꺼내야할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할지, 아니면 아까 그런뜻이 아니었다고 해명을 해야할지 망설였다.

한참을 거실에서 서성였다.

그러다 이내 입을 닫고 내 방으로 갔다.

엄마의 무거운 어깨를 보니 아무 소용이 없을것 같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도 아빠가 그리웠던 거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본 아빠가 너무 반가웠지만,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이 엄마도 힘들었던거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돌아가기전 아빠가 차안에서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어려울때일수록 가족이 더 뭉쳐야 한단다."


괜히 내가 엄마와 아빠를, 동생을 더 힘들게 한것 같았다.

뭉치게 하기는 커녕 더 흩어지게 한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는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야 겠다고,

그리곤 학교를 충실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사라질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힘든 엄마와 동생을 더이상은 괴롭게 하기 싫었다.


나도 이렇게나 힘든데,

엄마랑 동생은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무거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앞으론 말썽 부리지 말자고 결심했다.


착한 아이가 되면, 뭔가 나아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