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나쁜 아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야

1막: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견디던 시간들 (과거)

by ARI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엄마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늘 무거운 얼굴이었다.

점점 엄마도 무표정인 날들이 늘어갔다.

엄마를 살피다,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엄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학교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엄마와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내 어리광을 받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그 마음조차 꺼낼 곳이 없던 나는, 속으로만 조용히 마음을 닫아갔다.


갈수록 엄마와 다투는 날들이 늘어났다.

내가 예민한 건지, 엄마가 피곤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탓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먼저 짜증 냈잖아."

"내가 언제 짜증 냈다고 그러니. 안 그랬다고 했잖아?"

"엄마는 맨날 말투가 그렇잖아."

그 말은 들은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싶었다.

엄마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텐데,

내가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찔렸다.


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내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언젠가부터 마음이 이상해질 때마다,

이불속으로 도망치는 버릇이 생겼다.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해야 이 감정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눈을 감고 그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초등학교땐 곧 잘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던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초등학교 때 내가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시작한 공부는 곧 잘 오르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학원에서 추천한 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을 거두자,

점점 나는 욕심이 생겼다.


3등, 2등, 1등.

경시대회에서 받는 상장의 순위가 달라질 때마다

내심 뿌듯했다.


어서 이 결과들을 엄마, 아빠에게 알리고 싶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달려가 그 소식을 전하는 날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 나를 축하해 주었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해줬다.


그 행복도 잠시,

공부에 흥미가 떨어져 갔다.

아니, 하기 싫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누구에게도 칭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걸 의미 없게 만들었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이젠 왜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수업도 집중하지 않게 되고,

학교도 자주 빠지게 되었다.

불량스러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빠지고 놀러 다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얘기했다.

"오늘 다른 학교 친구들 만날 건데, 같이 가자!"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좋은 이유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어느 공원에서 모인 친구들은

주섬 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이온음료와 술로 보이는 초록색 병이었다.

내게 놀러 가자던 친구가 음료를 섞은 종이컵을 나에게 밀었다.

"먹어봐, 맛있어. 기분도 좋아져!"


기분이 좋아진 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위험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곧장 그 음료를 들이켜고 말았다.


그때를 시작으로 우리는 그 음료들을 다 비워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밤이 되어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먼저 간다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뛰어갔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괜히 불안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 응?"

당황한 내 얼굴 앞에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와 밤늦게 들어온 나를 본 엄마는

엄마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너 지금 몇 시야? 이런 날 자주 있었던 거냐?”

아빠의 손에 이끌려 내 방으로 끌려들어 갔다.

"이게 무슨 냄새야, 술냄새 아니야? 너 술 마셨어?"

"....... 그게 술인지 몰랐어요"

거짓말이었다.

술인 줄 알고 마셨지만, 오랜만에 본 아빠를 실망시키기 싫었다.

"너 엄마 표정 보니까 늦게 들어오는 일도 잦은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도대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아빠가 반갑기도 하고

동시에 밉기도 한 나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아빠가 얘기했다.

"여보 집에 회초리 있지? 그거 들고 와봐요."

엄마는 화가 난 아빠를 말리면서 얘기했다.

"매일 그런 건 아니야, 애도 모르고 그랬다니까 우리가 한 번만 봐줘요, 응?"

"당신은 나가 있어요, 내가 없으니 애들이 엄마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오늘은 내가 혼낼게"

아빠는 있는 힘껏 회초리를 후려쳤다.

그 순간 아빠의 손에 있던 회초리가 '툭’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났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집에 와있는 줄 알았으면 집으로 곧장 오는 거였는데,

친구들을 따라 놀러 간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빠가, 그날따라 유난히 미웠다.

그 감정이 너무 낯설고, 또 너무 서럽기도 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던 동생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누나... 괜찮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럽게 울어버렸다

그리곤 내 방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생은 그런 나를 보다 자리를 비워주었다.


밖에서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점점 더 괴로운 마음에 이불로 귀를 틀어막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또다시 찾아온 이상한 감정 때문인지 모를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았고,

나조차 내가 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