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대부분은, 수능을 마치고, 혹은 대학에 입학한 후 방학 때 면허증을 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차피 바로 운전 못하면 그것이 장롱면허가 된다!! 하며 면허증을 따지 않았다. 내가 차를 살 수 있을 때, 그때 면허증을 따서 운전을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주 생활권이 서울이다 보니 버스와 지하철, 급하면 언제든 탈 수 있는 택시가 지천에 널려있었고, 전국을 들쑤시며 여행을 다녀도 기차와 버스만으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행으로 간 지방에서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것도 낭만이지 이랬었다.
아이를 낳고는 왜인지 운전이 필요할 것 같아, "나의 장래희망은 베스트 드라이버야."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서울 곳곳을 누볐다. 지하철엔 엘리베이터가 잘 되어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미처 없는 역에는 역사 직원이나 사회복무요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저상버스가 늘어나면서 유모차로 버스도 탈 수 있었다. 가끔 유모차로 대중교통을 타면 눈총을 받아서 힘들었다는 후기들이 있었는데, 나는 감사하게도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아이는 이쁨 받는 걸 즐기며 다녔다. 그리고 병원을 급하게 가야 하는 상황에는 카카오택시로 어렵지 않게 병원을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해야 하는 삶이었기에 운전면허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김포로 이사가 결정이 되었다. 먼저 김포에 이사 간 언니가 "너 꼭 면허증 따서 이사 와라."라고 비장하게 이야기했다. 때마침 아이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오전시간이 여유로웠다. 필기시험을 위해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훑어보곤 가볍게 패스, 그러곤 운전면허 연습학원에 가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는 백만 원이 조금 넣는 강습을 등록했다. 남편이 학교 다닐 때 면허증도 안따고 뭐 했냐고 농담조의 타박을 했다. 그때 땄으면, 지금 백만 원짜리 도로주행 연수를 받았을 거라고, 내가 이번에 따는 대신 도로주행 연수는 받지 않겠노라 선언을 했다. 학원에서 연습을 하고 온 날에는 마치 차를 온몸으로 끌고 다닌 듯, 삭신이 쑤셨다. 너무 긴장한 상태로 온몸에 힘을 주고 운전해서 그렇다던데,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알면서도 힘을 뺄 순 없었다. 그나마 장내 코스는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도로주행을 나가니 막 심장이 터질 듯 무서웠다. 세상 모든 차들이 다 나를 위협하는 것 같았다. 나름 차 적은 곳을 코스로 잡아놨으나, 무려 안양천로를 타야 했기 때문에, 도로주행 연습을 하고 온 날엔 앓아누워야만 했다. 그래도 코스, 도로주행 모두 한 번에 합격해서 남편한테 자랑스럽게 면허증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도로 주행 시험 보던 날, 내가 차선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던 도로 위에 그 운전자 선생님과 그 가족들의 평화와 안녕을 빈다.
그렇게 ‘장래희망-베스트드라이버’에 한발 다가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