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4
신정 설날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비용을 대 주신 산후조리사가 하루 자리를 비웠다.
나는 처음으로 아기를 혼자 돌보고 있었다.
J는 신정 설을 지내는 본가에 새해 인사를 하러 갔다.
그날은 아이가 태어난 지 보름쯤 지난 때였다.
얼마 뒤, J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집에 있는지 묻는 전화였다.
안부 인사 없는 냉랭한 목소리였다.
아주머니가 안 계신다고 하자,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설음식이라도 나눠 주려나,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앞장서 들어온 J의 뒤로, 그의 부모, J의 형 부부와 아이까지 집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J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은 부엌을 향해 있었다.
더웠던 집안이 그들의 겉옷에 묻어 들어온 차가운 겨울 공기로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J의 어머니는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며느리 년들이 시어미 욕하고 있었냐!”
무엇에 놀라야 하는지 순간 판단할 수 없었다.
J의 아버지는 불편한 얼굴로 부엌을 가로질러 소파에 앉았다,
J의 형은 식탁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의 입꼬리는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형수는 현관 앞에서부터 울기 시작했고, 그녀의 딸은 엄마 옆에 숨듯이 붙어 있었다.
몇 걸음밖에 안 되는 거실과 부엌에 일곱 명이 모이자,
내가 피할 자리는 없었다.
나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순간의 일탈이라고 믿고 싶었다.
J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교육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들이 허락된다는 사실을,
나는 자꾸만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J의 어머니가 나에게는 형수 이야기를, 형수에게는 내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내가 J에게 말했을 때,
그는 아들을 낳았다고 칭찬만 했다며 믿지 않았다.
J는 그날 아침 본가에 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정말 그런 말을 했느냐고.
J의 질문이 던져진 순간부터,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설명조차도 할 필요가 없는 듯 그녀의 대답은 분노로 대신했다.
늘 그랬듯, J의 예상에는 반전이 있었고
그 질문의 답은, 아침상을 마친 사람들의 방문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J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J의 형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나라님 말도 뒤에서는 할 수 있다며 며느리 사이의 말을 왜 남편에게 옮기느냐고 했다.
방 쪽을 향해 틀어 앉은 채 누구를 보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본가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이렇게 여유로워 보였다.
J가 나에게 사준 작은 가방도 문제였다.
이십만 원남짓 한 가방,
긴 연애 동안 이 삼만 원짜리 선물만 받다가 첫 아이를 낳고 받은 것이었다.
그 일은 형수를 통해 J가 너무 고마워 내 친정어머니에게 가방을 사주었다는 말로
J의 어머니에게 전달됐다.
사실을 정정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시어미는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데, 가방을 선물로 주고.”
나는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딱딱한 식탁 의자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산후조리를 머릿속에 그렸다.
아들을 낳고 석 달 동안 이불속에만 있었다던 J의 어머니와,
미역이 꺾이지 않도록 통째로 들고 미국으로 왔다가
J의 형의 등쌀에 못 이겨 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던
형수의 친정어머니를 함께 떠올렸다.
시간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더 빨리 흐르진 않았다.
‘도대체 언제쯤 가는 걸까.’
허리는 칼로 에이듯이 아팠고, 꼬리뼈에는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잠깐이라도 일어나고 싶은 생각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몸의 감각은 점점 살아나고 있었고 신경은 방에서 계속 울고 있는 아이에게 붙잡혀 있었다.
내 귀에만 들렸을 리 없었을 텐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겨우 허락을 얻어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안았다.
얼굴이 벌게져 울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살아있는 것들은, 그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야 했다.
방 밖의 소리가 아이의 침대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만큼은 그들과 분리되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안에서 그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들이 언제쯤 나를 찾을지 잠시 생각했다.
다시 방 밖으로 나왔지만 J의 어머니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형수는 마침내 자신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하며
J의 어머니 발치에 무릎을 꿇고 울며 빌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이 무대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날, 그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아들이 태어난 지 삼칠일은커녕 보름도 되지 않은 집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여러 번 생각했다.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놀라움은 두려움으로 둔갑해 나를 떨게 했지만,
무릎 위에 포개졌던 내 손은 어느새 주먹으로 꽉 쥐어져 감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떠들도록 그저 두었고 끝내 사과하지도 빌지도 않았다.
그날,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녀가 그렇게까지 소리를 질러야 했던 이유였다.
내가 그녀의 욕을 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내 욕을 했던 걸까.
내가 무릎 꿇기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저녁때가 되어 허기가 졌는지, 그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J는 말리지도 끝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가 그 좁은 집의 어디쯤 앉아 있었는지, 혹은 숨어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달랠 때 옆에 있다 다시 사라졌다.
그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채,
일그러진 얼굴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도 내 귀는 한참 동안 그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날 친정어머니가 집에 들렀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고도 나에게 아무 말 없이, 굳은 얼굴로 아이만 살폈다.
어른들을 믿고 따르면 아무 탈이 없을 거라 생각한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그 믿음이, 그날의 침묵이 되었다.
엄마가 된 몸은, 버티는 쪽으로 먼저 기울어졌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그녀의 마음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