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주지 않는 것들-며느리의 병실

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3

by 정아린


형수는 J의 형과 어머니가 나눈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내 동생이 변변치 않으니

친정의 재산은 J의 것이라는 말과 상놈의 집안이라는 말까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말을 옮겼다.

그 심정을 헤아려 보았지만, 그것이 내게 큰 위로가 되진 않았다.

결혼하고 일 년 반,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버스에서부터 배가 심하게 뭉쳤다. 임신 칠 개월이 조금 넘은 때였다.

이전에도 뭉치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불안해진 나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진료를 받고 있던 학교 선배의 병원에 들렀다. 상태를 확인한 선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래도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나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배가 계속 조여 왔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누워있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

병원에서 J에게 연락했다.

응급실을 거쳐 몇 가지 처치를 받은 뒤, 열 명이 넘는 산모가 함께 누워 있는 큰 방으로 옮겨졌다.

분만실과 연결된 입원실이었다.


친정어머니가 먼저 도착했고, J와 J의 어머니도 곧 들어왔다.

결혼식장에서 본 것 같은 J의 어머니의 침착한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시선 아래에서 누워 있는 것이 불편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간호사와 의사가 나를 눌렀다.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지금 태어나면 위험해요.”


내 팔에는 주사가 더 꽂혔다.


“아기 폐를 성숙시키는 약이에요.”


처치 후 잠시 안정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분만실에 가장 가까운 문 옆 침대에 남게 되었다.

일어날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다.

정신은 흐려지는데, J의 어머니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J는 국민학교 때부터 반장을 도맡아 했어요.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수도 없이 들은 이야기였다.

의사나 간호사가 듣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이,

친정어머니의 “아, 예.”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J의 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아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 궁금했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안정을 되찾자,

친정어머니만 남고 모두 돌아갔다.

J는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며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나갔다.

이 상황에서 아들 이야기만 들었다는 친정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간병은 할 수 없다고 하며, 바로 간병인을 구했다.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된 나는 다음 날부터 간병인과 지냈다.

내 피부를 보고 놀랐던 친정어머니가 보내준 어성초 물로 몸을 닦기 시작하면서

잠시 가려움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갑자기 병원에 들어온 나는 그 뒤로 한 달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병실에는 여러 명의 산모가 함께 있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병실의 온도는 높았다. 땀이 나자 피부는 다시 간지러워졌다.

아기를 포기하고 병원을 나가는 산모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긁었다.


의사들이 내 상태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피딱지로 덮이고 부풀어 오른 몸과 달리, 얼굴에는 흔적이 없다는 것을 보고

교과서에만 보던 임신성 피부병이라고 했다.

담당 의사의 배려로 나는 분만대기실 맞은편 이인실로 옮겨졌다.


형수가 병문안을 왔다.

신생아는 빨강, 검정에 잘 본다며 모빌을 사 왔다.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음악이 나왔다.

뱃속의 아이와 병원생활에 대해 묻던 그녀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본가에서 동서 때문에 다툼이 났어.”


나는 모빌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도련님이 병원비가 없다고 빌려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거절했어.”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피를 흘리는 것도 아닌데,

간병인까지 두고 비싼 이인실에 그냥 자빠져 있다고 했어.”


잠시 숨이 막혔다.


“아버님이 몸이 약한 것은 결혼 전부터였으니, 친정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무거운 배와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모빌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아이에게서 내게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녁에 들른 J에게 물었다.

그는 빌려줄 돈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자기도 돈이 없다고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간병인이 병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나는 친정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이유를 묻지 않고 병원비와 간병인 비용을 내주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추리소설들을 펼쳤다. 간호사들이 내 배와 책표지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나는 책장 사이에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덮쳐왔다.


나는 몇 번이나 분만실로 옮겨졌다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아기의 폐가 어느 정도 성숙된 뒤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대학 선배 의사의 병원에 다시 들렀다. 아기가 약할 수 있다며 좋은 우유를 권했다.

일반 분유보다 훨씬 비쌌지만, 나는 그것을 사고 싶었다.


J에게 말을 꺼내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다시 본가에 가서 이야기를 꺼냈고, 그의 부모는 거절했다.


나는 친정 부모님께 사정을 말했다.

입원 이후 레슨을 할 수 없었고 생활비도, 우윳값도, 기저귀값도 없었다.

부모님은 별다른 말 없이 우윳값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유를 넉넉히 준비해 두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퇴원한 지 몇 주 진통이 시작됐다.

나는 분만실에서 지켜보던 기억을 더듬어 진통 간격을 재고,

음식을 배달시켜 배를 채운 뒤 천천히 병원으로 향했다.

예정일보다 여섯 주 빠르게 아들을 낳았다.


J는 기뻐하며 간호사들과 의사들에게 선물을 했고,

분만실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도 기부했다. 그리고 내게 작은 가방을 선물했다.

돈이 없다던 그가 어떻게 샀는지 잠시 생각했지만, 묻지 않았다.


J의 가족이 모두 왔다.

한눈에 알아볼 듯한 정장차림이었다. 옷에는 구김하나 없었다.

병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단정하게 빛나는 구두 끝이 침대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들의 허리는 굽혀지지 않았다.


내려보는 시선이 불편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J의 아버지 생일이기도 했던 그날, J의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불편할까 싶어 생일상을 차려 알아서 케이크까지 먹고 왔다.”


J의 형이 “아빠와 생일이 같네.”라고 했다. 그의 말투에는 묘한 여운이 감돌았다.

더운 병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따라왔다.


“아들이 둘은 있어야지. 빨리 하나 더 낳아야지.”


아기는 일찍 태어났지만 건강했다.

J의 부모는 이름을 지어왔다.

이름 이야기를 하다, J의 어머니는 엄마 젖을 너무 많이 먹이면 안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의 뜻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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