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들어왔다

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2

by 정아린

J의 형이 유학에 실패하고 본가로 돌아온다고 했다.


결혼식 전에 만난 그는 "내 부인보다 학위가 높네."라고 중얼거리다가,

작은 성의로 건넨 그의 딸의 선물이 유명한 제품이 아니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내게 말을 걸 때에는 늘 다른 곳을 보고 말해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제수씨'라고 부르지 않았고, 존댓말을 쓰지도 않았다.

반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것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으려 애썼다.


문득

'미국식'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폐백 자리에서 J의 형은 그의 부모 다음으로 인사를 받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가,

친척 어르신이 먼저라는 사진기사의 제지로 물러나야 했다.

그는 몹시 당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귀국하던 날, J의 어머니는

내게 본가로 와서 음식을 도우라고 했고,

J에게는 회사에서 일찍 나와 그들을 공항에서 픽업하라고 했다.


나는 J의 형 부부의 결혼식 사진을 떠올렸다.


사진관에 걸려있던 그들의 사진은 지나가던 방송국 PD가

신혼부부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할 만큼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고 했다.

해외디자이너에게 맞춰 구입한 웨딩드레스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 사진은 내가 웨딩드레스를 대여하겠다고 말했을 때

J의 어머니가 내게 직접 꺼내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결혼 전,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춘 유학생 부부로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

J의 어머니는 그들이 아이를 늦게 가졌고 딸을 낳았으며 사치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임신 중기부터 시작된 심한 피부병 때문에 본가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날, J의 어머니는

자신의 기대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던 큰 아들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 년 만에 털어놓았다고 했다.

J의 부모는 일 년 가까이 미국에서 한 집에 살았지만 그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본가는 손님을 맞는 집 같지 않게 어둡고 조용했다.

노란 등이 식탁 위에 고여 있고 공기마저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집안의 어디서도 J의 아버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J의 어머니만 나를 맞았다.

늘 분주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느려져 있었고,

그 느린 동작들이 집안의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베란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J의 어머니가 어두운 수돗가 앞에서 등을 돌리고 쭈그리고 앉아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말을 건네려다가 그만두었다.

자식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다닌다고 말하던 얼굴이 그날은 끝내 나를 보지 않았다.


갑자기 배가 뭉쳐왔다. 거실 소파가 편치 않아 방으로 들어가 숨을 골랐다.


J의 형 가족이 들어왔다.

J의 어머니는 여전히 거실 불을 켜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어둠에 가려 있었다.

그들은 피곤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J의 형은 유명 대학에 합격한 뒤

재수해서라도 원하는 학과에 가고 싶어 혼자 준비해 합격했지만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부모 때문에 해왔다며 말했다.


“나는 미국이 정말 싫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유학이 그렇게 좋으면 엄마나 가.”


그때 J의 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우리에게 인사를 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였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J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수를 낮 동안 내 집에 머물게 하라는 것이었다.

친정에 보낼 수도 없고 집에 두는 것도 마땅치 않다는 이유였다.

목소리를 낮추며 아무래도 운이 나쁜 아이 같으니 뭐든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형수와 아이가 집에 처음 왔던 날,

그녀는 아이가 미끄러진다며 거실에 깔려 있던 러그를 묻지도 않고 옆으로 치워버렸다.

러그는 구겨져 벽 쪽으로 밀려 있었다. 나는 다시 펼치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에서부터 사 왔다며 철분제를 건넸고,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쓰라며

자기 딸이 쓰던 아기침대와 아기그네, 카시트, 육아용품을 주겠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카시트가 없으면 병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직접 철분제를 사 먹고 있었지만, 선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기침대를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하얗고 단단해 보이던 침대와 카시트를 생각하며 잠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차를 준비하자 형수는 조심스럽게 J의 부모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름은 왜 바꾸지 않았는지, 결혼 전에 호통은 없었는지,

J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친정에는 어떤지,

결혼 후 나는 무엇을 받았는지를 물었다.


자기 물건은 자기 돈으로 사야 했다고 말할 때

그녀는 커피잔을 움켜잡고 내 눈을 더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언가 재는 것 같은 그녀의 질문에 나는 되도록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가끔 말을 멈추며

J의 형이 무엇을 하든 자기와는 상관없고

자기와 딸이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몇 년 먼저 결혼한 그녀는

내가 아직 겪지 않았거나 알지 못하는 J의 부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J의 형이 ‘제수씨’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슬쩍 꺼냈다.

그녀의 말의 속도는 갑자기 느려졌고,

“내 부모한테도 함부로 해. 동서”라는 말과 함께 대화는 흐려졌다.


시끄러운 본가의 상황과 달리, 그녀는 늘 화려했다.

눈에 띄는 가방을 매번 바꿔 들었고 그녀의 딸은 인형처럼 입혀져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그녀의 말들을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거짓만은 아니라는 것도 곧 알았다.


본가로 들어온 뒤 형수는 집안 살림을 혼자 맡고 있었다.

J의 어머니는 큰아들의 유학 실패를 모두 며느리 탓으로 돌렸고,

J의 아버지는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아내를 나무랐지만,

며느리를 향한 말을 말리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짐이 들어오던 날, J의 어머니가 형수의 구두 상자들을 보자 상황은 더해졌다.


어느 날 나는

형수가 본가 욕실에서 거실 커튼을 욕조에 담가 발로 밟아 빠는 모습을 보았다.

회색 물이 된 욕조 속에서 그녀는 붉은 천에 휘감긴 채 힘겹게 뒤뚱거렸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아이를 볼 틈이 없는 사이

그녀의 딸이 가구 위에 잔뜩 쌓여있는 액자들을 만지려 손을 뻗자,

J의 어머니는 한달음에 뛰어와 아이의 등을 세게 때렸다.


“애가 왜 이러니?”


어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어느새 형수의 뒤통수에는 동그란 빈자리들이 생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말했다.


“형님, 머리 뒤쪽에 원형탈모가 생긴 것 같아요.”


그녀는 당황했다기보다 멍해 보였다.


“진짜? 말 안 해줬으면 몰랐을 뻔했어.”


잠시 나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생각했다.


형수가 계속 내 집에 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늘어놓을수록 내 손은 다리와 팔을 긁고 있었다.

가려움은 점점 심해졌고, 배가 자주 뭉쳤다.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기고, 다시 긁었다.

내가 밤새 긁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것을 J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을 쓰지 말라고 했다.


중기를 지났지만 몸무게는 거의 늘지 않았다. 삐쩍 마른 몸에 배만 겨우 붙어 있었다.

형수에게 그만 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몰랐던 사실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는 점점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동서 욕도 했어, 동서 친정 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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