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기술

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1

by 정아린

J는 출퇴근이 힘들다며

자가용으로 하루 세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운전을 싫어한다고 했던 그는 길 위에서 늘 언짢았다.

거슬리는 운전자가 많다며 상향등을 자주 켜고 경적을 울렸지만,

차에서 내린 적은 없었다.


월급은 육십만 원 남짓이었다.

그 돈은 관리비와 주유비, 그리고 그의 용돈이 되었다.

늘 지쳐 보였고 바쁘고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


J는 술을 마셔도 취한 적이 없었다.

흐트러진 적도 없었다.

그는 늘 단정했다.

나는 그것을 성실함이라고 여겼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 음정과 박자가 어긋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형편은 늘 빠듯했다.

일요일을 비워 두고 첫 휴가 때 간 해운대에서는

허름한 여관방을 잡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에게 남은 돈은 만 원 정도뿐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지만,

나는 그것을 스릴이라고 불렀다.


화가로 살아보기도 전에 주부가 된 나는

생활비가 늘 부족한 이유를 따져본 적이 없었다.

레슨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있었고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작가들의 모임은 대체로 저녁에 열렸다.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J는 회사의 회식과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나는 J가 출근한 사이 학교에 가고 집안일을 해두고 레슨을 나갔고 저녁을 준비했다.

밤에는 J의 아버지가 학교에서 쓸 책을 낸다며 부탁한 원고를 타이핑했다. 분량이 꽤 많았다.

책이 출판되었을 때,

그는 첫 장에 '타이핑을 도와준 둘째 며느리에게'라고 직접 써주었다.


J의 어머니는 자주 자신의 대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J의 아빠가 등록금을 내줘서 학교를 갔는데,

애들 생각이 나서 공부를 못 하겠더라고. 한 학기도 못했지 뭐야.”

그러면서 J의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원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되면 J는 아무 말하지 않았고,

친정에서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내주었다.


J는 코를 심하게 골았다.

처음에는 귀마개를 썼고, 나중에는 베개를 바꿨고, 그다음에는 거실로 나갔다.

수면무호흡증이 걱정된다고 말해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예약을 잡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파에서 깼다.

밤새 코를 골고 잔 그는 아침마다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입맛이 까다롭진 않았지만 같은 음식을 두 번 먹지는 않았다.

아침에 밥을 차리면 바쁘다고 했고, 빵을 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은 늘 남았다.


J는 전구를 갈거나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시도는 했지만 불만을 중얼거리다 끝내지 못했고,

그 일들은 결국 내 몫이 되었다.

J의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J의 형도 못한다며 그의 아내가 다 한다고 했다.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애들이 아빠 하고는 틀려.”


일요일에 본가에 가면 J의 부모는 그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폈다.

곧 J가 어렸을 때 ‘김ㅇㅇ’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J는 초등학교 시절, 서예 시간에 짝이 실수로 그 옷에 먹물을 흘려

그 아이 옷에도 먹물을 뿌렸는데

하필 그 옷이 검은색 땡땡이 무늬였다고 했다.

J의 어머니는 J가 반장이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집에 데려오기도 했던 착한 아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끝냈다.


J는 브랜드 옷이 많지 않았다.

내 수입의 상당 부분은 그의 옷과 신발로 흘러갔다.

새 옷을 입은 날이면 그의 굳게 다문 입이 길게 펴졌고,

그는 그 옷을 입고 부모를 찾았다.


결혼 후 첫 다툼은

내가 가죽 일기장을 샀을 때였다.

그는 자신의 월급이 적다며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이라고 화를 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J는 늘 고개를 조금 숙였다.

시선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동자만은 바쁘게 좌우로 움직였다.

어느 날, 식당에서 J의 아버지가 똑같은 자세로 있는 것을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린 채,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결혼하면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말이 반복되었다.

그 말은 질문도, 권유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졸업도 전에 임신을 했다.


불룩해진 배로 버스를 타고 대학원 수업과 작업실, 여러 레슨을 오갔다.

학부형들이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이들이 쓰던 육아용품을 건네주었다.

남의 물건을 받아 써본 적은 없었다.


한 번은 레슨 하던 집 문 밖에 놓인 물건을 보며 학부형이 말했다.


“이거 선생님 드리려고 내놓은 거예요.”


그때 함께 레슨을 받던 아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거 제가 가지면 안 돼요?”


“안 돼. 네가 그런 걸 받아가면 너희 엄마가 속상해하실 거야.”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집에 돌아와 무거운 물건들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닦았다.

무언가 잘못 먹은 것처럼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저 꿀꺽 삼켰다.


‘첫 아이인데, 새것으로 준비해 주지 못하고 있구나’

그 생각이 그날 처음으로 들었다.


태어날 아이의 옷을 사러 J와 백화점에 갔다.

매장에 들어서자 점원이 다가왔다.


상표를 들춰보던 J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왜 이렇게 비싸? 너 돈 있어?”


돌아보지 않아도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점원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돌아 나왔다.

그는 웅얼거리며 따라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밤, 나는 친정으로 갔다.

J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답답해진 친정 부모님이 J에게 연락하자 그는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다시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오래 남았다.


나는 이런 시간을 신혼이라고 배워두고 있었다.


IMG_6197.jpeg <Wedding Photo Frame>,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