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6
결혼은 J가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기보다
내가 J를 다시 키우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J는 회사를 다니며 유학 준비를 했다.
본가에 갈 때마다 J의 아버지는 J의 유학 준비를 잘 시키고 있는지 나에게 확인했다.
살을 빼게 하고, 담배와 콜라를 끊게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J가 결혼할 때 지니고 온 습관들은
나를 통해 바뀌어야 할 것처럼 여겨졌고
바뀌지 않을 때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남편이 잘되는 것은 아내의 일이라는 J의 아버지의 말은
남편의 내조를 말하던 주례사와는 다른 종류였다.
요구는 늘 나에게만 전달되었고,
그 집에서는 아들과 직접 부딪힐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와는 한 번도 갈등하지 않은 대신
J는 나와 갈등하게 되었다.
J는 남편이라기보다 아들이었고
애처가보다는 보기 좋은 효자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늘 그럴듯한 이유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이유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래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그 집이 맡겨놓은 아들을 돌보는 일이 늘 먼저였다.
토요일마다 J가 조용히 공부할 수 있도록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그의 학원비를 냈고, 보양을 위해 한약을 지어 먹였다.
일을 해야 했지만 아기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본가에서는 아이를 잠깐도 봐주지 않았고
친정어머니는 가끔 봐주었지만, 몸이 아프다고 했다.
레스토랑 인테리어를 맡게 되었는데 수시로 공사장에 가야 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기띠에 매고 갔다.
마감을 대충 해놓은 부분을 지적하자
작업반장은 대답 대신 내 앞에 매달린 아이를 쳐다보며 독하다고 했다.
아이를 잡고 있던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가슴으로 꽉 끌어당겼다.
내 수입의 대부분은 시터비용으로 나갔다.
그래도 시간을 쪼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J의 어머니는 계속 아이를 더 낳으라고 했다.
둘째가 생겼다.
조산 위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무사히 넘겼다,
한 달 이르게 딸을 낳았다.
친정 부모님이 산후조리, 아기 우유의 비용을 부담해 주셨다.
J의 형이 형수와 함께 병원에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
J의 형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아들만 낳는 여자는 잘난 척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것 같아.”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집안에 잠시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산후조리가 끝나자마자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J의 출퇴근 불만을 끝내고 싶었다.
회사 근처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있었다.
J는 망설였다. 어머니께 물어보겠다고 했다. 곧 전화가 왔다.
“시어미 하고 떨어져 살려고 안달이구나.”
신혼집이 있는 동네에서 성장한 나는 레슨도, 작업실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이사는 그녀의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집값이 반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J의 어머니는 마음을 돌렸다.
둘째를 낳고 한 달 정도 되었다.
J의 어머니는 직접 부동산에 가 일을 처리했다. 나와 J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사 간 집은 J의 직장 바로 길 건너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피곤하고 바빴고 단 한 번도 아이를 데리고 집 앞의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그 동네에는 내 아이들 또래가 많았다.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 집에 모였고,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나는 그 틈에서 잠깐 숨을 쉬었다.
누군가의 며느리도, 아들의 관리자도 아닌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나는 그 집에서 요구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뜻밖에 몇 군데의 대학에서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J는 축하해 주며, “나보다 먼저 강의를 하네.”라고 말했다
그 무렵부터 이상하게 집안의 문제는 설명도, 논의도 없이 나에게로 흘러왔다.
이번에는 J의 외할머니였다.
본가에 일이 생겨 외할머니를 보낼 테니 집에 모시라는 전화가 왔다.
J의 아버지의 땅 문제로 J의 어머니 동생이 소송에 휘말렸고,
화가 난 J의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본가에 머물다 다시 J의 형 집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조용하던 지내던 J의 형은 하던 공부를 다시 멈추고 본가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고,
땅 문제에, 아들 문제가 겹쳐
J의 어머니는 남편에게서 매일 같이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는 곧 결론이 났다.
가족의 일이니 서로 도와야 하고, 그 ‘서로’에는 며느리만 포함되어 있었다.
형수는 외할머니를 모시게 되었고 며칠이라던 말은 몇 달이 되었다.
그녀가 더는 할 수 없다고 하자
J의 어머니는 내게 연락해 “네가 해야지.”라고 했다.
이제는 “공평하게” 내 차례가 되었다고 했다.
둘째를 낳고 바로 일을 시작한 나는 회복이 되지 않아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전시 일정도 잡혔고 대학 강의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서울까지 레슨도 다니고 있었고 집에서 동네 아이들 레슨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난 얼굴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할 수 없다고 하자,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였다.
왜 안 되느냐고. 왜, 왜,
형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못한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왜 안 되냐고만 묻는다고.
결국 나는 외할머니를 직접 모시지는 않는 대신,
음식은 내가 맡는다고 하며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그들에게 보낼 음식을 바쁘게 만들 때 아이들을 봐주시던 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착한 끝은 있을 거야. 에구.... 이번 가족 모임에 제일 좋은 옷 입고가. 무시 못하게.”
나는 음식을 한가득 만들어 형수 집에 퀵서비스로 보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녀가 말한 ‘공평함’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다만 하지 않을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를 맡길 사람도 없고
대신할 사람도 없고,
멈출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동시에 해야 했다.
슈퍼우먼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