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이 필요해진 순간 7
J의 유학 준비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영어 시험은 몇 번이나 다시 봐야 했고,
몇 년간 준비한 지원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한 해를 더 준비하자고 했다.
J는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은 박사이니 아무 곳에서 박사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감당하기 싫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J에게 ‘기대’를 직접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해라.”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오면 큰 아파트를 사주마.”
그 말은 선택지가 아니라, 기준이었다.
박사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미 결혼식은 지나갔는데 조건이 계속 덧붙여지고 있었다.
J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집이나 생활, 아이들 걱정보다 학위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현실은 우리와 점점 멀어졌다.
합격 소식을 J의 부모에게 전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돌아온 말은 짧았다.
“잘됐네.”
J는 부모가 기뻐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이 희미하게 웃으며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J를 길게 설득해 다툼 끝에 한 해 더 준비하기로 했다.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J의 부모가 하는 J의 자랑은 늘 초등학교에서 멈춰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없었고 나는 그 빈칸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아들을 낳아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기준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을 바꾸는 것이 내가 그곳에 있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참고 견딘 시간 끝에 더 나은 학교에서 합격 통지가 왔고,
마지막 순간, 뜻밖에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합격 소식이 도착했다.
본가에 알리자, J의 어머니는 자신보다 두 배는 큰 J를 등에 업었다.
J의 아버지는 기쁘다 못해 믿을 수 없다는 듯 합격 통지서를 계속 확인했다.
J의 형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짧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보다 공부 못했는데 나보다 좋은 학교를 갔네.”
부모에게 인정을 받은 그 순간만큼은 J는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다.
그가 그토록 기뻐했던 것은 합격이 아니라 부모의. 표정과 형의 침묵 같았다.
회사에서 학비 지원을 제안했다.
J는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
부모가 모두 도와줄 거라고 했다.
나는 얼마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떠있던 J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부모님이 다 해주신다는데 우리 부모님을 못 믿어?.”
그 순간 나는 기쁜 순간을 망치는 돈만 계산하는 사람,
부모를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묻지 않았다.
J가 본가에 가서 확인하자,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힘주어 말했다.
“당연하지. 회사에서 얼마나 준다고. 공부만 해라.”
나는 그 말이 약속인지, 조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말할 때마다 불안은 좀 더 분명해졌다.
이 선택이 나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가는 것인지
내가 붙들고 있던 마지막 자원을 내려놓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유명 대학으로의 유학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J는 괜한 걱정을 한다고 나를 나무랐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하는 건 모든 지원해 주셔.”
내 머릿속에는 형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일주일에 20불로 장을 봤어. 돈이 너무 없어서 형이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
내가 엽서라도 한 장 사려면 그게 내 돈인지부터 확인했고.”
나는 J의 부모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도저히 흔들 수 없었다.
J의 그 믿음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서 나는 직장을 그만둔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쌓은 경력은 나를 꽤 안정적인 삶에 두고 있었다.
여행은 못해도 먹고 싶은 것은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잠시 여유 있었던 시간이 어디로 갈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정리하며 따로 두던 작업실을 집으로 옮겼다.
재봉틀과 천, 재단된 나무들이 작은 방과 거실로 들어왔다.
전시회가 다가왔지만 아이 둘을 더 맡길 수 없었다.
긴 천 사이에서 기어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작업했다.
장난이 많던 큰아이는 다리미를 만지다 팔을 데었다.
나는 유모차에 두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뛰었다.
시간은 늘 부족했고 손길은 모자랐다.
그래도 그 시간이 좋았다.
작품이 전시장에 걸렸다.
각각이던 나무와 천이 모여, 하나의 구조가 되었다.
천장에 걸린 긴 천들 사이를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뛰어다녔다.
웃으며, 축제처럼.
해냈다는 보람보다 작품 안에 남겨진 무엇을 누군가 알아볼까
걱정이 먼저 들었다.
혹은, 알고도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인지.
J는 오프닝에 지인들과 함께 왔다.
상기된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챙겼다..
J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시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누가 왔는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묻고 하나씩 평가했다.
그날,
이 공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