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유지하는 비용 1
긴 비행 끝에 우리는 마침내 미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J와 그의 부모가 나와 있었다. J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힘들어 죽겠다.”
거의 하루를 자지도 먹지도 못해 쓰러질 것 같던 나는 풀고 싶었던 긴장의 끈을 다시 조였다.
“네, 힘드시겠어요.”
내 입에서는 겨우 그 말만 나왔다.
J와 그의 부모는 집을 본다며 일주일 먼저 미국으로 떠났다.
J의 형이 유학할 때 함께 했던 미국 생활을 늘 이야기하던 그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J는 그의 부모가 우리를 돕기 위해 함께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막바지에 합격 통지서를 받아 정보가 많지 않았다.
유학을 준비하는 모임이 있었지만, J는 그들을 만나는 것을 꺼렸다.
출신 대학과 학번이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처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가 더 이름 있는 대학으로 가길 그토록 바랐다.
그리고 J의 부모가 우리의 미국 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나는 두 아이와 미국에 도착하면 바로 필요할 것 같은 것들만 골라
이민 가방 여섯 개를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떨어지지 않았고,
누구 하나가 화장실에 갈 때도 셋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시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탔다.
이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크고 복잡한 공항에서 나는 끝내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안내하던 직원이 몇 마디의 말을 건넸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대답하는 시늉만 했다.
두 살, 세 살의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몰랐다.
혹시 아이가 손에서 미끄러질까 겁이 났다. 너무 꽉 잡았는지 둘째가 손이 아프다고 했다.
내가 둘째를 안아 들자 내 가방을 들어주고 있던 서비스 직원은 큰아이의 손도 대신 잡아주었다.
비행기 시간을 놓칠까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는 직원과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걸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공항의 보안은 엄격했고 게이트마다 줄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엑스레이 검사를 앞두고 아이들이 멈칫거리자,
마음 좋은 공항 직원이 그냥 지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마침내 그들을 만났다. 공항에는 J와 부모가 나와 있었다.
여섯 개의 짐은 시카고에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려 도착하지 못했다.
며칠 안에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경차였다.
사람이 다 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틈에 짐이 왔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궁금했다.
형수가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카시트에 태워야 한다던 말이 떠올라
J에게 말하려 했지만, J의 어머니의 말에 그 말을 삼켰다.
그녀는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경찰이 보이면 숨으라고 했다.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그녀는 지난 일주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변화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초록 풍경 속에
집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쯤 그녀도 우리 집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집에 도착했다.
짙은 베이지 벽, 나무색 기둥, 갈색 지붕의 작은 단층 주택이었다.
오랫동안 비었던 집으로 집세를 시세보다 삼십 프로 정도 더 저렴하게 얻었다고 했다.
나는 그 집을 오래 보지 않았다.
J와 나는 유학생들 사이에서 알려진 아파트를 얻기로 하고 보증금을 미리 보내 두었다.
사진 속의 아파트 단지에는 넓은 잔디밭과 놀이터, 수영장이 있었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먼저 도착한 J의 부모는 그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곳을 찾았다.
J에게 무엇을 결정할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갈색 집은 두 채가 붙어 있는 듀플렉스였다.
작은 앞마당과 그것보다 좀 더. 넓은 뒷마당이 있었다.
마당의 반과 차고 한 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겨울이면 현관문이 열리지 않은 정도의 눈도 오는 곳이라
차고가 있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집안에 들어가니 연한 팥죽색의 카펫이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까지 펼쳐졌다.
벽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집은 꼭 남향이어야 한다고 말해왔던 J의 부모는
내가 별생각 없이 북향이냐고 묻자
상기된 얼굴로 집을 구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만 말했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J의 어머니가 말했다.
“공항에 너 마중 나가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밥 차려라.”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윙윙거리며 어지러웠다.
싱크대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는 걸 알아챘는지 J의 어머니가 덧붙였다.
“어디다 버려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쌓아둔 거야. 네가 좀 어떻게 해라.”
나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급히 밥을 차렸다.
남향의 부엌에는 천창까지 있어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씻지 못한 몸이 끈적거렸다.
거실에서 J와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과일 먹어야지.”
부엌을 정리하고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때 J의 아버지가 물었다.
“친정에서 얼마 가지고 왔냐?”
뜬금없는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췄다.
결혼한 지 오 년, 혼수 예단은 이미 끝났고
생활비도 아이들 우윳값도 대부분 내가 벌거나 친정에서 보탰다.
집의 전세금도 그들이 가져갔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아들의 유학이었다.
내 입시 준비보다 힘들었던 오 년의 J의 유학 준비를 떠올리며
무엇을, 얼마를 가져와야 한다는 걸까 생각했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 가져온 돈은 없다고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J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씻겼다.
카펫 위에 얇은 이불을 대충 펼쳐 함께 누웠다.
피곤했지만 더운 밤공기 속에서 잠은 오지 않았다.
낯선 집의 천장이 오래도록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