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유지하는 비용 2
미국에 오자 J의 부모는 무언가 달라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묘한 거리를 유지했다.
결혼하며 가족이 될 줄 알았지만
돈을 벌 수도 없고 친정에서 돈을 가져오지도 않은 나는
그 집에서 할 일을 맡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밤새 잠을 설친 채, 일찍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는 나를 보자
J의 아버지는 왜 밥을 먹지 않는지 물었다.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음식을 욱여넣고 싶지 않았다.
부엌 정리가 끝나니 9시였다. 모두 함께 나가야 했다.
시차 때문에 아이들이 힘드니 집에 있겠다고 하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J의 어머니의 답이 돌아왔다.
“집에 있으면 무서워서 안 돼. 다 같이 나가야지. 그리고 너는 이상한 애다. J 학교 안 보고 싶니?”
합격 소식에 눈물까지 흘렸던 나는 J의 학교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J의 학교 캠퍼스를 잠시 둘러본 뒤 우리는 곧 쇼핑몰로 향했다.
좁은 차 안에서 카시트 없이 아이들을 숨기듯 안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J의 형이 유학했던 학교와 비교했다.
J의 학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학교였지만,
그들은 틈틈이 J의 학교를 깎아내렸다.
J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J가 그 학교에 합격하는 순간,
학교의 명성도 함께 내려앉는 것 같았다.
J 역시 그것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J의 부모 쇼핑을 거들어야 했다.
아이들 카시트를 먼저 사자고 했지만, 나중에 사라는 말이 돌아왔다.
전날 도착해 아직까지 정신이 없던
두 아이는 낯선 환경과 사람을 무서워하며
바닥에 앉아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쇼핑한 옷들을 꺼내 입으며 나누는 소리가 났다.
“내일 다시 가서 바꿔야겠네. 가서 바꾸면 돼. 미국은 몇 번이나 리펀드 해줘.”
저녁상을 차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정리를 마치고 아이들과 방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내가 부엌에 있는 사이 마당에 나가 있었다.
갑자기 큰 아이가 자지러지듯 우는 소리에 뛰어나갔다.
현관 앞의 시멘트 계단에 부딪쳐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깊게 파인 상처는 순식간에 밤톨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어른이 몇인데.’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애가 왜 저렇게 부잡스럽냐.”
J의 어머니는 상처를 보며 연고를 바르라고 말했다.
상처가 깊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미국 생활을 잘 안 다던 J의 부모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J를 쳐다봤지만, 더 괴로운 표정으로 아이만 내려보고 있어 말문이 막혔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끌어안아 달랬다.
하지만 J의 부모는 여전히 시장했다.
그들의 배를 채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겨우 울음을 그친 아이를 두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이 이마의 혹이 크게 부푼 채로, 우리는 모두 쇼핑몰에 갔다.
어제와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건을 모아둔 매대로 가더니 앞으로 거기서 장을 보면 된다고 했다.
조산한 아이에게 좋은 우유를 먹이라고 돈을 보내준 친정 부모가 생각났다.
J의 어머니는 저녁에 백숙을 먹고 싶다며 닭다리를 샀다.
오 불에 스무 개가 들어 있었다.
재료가 없어 냄비에 닭다리만 넣고 백숙을 끓였다.
국그릇에 무심코 J의 부모와 J에게 두 개씩,
나와 아이들에게 닭다리를 한 개씩 담고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넌 니 몸 생각 되게 한다!”
등 뒤에서 J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내 국그릇에서 닭다리를 빼냈다.
밥을 먹을 때 J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왜 닭다리를 안 먹나?”
“저는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J의 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같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
현관에서 큰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났다.
아침 설거지를 마무리하다 말고, 나는 뛰어나갔다.
아이는 현관 바닥에 누워 나가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며
J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J의 어머니가 현관 근처로 오며 아이를 흘끗 보며 말했다.
“애가 지랄발광을 하네!”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생각하는 중, 갑자기 J가 고함을 질렀다.
“애한테 뭐라고? 매일 쇼핑을 데리고 다니는데 애가 견디겠어?”
J의 어머니도 목소리를 높였다.
“애가 저렇게 바닥에서 비비고 있는데!”
나는 아이를 들쳐 안고 둘째 손을 끌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버스도 안 다니는 동네에 택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전화기도 방에 없었다. 2002년 미국은 그런 곳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친정 문을 두드릴 수나 있을까.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방 밖에서 고성이 계속 오갔다.
J의 어머니가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학비 내주니까 저따위로 대접하네. 저러다 부모를 갖다 버리겠네.”
벽이 울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큰 소리를 내던 J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작아지더니
그녀의 목소리만 남았다.
그녀가 잠들길 바라며 창밖을 내다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총총히 박힌 검은 하늘의 별들과 우리 집 거실 불 뿐이었다.
회사지원을 거절하던 J와 J의 부모의 당당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배고프다는 말도 방 밖으로 나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
가방에 있던 한국에서 가져온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먹였다.
유학의 시작은
아들을 낳았던 날과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좋은 날이 오면 J의 어머니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문제는 떠올랐다.
그녀의 소리는 밤새 이어졌다.
나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방 안에 있었다.
그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