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의 영수증

가족을 유지하는 비용 3

by 정아린

사흘 동안 나는 아이들과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식사 때가 되면 J의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의 밥상을 차리며

어김없이 부모를 이렇게 대우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내던 그릇 소리는 그 일들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듯 들렸다.


“학비 다 대주니 부모를 이렇게 대우하네. 이제 한국으로 가야겠다.”


아침 식사를 마친 그들은 공항으로 간다는 고함 소리와 커다란 문소리만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하지만 방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J가 방문 밖에서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부르니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이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늘 그랬지만 내가 여기서 멈춰야 할지 계속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며칠 동안 방 밖으로 못 나간 두 아이를 봤다.

이번에는 J의 아버지가 무언가를 정리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J의 아버지 방으로 갔다. 한여름의 낮인데도 블라인드가 내려진 방은 어두웠다.

J는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 슬그머니 나갔다.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다.


“어머니가 이번에는 너무했다. 어머니한테 그런 면이 좀 있어.”


J의 아버지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 넌 왜 너밖에 모르냐. 너 같은 애를 에고이스트라고 한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졌다.

여자가 결혼을 해 남의 집에 왔으면 자기를 잊으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온몸이 떨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은 채 화를 내는 그의 목소리가 내 말을 계속 막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을 쏟아내더니

다시 한 톤 낮춘 목소리로 아내를 불러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가족을 화해시켰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와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에고이스트.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혼하고 오 년 반, 결혼이 하나의 조건인 줄 알았는데 조건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결혼을 위해 내가 준비했던 것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친정에서 계속 가지고 오고 있을 때 나는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큰돈 들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구조가 완성되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마이너스가 되고 J는 계속 플러스가 되었다.

그들이 알뜰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들의 뜻을 거스를 때 대가가 따랐고 그 대가가 이 구조를 유지했다.


화해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며, 급히 J와 쇼핑을 나갔다.

나는 아이들과 집에 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미국에서 탈 차를 샀다.

며칠 동안 값을 깎았다고 했다. 은색 승용차였다.


“부모가 다 해주니 너희들은 참 좋겠다.”


그 말이 남았다.


얼마 후, J의 부모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공항에서 짐이 무게를 초과하자

J와 J의 부모는 얼굴을 붉힌 채 서로 나무라며 서 있었다.

내려다 보는 그들의 눈 아래에서

나는 혼자 공항 바닥에 앉아 가방을 펼치고 짐을 옮겨 담았다.


그들이 돌아간 후 첫 생활비가 송금되었다.

집세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천오백 불 남짓이었다.

한국에서 회사 지원을 거절하며 약속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J의 어머니는 전화로 말했다.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까지 엄마가 봐야지.

팩스를 하나 사서 생활비 쓴 건 영수증 첨부해서 팩스로 보내라.”


나는 팩스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 J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


J는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자정이 다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가계부를 꼼꼼히 적었다.

고개를 들지 않는 뒷모습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갔다.

영수증을 보내고 따질 일도 없었다.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식비도 빠듯했다.


아이들은 다시 기저귀를 찼다.


가을이 오자 공기는 빠르게 식었다.

10월 말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곳의 가을은 내가 알았던 계절과 달랐다.


집세가 저렴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 겹 창문뿐인 북향집은 안팎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히터를 올려도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집안에 널어 둔 빨래가 마를 생각을 안 했다.


12월이 되자 눈은 무릎 아래로 내려갈 줄 몰랐다.

몇 번의 정전을 겪고 나서야 벽난로를 쓰기 시작했다.

옆집 노인은 가을에 미리 사두었던 장작을 마음껏 가져다 쓰라며 내주었다.


벽난로를 켜고 아이들과 앉아 불을 보고 있을 때만은 내가 잠깐 편안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열이 심하게 났다.

병원 한 번 방문에 20불, 우리에게는 큰돈이었다.


J는 병원에 가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J가 학교에 간 사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폐렴이었다. 그리고 천식이 생겼다.


그 아이의 폐가 내 뱃속에서 주사로 성장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J는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J는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했다.

그는 일 년 동안 지도교수를 세 차례 바꿨으나 여전히 집에 오면 끊임없이 불만을 했다.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회사에 다닐 때처럼 이곳에서도 그들 탓을 했다.


에고이스트라는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자기만 아는 사람.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오래 참아온 것들을 향한 것이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누가 누구에게 그 말을 해야 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늘 그랬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일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