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싸우는 중

by 유랑선생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만성화된 상태라고 했다. 석 달 전쯤 받아 든 심리 검사 결과였다. 상담사분이 뭔가 점수 같은 것도 이야기해줬다. 실로 형편없는 숫자였다. 학창 시절뿐 아니라 내 인생 통틀어 그런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고 했다. 거짓말. 나처럼 의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매주 온라인 공간에 글을 발행하는 중인 데다, 휴직 중임에도 미친 사람처럼 책 쓰기도 줄줄이 이어가는 중이다(이게 좀 이상한 증상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긴 했지만) 게다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아이를 혼자 보고 있는 중인데. 무기력증이라니. 말이 돼?


논리적인 납득을 위한 노력도 해봤다. 인간은 원래 모순 덩어리니까. 이 어처구니없는 역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자 결심하다가도, 짜증이 났다 슬퍼졌다, 부인했다가 긍정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은 있었다. 5년간 해외살이를 마치고 작년 여름 귀국한 후로 쭉 멍한 상태였다.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사람들을 만나도 일시적으로 VR 체험하는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에서 지내던 생활 중 마지막 1년의 기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쉽지 않은 생활을 계속했었다. 한 해 동안 홀로 외출해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혼자 밤 산책을 하거나 깨끗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나무나 꽃을 실컷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귀국 후에 염원하던 하나하나 해봤다. 길거리를 걸어 다녔고 공원을 산책했고, 혼자 음식점과 카페도 돌아다녔고, 서점과 도서관에 들렀다. 일시적으로 가상체험하는 느낌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꾸준히 그런 걸 했던 사람이었던 양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사소한 실수도 있었다. 버스를 거꾸로 탔고 전철을 잘못 탔다. 카페에 가서 처음 본 QR코드가 체온계인 줄 알고 손목을 갖다 대거나 하는 식의 실수를 연발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적응을 해나갔다. 적응하는 만큼 일상의 자신감이 채워질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몸은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으나, 마음 한 구석이 도무지 적응을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건 귀국 석 달쯤 후였다.


작은 고립감이나 불안감에도 눈물을 터트렸고, (물론 모두 혼자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누구 앞에서 쉽게 울지 못하는 게 나란 인간이다.) 약간의 불길한 예감이 스치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일상의 자신감은 어디에 처박혔는지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밥을 먹거나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tv를 보는 일상의 상황에서 대부분 정신이 멍했고 감정이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가 ‘너는 삶의 어려움을 글로 승화시킨 애’라고 말해줬지만 ‘승화’라는 거룩한 단어가 도무지 나한테 어울리는 걸까 생각했다.


글을 쓰다 아주 가끔 몰입의 순간이 올 때, 그나마 그때가 제정신인 건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성취에 대한 욕심도 이미 달아난 상태였다.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절망감을 넘어서서, 무망감에 시달리는 상태였으니까. 미래를 상상하면 머리가 깜깜해졌다. 당장 몇 년 후를 상상하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거대한 이상이나 계획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 후, 몇 달 후의 일상적인 일만 떠올려도 나쁜 상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가령 '우리 몇 주 뒤에 만나자'라고 다정한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며 겉으로 웃어도 머릿속으로는 의심을 거듭하는 식이었다. 당신과 내가 정말 몇 달 후에 만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어떤 좋지 않은 사정이 생겨 못 만남이 어그러지지 않을까. 무언가 나쁜 변수가 생길 것이다.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전에 머리 한 구석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그건 안될 거야. 나쁜 일이 먼저 일어날걸? 네 인생에 좋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아. 인생은 통제 불가능 영역이라고.





결국 심리검사 결과를 인정했다. 글 쓸 때 아니면 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었고, 아예 움직이는 게 힘겨운 날도 많아졌다. 아주 간단히, 아이 밥을 먹이는 것이나 내 끼니를 챙겨 먹는 것, 양말을 신거나 아침에 일어나는 것, 그 모든 게 힘겨운 일이 되었다. 잠은 4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낮에는 미친 듯이 졸리기만 했다. 손가락도 까딱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귀찮다고 생각하다 삶을 그냥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머릿속을 스쳤다. 특히 새벽이 힘들었다. 모든 게 무의미하고 부질없어서 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중간중간 솟아났다.


누군가에게 기대서 엉엉 울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가급적 글로는 힘든 얘기를 내뱉지 않으려고 했다. 내 글을 찾아와 주기적으로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글을 읽고 힘을 얻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힘을 주는 사람이 될지언정 누군가를 기운 빠지게 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원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엄청나게 운 좋은 인간 아닌가. 원하던대로 한국에 왔고 일상도 찾아가고 있다. 남편도 곧 한국에 오기로 예정되어 있고, 조금 버거운 생활도 끝날 예정이다. 이토록 좋은 상황에, 인생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우울감에 빠져 있다니. 배부른 투정 같았다. 내 힘듦을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 호소할 자격이 없으니 입을 다물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글로 징징대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이에게도 가급적 애써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엄마의 우울감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따위의 문장을 떠올리며 명랑한 엄마 코스프레를 자주 했다. 심리상담받는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는 웃음을 흘리며, 담담한 척 웃기는 이야기 건네듯 태연스럽게 말했다. 무기력증이 심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상담받고 있어요. 하하.


상담 중에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좌표를 생각해보라는 숙제를 받았다.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되고 싶은 것도, 희망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걸 생각해봤자 안 될게 뻔한데 왜 묻는 거지. 인생에 예측이란 건 무의미한데.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무심하게 흘러가고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하다 삶이 끝날 텐데. 왜 그런 부질없는 걸 생각해야 하는 거지. 주체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전에는 허망한 기대감이나 현실과 괴리된 목표가 내 인생에 문제를 일으킨다 생각해왔다. 그러나 기대감이나 환상이 완전히 부재한 생활도 괴로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웃분들 덕분에 <문제는 무기력이다>라는 책을 접한 후에 알게 되었다. 지금 느끼는 무망감은 몇 년 간 '학습된 무기력'이 쌓인 결과라는 걸(상담을 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 생활 동안 마음대로, 예측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자주 마주쳤다. 삶에 무력감을 자주 느꼈다. 원래 불안지수가 높은 나는 예측 불가능하고 변수가 많은 상황이 너무 두렵고 견디기 힘들어서 나름의 적응방식을 찾았다. 애초에 작은 일에도 기대를 걸지 않고 되려 꺾는 방향으로, 계획도 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진화시켜 온 것이다. 인생에 통제 불가한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 셈이니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각해서 인생에 통제감을 아예 잃었고, 무기력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임 깨달았다. 글을 쓰는 행위가 그나마 내가 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그래서 글 쓰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했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걸 깨닫고 나자, 마음의 벽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며칠간 노력 중이다. 일상의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비합리적인 비관을 조금 버리고 현실적 낙관 정도는 마음속에 키우려고. 시간이 되는대로 밖에 나가 나무를 보고 꽃을 보며 산책을 해보려 시도 중이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중이니까 시간이 충분치는 않지만). 일상적인 일 하나라도 해내면 나에게 칭찬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아이 밥 한 끼를 챙겨주거나 이삿짐 하나를 싸거나 설거지를 하면 나한테 속삭여주는 식이다. "너 잘하고 있어. 앞으로 차근차근하면 앞으로도 잘 될 거야.' 아이가 걸음마를 하나씩 뗄 때 부모가 칭찬해주듯이. 하나하나씩.


물론 노력과 성과는 별개다. 지난주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어 꼴사납고 구차해서 혼자 눈물도 훔쳤다. 나는 셀프 칭찬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찬사를 퍼부으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부류다. 빌어먹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 스스로를 격려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니. 셀프 칭찬을 나 대신 해주는 어플 같은 건 없는 건가, 앞뒤가 안 맞는데 좀 웃긴 생각도 했다.


기분은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어제까지는 컨디션이 괜찮았는데 오늘은 나빠지는 식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머릿속이 한꺼번에 명쾌해지거나, 마음속이 단숨에 평안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좋은 시간과 좋지 않은 시간은 반복될 것이다. 그런 사이클이 한동안 반복되다 무기력한 시간의 비중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그때까지 걸음마 떼듯이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해야 함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지금 누군가 묻는다면 '무기력을 벗어난 상태의 인간' 을 답할 것이다. 때때로 무기력과 우울의 시간을 지나도, 대부분은 나쁘지 않은 시간을 지나는 사람. 가끔은 마음에 지더라도,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만한 거라 대답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오늘 글은 곧 지울지도 몰라요. 댓글도 닫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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