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에 대처하고 싶을 땐, 호작도

무례한 사람에게는, 마음 속 호작도 그리기

by 유랑선생

24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현재는 노화의 역풍을 맞았으나 20년 전의 나는 순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실제 어리기도 했고). 안전한 외모의 젊은 여성. 더구나 허허실실 웃는 인간에게는 갖가지 말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어렵게 잡은 택시에서 들은 “학생처럼 보이는데 왜 아침부터 택시를 타느냐. 돈이 많냐”는 잔소리,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낯선 이의 무례함이야 애교로 봐줄만했다. “결혼도 안 하고 육아 경험도 전무한데, 애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아느냐"등의 소수 학부모의 덕담(?)도 그럭저럭 넘겼다. 정중하게 선 그으면 그치는 정도였으니. 그러나 가끔은 도를 넘어 심각한 무례로 돌진하는 일이 있었다. 십여 년 전 어떤 사건처럼.


근무하던 곳에 학생들의 담배 피우는 영상이 제보된 적이 있었다. 집 담장 근처서 풍겨오는 담배 연기에 참다못한 동네 주민이 촬영해 학교에 건넨 결과물이었다. 영상에 담긴 녀석 중 한 명이 우리 반 김 모 군이었다.


각 집에 전화를 걸어 선도위원회 회부를 알렸다. 그 즉시 김 모 군의 어머니가 교무실로 달려왔다. 이미 성난 표정이었다. 김 모 군이 '담배에 손만 댔을 뿐 입은 대지 않았다. 입에 댔다 치더라도 연기를 들이마시거나 직접적으로 담배 피운 적은 없다' 얘기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 말을 전하면서 아이 말을 못 믿냐며 일갈했다. '아이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선생 자격이 있냐'는 소리도 덧댔다. 이십 대 중반이었나 후반이었나, 아무튼 그때의 내 입은 굳어 버렸다. 논리적으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아득했으니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손에 댔다면 입에도 대고 흡연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말해야 하나. 아드님이 이미 여러 번 담배 냄새를 풍기며 교실에 왔단 얘길 해야 하나. 설명의 시작점과 종료 지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아연해졌다. 여기에 더해 상대가 내뱉는 고성이 끝없이 이어져 내 말을 도통 꺼낼 수 없었다. 교무실에는 김 모 군의 어머니가 내지른 함성과 삿대질만 흐를 뿐이었다. 그날의 무례는 나 홀로 감당해야 함을 깨달았다.


길고 지난한 과정이 끝나고, 퇴근길이었다. 오늘의 사건을 머릿속으로 곱씹던 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줄을 이어가다 결국 화살은 내 쪽을 향했다. 나는 왜 아무 말도 못 했던가. 거대한 무례 앞에 나는 왜 패기 있게 맞서지 못했나. 바보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앞으로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겠다 다짐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세련되고 멋진 대처가 뭘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20년쯤 지난 지금까지 나는 세련되지도 멋지지도 않은 어버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조금 더 냉정해지긴 했지만-


시간 지나며 깨달음은 하나 얻었다. 글 쓰며 눈을 조금 돌리니 내 직업 세계에만 무례가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무례를 범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크고 작은 무례에 노출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내 돈 주고 내가 시키는 데 뭐가 문제냐'며 선 넘는 고객의 갑질이 일터의 무례였고, 어떤 이에게는 직장 상사의 '집에서 뭐 배우고 왔느냐'는 말이 무례일 터였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 뭐가 힘드냐 “는 무심한 말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지그시 밟는 가족의 무심함이 작은 무례가 될 수 있었다. 어떤 무례는 실수에서 비롯된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무례는 '너의 우위에 서겠다'는 비뚤어진 권위의식에 밑바탕을 두고 있었다.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속 호랑이. 김홍도 그림이니, 민화는 아니다. 호랑이의 기개가 잘 드러난 작품.


권위 의식에서 비롯된 무례를 풀어헤치고 싶다면, '권위를 보는 방식'을 좀 살피는 건 어떨까. 최고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던 산군(山君), 호랑이라는 존재로.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국가에서, 이 동물은 오랜 기간 위엄과 위협의 대상이었다. 검고 굵은 줄무늬, 대상을 꿰뚫듯 노려보는 눈꼬리, 날카로운 이빨. 호랑이는 포식자의 무표정과 권위자의 본능을 고루 지닌 존재였다. 두려움의 뒤편에는 물론 호환의 공포가 있었다.『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 출몰과 호환 사건이 600건이 넘게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잦았다. 영조 11년에는 1735년에는 영동 지방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자가 40여 명에 이르러 한 해에 수십 명이 희생된 사례가 적힐 정도였다.


흥미롭게도 이 위협적인 짐승은 조선 후기 유행한 민화의 주요한 소재가 된다. 나쁜 기운과 잡귀를 막는 존재, 인간 세계와 귀신 세계를 고루 제압할 존재로.


호작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뮤지엄



특히 조선에서는 새해의 액막이 그림인 세화(歲畫)에 호랑이가 담겼다. 호랑이 그림을 대문 앞에 걸어두는 건 '이 집에 이미 가장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선언이 됐으니까. 이름 모를 화가들은 매해 설이 되면 호랑이 그림을 화폭에 그려 넣었다. 각 집의 대문에 호랑이 그림이 걸렸다. 재난과 질병의 침범을 막고자 한 선조들의 바람이 담겼다.

세화(歲畫) - 새해를 맞이하여 집안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재난이나 질병을 쫓기 위해 정월 초하루 대문 등에 붙이거나 주고받던 그림을 말한다.


이 세화에서 호랑이와 짝패로 함께 나오는 동물이 까치다. 민화 속 까치는 대개 소나무 위나 담장 밖에 자리하고 있다.--소나무는 사계절 푸르러 장수, 그리고 새해 정월의 의미를 담은 식물이다-. 이 앉은자리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좋은 소식을 뜻했다. 즉 까치는 일 년 내내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길조(吉鳥)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로써 잡귀를 막는 벽사(辟邪)인 호랑이와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한쌍의 짝으로 자리 잡는다.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민화 속 까치 호랑이의 짝에서 비롯된 더피와 서씨가 등장한다. 왼쪽은 @넷플릭스 캡처 본.


그림 속 한쌍이라 해서 늘 사이좋은 건 아니었다. 현실 속 힘의 관계에서야 호랑이가 한참 윗 서열이었으니까. 어떤 민화 속 호랑이는 음험하고, 위협적으로 으르렁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힘과 권세를 틀어쥔 자, 까치(민중)를 괴롭히는 당대의 양반들을 의미했다. 백성의 서글픈 처지를 토로하고 사회비판 의식을 은근히 드러낸 그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다른 양상의 호작도가 등장한다. 친근한 호랑이가 등장한 것이다. 사나운 얼굴 부분이 몸집에 비해 확대되어 가분수가 되거나, 이빨을 드러내고도 어딘가 어리숙한 모습을 띄는 호랑이. 포효하는 입은 그대로지만, 눈빛이 팔, 다리조차 짧고 뭉툭한 모양새의 짐승. 눈은 크지만 표정은 순박하다.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어수룩하고 친근한 모습. 이런 그림에서 까치는 '바보 호랑이'의 포효에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짖으며 대응 중이다.


호랑이 까치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이 민화의 구도와 양상은 의미심장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왜란과 호란 이후, 조선 사회의 견고한 신분 질서에 균열이 일어났다. 세도 정치로 양반 사이에서도 극심한 권력 경쟁이 일어났고, 중앙 정계에서 밀리고 경제적 힘까지 잃은 양반층이 등장했다. (소작농 신세로 전락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민중에게 있어, 지배층은 더 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닌 연민과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민화를 그린 이름 없는 화공들은 이런 분위기를 포착했다. 양반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무섭게 그려내는 대신 눈동자를 사시로, 몸통을 뭉특하게 그렸다.


호작도,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까치와 호랑이의 관계를 현실과 다른, 그림 속 심리적 전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몰락한 잔반과 달리, 중앙 정계에서 힘을 유지하던 양반들은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 역시 심해졌다. 그러나 괴롭힘 속에서 민중들의 저항의식도 점차 자랐고, 이는 민화 속 구도로 드러난다. 용맹과 위엄이었던 산군(山君)은 영리한 작은 까치에게 골탕을 먹고 쩔쩔매는 존재로도 탈바꿈했다. 힘 약한 백성의 한풀이로 강한 자를 골려주는 속 시원한 내용을, 이름 없는 화공들은 화폭에 담았다. 두려움을 해학으로 승화시킨 대담함을 보여준 셈이다.




수백 년 전 화공이 호랑이를 위엄에서 조롱으로 끌어내렸듯, 무례함으로 권위를 증명하려는 자에게 심리적 전복을 꾀할 수 있을까.


최선이야 있다. 더 적극적인 까치가 되는 방법. 민화 속 까치는 무서운 호랑이 앞에서 숨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몸집으로 쉴 새 없이 짖어 호랑이의 기세를 흩트려 놓는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무례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을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가능한 처방이다. 감정을 섞은 큰 목소리보다 건조하고 명확한 한 마디가, 단호한 침묵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니까. 담백하고 흔들림 없는 대응 앞에 호랑이, 현실 속 무례한 존재들도 의외로 당황한다.


그러나 처방은 쉽지만 말처럼 모든 게 쉬운 건 아니다. 논리도 없이 크나 큰 목소리로만 몰아붙이는 사람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며 까치처럼 구는 건, 평범한 이에게 너무나 버거운 숙제가 될 수 있으니까. -20년 전 내가 그랬듯. -


그럴 때 마음속 호작도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 세련되고 당당하게 대거리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화폭에서 한 걸음 나와 상대를 다시 살펴보는 건 어떨까. 무례한 이들은 거창한 존재가 아니니까. 무례의 밑바탕에는 대개 본인도 해결 불가한 열등감이나 내면의 결핍이 깔려 있다. 그 결함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상대를 '거창한 갑'이 아닌, '교양 없는 관찰 대상'으로 설정해 내 시선 아래에 둘 수도 있다. 내 삶의 화폭 위에 상대의 위치를 직접 배치하는 것, 그것이 마음속 호작도를 그리는 본질 아닐까. 상대가 심리적 주도권을 틀어쥐지 않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무례한 이들 앞에서 당당히 맞서지 못했다고, 할 말을 다 내뱉지 못했다고 내 심약함을 탓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이없는 포효에 가슴이 내려앉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다정하고 예의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니까.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당신을 할퀸 무례한 이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바보 호랑이로 그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마음속 호작도는 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랜만에 연재 글 올립니다.


제가 고민을 많이 하다가 ㅎㅎㅎ 민화와 조선 생활사를 엮은 청소년 교양서 원고를 작년에 썼기 때문에 (아직 출간이 되지는 않았고 출판사에 넘긴 원고입니다만) 민화와 에세이를 결합한 내용을 연재하려 합니다. 10주 간 연재할 예정이고요, 음.. 오늘 2시쯤 올리려고 했는데 이렇게나 많이 늦어졌네요. 앞으로는 (아마도) 일요일 2시쯤 연재하지 않을까 싶어요.


민화에 대해 좀 더 길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에필로그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긴 했는데, 짧은 연재 기간의 관계상 주제로 바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먼저 연재합니다. 오늘은 글이 좀 거칠어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시간 흐르면서 저의 집중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글도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례한 사람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요, 당당한 나, 어떤 상황에서든 강하게 대처하는 나를 가꾸어가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사고당하듯 ㅎㅎ무례한 상황에 처할 때가 오긴 하더라고요. 그럴 때 피해자 비난하듯 나 자신에게서 너무 원인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단 바람도 있습니다. 선량한 분들이 그런 마음 때문에 아파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그리고 앞에서 다룬 에피소드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라 아주 작은 각색도 있고 (사실 관계는 거의 똑같습니다만) 조금 대략적으로(?) 적혀 있음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많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다음 주에 다음 연재 글로 뵙겠습니다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