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가 초라해 보일 땐, 일월오봉도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닌 듯 느껴질 땐 일월오봉도 병풍 펼쳐놓기

by 유랑선생

글쓰기를 훼방 놓는 생각은 3,657가지쯤 되지만, 그중 으뜸은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란 의구심이다. 내 문장을 보태지 않아도 세상에는 뛰어난 이야기꾼이 그득하고, 내가 오늘 쓰지 않아도 흥미로운 글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활자를 펼쳐 세상에 내어놓는 이유가 뭘까. 누가 읽어줄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로, 무용할 수 있는 이 짓을, 나는 왜 이토록 열렬히 하고 있나.


자문자답을 이어가다 가끔은 질문의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도대체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 오랜 글벗이 이 까다로운 질문에 답해 주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Someone이 되고픈 욕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아무나(Anyone)가 아닌, 오직 나라는 존재로 남고 싶은 욕구 말이에요.”


그 답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처음 글쓰기에 매달렸던 까닭도 종국엔 같은 맥락이었단 걸. 세상 풍경 속에 내 존재의 좌표를 찍고 싶은 욕망, 고유한 사람이 되고픈 기원이 있었단 사실을.


해외 생활을 하던 5년 내내(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해외에서 주부 생활 중이었다.) 스스로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 느꼈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 존재했지만, 그 수식어를 떼어낸 '나'라는 알맹이가 부재한 기분이었다. 육아나 살림에는 한결같이 서툴렀다. 주식이나 교육, 요리 정보가 오가는 대화의 틈새에서 늘 붕 떠 있었다. 누군가의 풍경이 된 느낌으로 대화 주변을 장식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글 이야기도 나눌 곳 없는 외로움 끝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도무지 나처럼 느껴지지 않던 그 시기에 활자를 펼쳐놓는 건 유일하게 나다운 짓, 나만을 위한 행위였다.



내 존재의 좌표가 흐릿해질 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느껴질 땐, 우주의 질서를 담은 그림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일월오봉도 벽장문. 왕의 거처를 장식하던 그림으로 추측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일월오봉도(一月五峯圖)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와 달, 소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이 장엄한 풍경은 명실상부한 왕실의 전유물이었다. 대부분 여러 폭의 병풍으로 제작되어 궁궐 정전의 어좌 뒤편에 놓였기에 오봉병(五峯屛)이라고도 불렸다. 왕이 신하들 앞에서 정사를 볼 때는 이 그림이 있어야 했다.


이 그림이 놓인 곳이 비로소 왕좌(王座)가 되었으므로, 궁궐 바깥 행차 시에도 일월오봉도는 그림자처럼 왕을 따랐다. 만일 왕 아닌 이가 일월오봉도 앞에 앉을 경우 그것은 곧 반역을 의미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자리에 앉은 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절대적인 표식이었던 셈이다. 지존의 권위를 상징하는 만큼 그림은 최고의 화원이 맡았다. 티 없이 장엄하고 화려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경복궁 사정 전의 일월오봉도 @위키피디아


잘 들여다보면 그림 속 상징 하나하나에도 존엄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하늘에 높이 뜬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상징하며 각기 왕권의 정통성과 안녕을 기원했다. 그 아래 우뚝 솟은 다섯 봉우리는 높고 성스럽다는 중국 전설상의 곤륜산(崑崙山)이자 오행(木火土金水)의 다섯 원소를 뜻한다. 한편으로 산은 자연의 중심으로, 왕의 통치가 우주의 조화와 어우러져야 한다는 유교의 이상사회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양 끝 산봉우리에서는 두 줄기의 폭포수가 쏟아진다. 음과 양이 조화롭게 합쳐져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아래에는 물보라가 굽이치는데, 왕 앞에 모여 정사를 논하는 조정을 뜻한다. 그 앞 좌우에는 하늘의 신성한 세계와 왕권을 매개하는 우주의 나무, 적송이 자리 잡았다. 이 붉은 소나무는 왕과 왕손의 무궁한 번창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월오봉도 삽병. 한 폭에 일월오봉도를 큰 규모로 그려 나무틀에 끼워 세운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토록 엄격한 왕의 상징이었던 오봉병 역시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궁궐에서 오랜 병풍은 폐기되었고, 이것이 민간 장인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들은 폐기물을 재료 삼아 저가형 일월오봉도를 그려 시중에 유통했다. 덕분에 상류층 뿐 아니라 서민 가정에도 크고 작은 오봉병이 걸렸다. 19세기 이후에는 신당이나 법당에 걸려 신령의 권위를 높이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왕의 전유물이었던 절대적 중심의 풍경이, 각자의 삶에서 저마다의 쓸모를 찾는 그림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일월오봉도 속 빛나는 풍경을 다시 살펴본다. 이 그림은 단순히 존재의 우월감을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화려함과 장엄함의 본질은 각자가 제 자리를 지키는 데 있다. 해는 낮을 지키고, 달은 밤을 품는다. 다섯 봉우리는 땅을 받치고 파도는 끝없이 굽이치며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저 제자리에 존재함으로써 완벽한 세상의 한 폭을 완성할 뿐이다.




그러나 그림 밖 현실의 삶터는 냉정하다. 우리 뒤편에는 나만을 위한 화려한 병풍도, 근사한 무대도 쉽게 놓이지 않으므로.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다. 내가 오늘 직장을 그만두어도 회사는 돌아가고, 내가 빠진 단톡방의 대화 역시 여전히 활기찰 것이다. 내가 부재한 자리는 금세 다른 누군가로 채워질 수 있다. 이 서글픈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길을 잃고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내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가 있긴 할까.’ ‘나는 그저 타인을 위한 배경으로 소모되는 존재인 걸까’


그러나 세상이 날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유를 준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날 깎아낼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 세상이 날 배경 취급한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병풍을 찾아 펼치면 그만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벽녘에 쓰는 글쓰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캔버스 위 덧칠하는 물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매달려온 연구가 그 역할을 한다. 세상이 부여한 역할이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나로서 숨 쉴 수 있는 영토를 구축하는 일.


그 뒷면에 펼쳐진 세계가 세상이 알아주는 화려한 일월오봉도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모니터 앞에 앉아 문장을 고르는 순간, 내 등 뒤에는 새로운 산이 솟고 해와 달이 뜬다. 거대한 세상의 중심이 아닐지라도, 내가 빚어낸 이 작은 세계의 중심은 될 수 있다.


어쩌면 내 삶의 일월오봉도는 누군가가 펼쳐주는 병풍이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 펼치는 풍경일지 모른다. 세상의 쓸모라는 등급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지독하게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 아니다. 나만이 머물 수 있는 작은 우주를 가진 제 삶의 오롯한 주인이 된다.




안녕하세요 글벗& 독자님들,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일월오봉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위치에 있든 문득 의구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이게 정말 내 자리가 맞나’ ‘나는 과연 언제쯤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누군가의 배경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같은 의구심 말이죠. 오랜 고민 끝에 제가 깨달은 건, 우리가 주인공으로 우뚝 서야 할 곳은 그리 넓은 광장이 아니어도 괜찮단 사실입니다. 나만의 작은 영역 하나만 온전히 내 차지라면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단 걸 알았습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배경이 되어주는 일도 중요한 듯 싶고요.


여담이지만, 저 역시 늘 스스로에게 묻곤 해요. “나는 왜 이 힘든 글쓰기를 멈추지 못할까” 특히 브런치에 연재를 할 때 그렇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안부를 나누며 의지하던 글벗 분들이 현생의 바쁨이나 출간 이후의 공백으로, 그리고 다른 플랫폼을 찾아 떠나시는 걸 보았어요. (브런치 작가의 활발한 활동기에도 일정한 주기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 빈자리를 보면서 예전보다 조금 더 외롭단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집필이랑 연재를 병행하는 게 버겁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몇 명이 읽으시든 '누군가에겐 내 글이 도움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합니다. 대단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세발 짝쯤 앞서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고, 출간이나 연재도 이어가고, 글쓰기에 대한 마음도 변치 않는 모습 보여 드리는 게, 제가 이웃분들&독자분들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적정한 응원 아닐까 싶습니다. 이 역시 자의식 과잉일 수 있고 강박적이고 촌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이 마음을 조금 더 붙들고 앉아 있어 보려 합니다.


이번 연재는 이 글을 끝으로 10화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10화 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상반기 중에 청소년 책 원고를 두 개 정도를 잘 마감하고, 6~7월 정도에 찾아뵙겠습니다. 그 사이에도 강연이나 출간 소식, 글쓰기 관련 단상들로 안부 전하겠습니다. 이웃분들 글도 찾아뵙고요.


긴 글 찾아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이 봄 만끽하시길 빌어요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