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될 땐, 연화도

불운이나 고통이 찾아올 땐 마음 속 연꽃 그리기

by 유랑선생

아홉살 되던 해 수해를 겪었다. 1990년 9월, 서울에 65년 만의 대홍수가 닥쳤던 날이었다. 반년 치 내릴 비가 사흘 만에 다 쏟아졌다. 우리 가족은 구로구 개봉동 가게 뒷방에 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세차게 내린 비로 동네는 이미 어른 무릎만큼 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90년대의 학부모답게 우리 부모님은 ‘학교는 가야 한다’ 주의였고, 우리 자매 역시 그 시절 초등학생답게 옆 동네에 위치한 학교 등교를 마쳤다.


2교시 쉬는 시간이었나,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우리 자매를 보고 있었다. “너희 집 지금 물에 완전히 잠겼대. 부모님은 옥상에 계시다 보트 타고 겨우 탈출하셨다고 하네. 두 분 다 친척 댁에 계신다니까, 오늘은 너희 집에 돌아가면 안 돼.” 어리둥절했다. 안양천이 범람해 우리 집을 덮쳤단 건데, 어디로 가야 하지.

바로바로 1990년 9월 우리 동네. 허리까지 물이 차도 출근과 등교를 하던 강한 자들의 시대 @kbs광주


알고 보니 엄마가 지인 분 댁에 손을 써둔 상태였다. 아이가 세 명인 그 집에서 언니와 나는 짧은 더부살이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눈치가 살짝 보이긴 했으나, 물바다가 된 집에 가는 것보다야 나았다. 한바탕 범람한 물이 빠져나가는 데는 사나흘이 더 걸렸다. 겨우 돌아가보니 집 상태가 처참했다. 교과서며 가재도구가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가스불도, 수돗물도 끊긴 상태였다. 다행히 나라에서 생수며 라면을 가져다줬다. 수재 현장을 촬영한다며 방송국에서 기자들도 와서 우리 동네를 구석구석 훑어갔다.


그 시간이 우울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이색 체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돌아가는 어른들 속사정을 몰랐거나 철이 없는 덕분일테지.) 식사할 곳이 없어 자동차 안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흙탕물을 뒤집어쓴 만원 짜리를 물로 살살 씻으며 키득대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수마(水魔)의 기억을 다르게 곱씹게 만든 건 모친의 회고였다. 몇 년 후 그날의 기억을 훑던 엄마가 말했다. 그때 수해를 입어 다행이었다고, 수재민을 위한 저금리 특별대출을 받아서 가계의 급한 불을 껐다고 말했다. 고백건대 그 직전까지 집안 경제가 엉망이었다. 부모님의 날 선 다툼 소리를 끝없이 듣던 즈음이었다. 초가을 수해가 닥쳤고, 역설적이게도 물난리는 가정 경제에 숨구멍을 틔워줬다.


그 무렵 집안 풍경을 보며 늘 의문을 품곤 했다. - 실은 대여섯 살 무렵부터 스무 살까지 머릿속을 떠돌던 물음 - 엄마는 왜 도망가지 않는 걸까. 나라면, 내가 엄마였다면 이 고단한 상황을 내려놓고 백 번도 더 먼 곳으로 도망갔을 텐데. 그쪽이 자신의 삶을 위한 가장 합리적 결론임에 분명해 보이는데. 다행이란 안도감과 의아함이 공존했다. 내 모친이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대신 저토록 잔잔한 표정으로 버티는 편을 택한 이유가 무얼까.



삶이 흙탕물처럼 엉망일 때는 견딤의 미학을 담은 그림을 보는 건 어떨까. 탁한 물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을 담은 작품, 연화도(蓮花島)를.

연화도(화조도 8폭 병풍 중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연화도는 조선 후기 병풍이나 벽장식으로 사랑받은 그림이다. 커다란 연꽃을 가운데 크게 그리고, 잉어나 오리 같은 동물을 함께 담았다. 때로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속세의 기원을 담은 그림 역할을 했다. 대개의 식물들은 꽃이 먼저 피고 진 다음 열매를 맺지만 연꽃의 경우는 다르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화과동시(花果同時)의 생리를 가졌다. 더구나 연밥에는 씨앗이 많다. 그래서 연밥이 가득 찬 꽃이 그려진 경우, ‘빠른 날 안에 잇달아 귀한 아들을 낳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산을 비는 길상화의 역할을 한 셈이다.


유교에서는 연꽃이 군자 또는 선비를 의미했다.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돈이의 말에서 비롯된 상징이다. 그는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서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은 연꽃의 특성을 예찬했다.

연화도 자수 병풍 @국립대구박물관 소장(기증품)


비릿한 진흙 속에서도 맑은 꽃을 피워내는 것,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자태는 청렴결백하고 고고한 성품을 떠올리게 했고, 이는 곧 군자의 모습으로 연결됐다. 특히 푸른 연꽃인 청련(靑蓮)은 결백하고 깨끗함을 뜻하는 청렴과 그 발음이 같았다. 여기에서 유래한 한 송이 연꽃은 일품청렴(一品淸廉)이라 불렸다. 인격이나 관직자로서의 자세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고결한 이를 뜻하는 말이다.


이 고고함의 정신은 불교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불교 경전에 '불구덩이 속에 푸른 연꽃이 있다 [火坑中有靑蓮]'는 말이 있다. 지옥처럼 괴롭고 답답한 상황 한가운데에도 부처님의 자비와 구원이 있다는 뜻이다. 겉보기에 고통과 악(惡) 뿐인 자리라 해도 그 안에는 마음의 구원과 평화가 깃들 수 있음을, 식물은 조용히 알려준다.



연화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일상이 흙탕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손으로 아무리 휘젓고 훑어내고 그 탁함이 가시지 않을 듯, 세상이 어지럽고 자잘한 불운과 고통이 이어지는 날들. 그럴 때면 1990년 무렵의 엄마를 떠올려 본다. 내 모친이 질척이는 세월을 버텨낸 건, 스스로를 둘러싼 고통이나 마음속 진흙이 완벽히 제거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고단한 인생이 곧 흥할 거라는 천지개벽의 거창한 반전을 믿어서도 아니겠지.


어쩌면 엄마는 생(生)의 간단한 규칙을 이미 알고 있던 것 아닐까. 세상이 깨끗하지 않아도 피어나는 꽃이 존재한다는 연화도의 문법. 연꽃이 피어난다 해서 진흙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물은 여전히 탁하고 바닥은 비릿하다. 그러나 삶이 징그럽고 탁해 보일 때에도 어떤 것들은 그 진흙을 밀어내며 기어이 생명을 드러낸다.


우리가 삶을 버텨야 하는 이유는 흙탕물이 사라질 기적 때문은 아니다. 진흙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대신, 그것을 딛고 서서 내 몫의 꽃을 피우는 것.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연꽃이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문법 아닐까.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연화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개학을 해서 정신이 조금(사실은 많이.ㅎㅎ) 없었고 글도 좀 급하게 썼습니다. (그래서 평소 글보다 많이 늦었네요;;;) 도입부의 수해 에피소드는 제가 학교 수업에서 자연재해나 범람 부분 나오면 꼭 곁들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ㅎㅎ '너희는 살면서 홍수 겪어봤니?' 이렇게 시작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곤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집필하는 원고 때문에 이런저런 도서를 찾아보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휴머니스트) 란 책을 발견했어요. 평생 가사, 육아를 하면서 가게 일을 꾸리거나 학습지 교사를 하는 등의 노동을 했던 (그러나 명함 없이 '아줌마' '엄마'로 불리던) 6070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인터뷰집이었습니다. 그 책 표지에서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글귀를 보자마자 울컥하더라고요. 엄마의 삶이 자연스레 떠올라 그랬는지, 제 삶의 새로운 교훈을 얻어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쁜 일을 손으로 막을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삶에서 도망가지 않을 수는 있겠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음.. 이 글은 읽는 분들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드리는 내용은 아닌 듯싶기도 하고, 저도 정신이 없는 때라 댓글 창은 닫아두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정신을 차리는 대로 이웃 분들 공간에 조금씩, 찾아가 뵙겠습니다.


다음 주에 이 연재의 10화, 마지막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찾아와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좋은 주말, 행복한 봄날 보내시길요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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