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는 대신 책을 '출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해외에서 외동아이를 기르고 있는 애 엄마다. 외동을 기르는 부모들은 한두 번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둘째 언제 낳아. 아유, 애 외롭겠다. 늦기 전에 빨리 낳아야지"
"(아이를 보며) 외롭지? 엄마한테 빨리 동생 낳아달라고 해."
아들을 성인까지 길러낸 한 지인분은 본인이 50세 될 때까지 이런 말을 들으셨다고 한다. 물론 우리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주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둘째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한번 더 할 자신이 없었다. 육아가 적성에 안 맞았다. (하긴 육아가 적성에 맞을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사실 적성보다 타인을 돌보는 일에 나는 너무 서툴렀다. 심지어 육아 정신력도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했다. 둘째 낳지 않냐고 주변분들이 아무리 걱정해주셔도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내 둘째가 나온다고 그분들이 직접 길러주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결심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해외 생활을 해서 집에 있는 데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으니 사람들이 '너는 일도 쉬고 있지, 애도 딱 한 명 기르지, 대체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고 있는 거냐"라는 식의 질문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나 자신도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내가 대체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당돌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둘째 갖는 대신 책을 써야겠다. 내 이름이 박힌 책'
그 날부터 '내 책 출간하는 법' '책 쓰기' '원고 투고'를 인터넷 포털에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나는 이미 다른 교사분들과 공저로 청소년 교양서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리더 격인 선생님들이 대표로 출간계약이나 출판사와의 의견조율을 하셨고 정작 출간 기획서나 샘플원고 같은 것을 써낸 적은 없었다. 그냥 맡은 부분 원고만 충실히 써서 냈다. 출판사의 피드백 메일을 받아본 적은 있었으나 편집자분이 이야기하시는 대로 열심히 고쳐 냈다. 저자교, 1쇄, 2쇄, 인세 이런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잘 몰랐다. 그냥 공저로 쓴 책의 인세가 조금 들어오면 '아 책이 팔렸나 보다' 생각했고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도 몰랐으며, 출간 계약서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혼자서 책을 쓴다는 것은 모든 부분에서 신세계였다. 일단 샘플원고와 출간 기획서를 되는대로 써서 출판사에 메일로 보내보라고 블로그 글에 쓰여 있었다. 나도 똑같이 해보기로 했다.
책의 콘셉트는 두 가지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있는 청소년 교양서 쪽으로 잡았다. 공저로 이런 콘셉트의 책을 써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지식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지도 오래되어 말로 수업을 할 수 없을 바에야 글로라도 수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기존의 청소년 교양서에 없었던 콘셉트의 책이라면 출판사의 눈에도 띄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카테고리에 유사 도서가 있는지, 있다면 차별점을 둘만한 부분이 무엇 일지 생각해보며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였다.
목차는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다. 목차를 보면 편집자분들은 책의 모양새나 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블로그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책의 타깃 독자층이 중고등학생이었으므로 목차의 제목을 최대한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적어보기로 결심하고 작성을 했다.
한국 휴가를 가는 전날까지 원고 투고 메일을 전부 보내고, 후련하게 휴가를 즐기기로 결심했다(어차피 출판사에서 거절이든 출간 제안이든 연락이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있으니 쉽지는 않았다. 휴가를 가기 전날까지 샘플원고와 출간 기획서는 완성이 되지 않았다. 결국 휴가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날 새벽까지 밤을 꼬박 샜다. 새벽5시가 되어서야 원고 투고를 마쳤다. 투고를 여기 저기 하면 어디서 인가 한 군데는 연락이 오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메일을 써서 보냈다.
새벽 5시에 투고 메일을 몇 군데 겨우 보내고 잠들었다. 아이의 기상으로 결국 아침 7시 정도에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메일함에 새 메일이 하나와 있었다. 원고를 보낸 출판사 중 한 곳에서 온 메일이었다.
원고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혹시 원고 좀 더 쓰신 분량 있으면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날 밤 출판사 이메일을 검색해서 총 8곳 정도에 메일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출간하자고 연락이 온 곳은 그중 5곳 정도였다.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미 공저로 책을 내 본 경험이 아무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사나 전문 분야가 비슷한 분들과 공저로 책을 함께 내보는것도 자신의 책 출간에 좋은 경험이고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또 에세이 등의 분야보다는 청소년 교양서가 훨씬 경쟁률이 낮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오랫만에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은 느낌이어서, 나에게 연락을 준 출판사 분들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연락 온 곳 중 한 곳과 계약을 하여 집필 끝에 결국 출간을 했다. 책 출간은 출산에 비유할만한 과정이 맞았다. 꼬박 열 달이 걸렸고, 미숙해서 많이 힘들었다.
첫 책은 명화를 통해 경제원리나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청소년 교양서였다- 지금 내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어쨌든 경제는 내가 학교에서 가르쳤던 과목 중 하나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반 고흐가 생애 딱 한점 팔았던 그림 <붉은 포도밭> , 튤립 버블 사건을 그린 당시 풍자화 등을 소재로 잡았다. 이런 명화들을 도입부로 하여 경제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가끔 명화에 관심 있는 성인 여성분들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겨주시기도 하였다). 이 책을 쓰면서 명화나 화가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서 약간의 지식을 쌓게 되었다.
물론 책을 썼다고 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책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종도서 교양도서, 국립 어린이청소년도서관 추천도서 등에 선정이 되어서 출간 9개월 정도 후에 중쇄를 찍었다. 이 역시 출판사가 애써주신 부분도 있고, 운도 좋은 편이었다.
최근에 나온 두 번째 책의 콘셉트도 비슷하다. 소설과 경제학의 내용이 융합된 경제 교양서다. <소나기> 속 첫사랑 이야기를 경제학으로 풀어 설명한다든지 <오즈의 마법사>에 관련된 화폐제도 이야기 등을 풀어낸 책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모델이 사실 경제학자 멜서스라던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관련된 경제현상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도 한 번 넣어보았다. 보통은 학생들이 경제라면 좀 딱딱한 분야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런 선입견을 깨기 위해 인간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로 경제학을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 책으로 낳은 두번째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책도 이미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으니 올해 안에 출간될 것 같다. 이 원고 역시 경제 교양서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좀 더 타겟을 다르게 두고 썼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쓰게 된 첫 책이다. 세번째 원고는 출간 전이지만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하는 2020 우수 출판 콘텐츠에 선정이 되었다. 지난달, 출판사 부장님이 메일로 이 소식을 전해주셨다. 가끔 코로나로 우울한 이 나라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기쁨의 소식을 듣는 날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네 번째 책과 다섯 번째 책도 현재 집필 중이다. 네 번째 책은 함께 일했던 출판사에 내가 새로운 내용을 쓰고 싶어 먼저 제안하여 쓰게 되었고, 다섯 번째 책은 감사하게도 한 출판사에서 첫 번째 책을 보고 먼저 집필 의뢰를 해주셔서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무료한 일상이 이어지는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내가 하고 있는 공적인(?) 일은 책 쓰는 일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 같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내 책들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올해 2월에는 어떤 회사의 사보에 1년간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다가 다음날 바로 상대방의 사정으로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심하게 실망했다). 이미 경험을 해봤어도 출간을 거절하는 출판사의 메일은 왠지 슬프게 느껴진다.
현재는 코로나로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게 되면서 책을 쓸 시간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기도 하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장시간 집중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와 같다-아이 밥을 먹일 때 노트북을 펼쳐 원고에 몇 줄을 적어보기도 하고, 아이를 재운 후 조심조심 나와 장난감 방 한구석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매일 나와 싸우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트북을 펼쳐 들고 글을 쓰다가 '내가 글을 쓰는 건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건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걸 이렇게 써봤자 누가 보려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막강한 지식과 글솜씨로 무장한 작가들 글을 읽으면 질투가 샘솟고 자신감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글쓰기 때문에 기뻤다 슬펐다가, 자신감이 하늘로 솟았다 바닥을 쳤다 한다.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거린다.
그래도 책이라는 형태로 낳는 자식이 하나하나 늘어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지식도,글도 쓰면 쓸 수록 깊이를 갖추게 되지 않을까? 내 글쓰기 실력도 언젠가는 상당히 막강해지는 것 아닐까?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도 아이가 잠들면 또다시 노트북을 펴고 자판을 두드려본다.
p.s. 앞으로 이 매거진에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을 가끔 적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