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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Aug 21. 2020

네가 뭘 안다고 글을 쓰고 앉아 있어

글쓰기의 현타(?)를 불러일으키는 몇 가지 목소리들  

 밤 9시. 아이가 드디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안방을 나와 장난감 방으로 갑니다. 장난감 방에는 저만의 공간이 있습니다. 옷장과 옷장 사이에 있는 빌트인 책상(책상이라 하기에는 많이 좁지만)입니다.  이곳에 제가 쓰는 노트북이 있습니다. 4년 전 글을 쓰겠다는 결심 아래 제 돈을 주고 산 노트북입니다. 그때 남편은 사양이 좋은 본인 노트북이 있는데 왜 제 노트북을 따로 사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원고 투고를 하기 전이었습니다) 저만의 노트북으로 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막상 노트북에 있는 한글 프로그램을 열고 하얀 화면을 보자 막막해집니다. 첫 책의 투고를 할 때부터 3년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투고할 샘플원고나 출간 기획서를 쓰거나 집필할 원고를 썼지요. 그러나 3년간 계속 글을 썼다고 해서 글쓰기에 앞선 막막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저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몇 가지 생각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머릿속에서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인데, 저의 글쓰기에 무척 비판적입니다. 이 목소리들은 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 네가 뭘 안다고 글을 쓰고 앉아 있어

 

첫 책을 쓸 때부터 저를 괴롭혔던 생각입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청소년 교양책을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예전부터 무엇인가에 대해 아는 체하고 싶어 하는 뿌리 깊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지적인 이미지에 대한 목마름이었지요. 교사라는 직업이 전체적으로 저의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들어맞았던 부분도 이런 면이었습니다. 아는 체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 역시 이 욕망에 맞추어 누군가에게 지식과 이론을 알려주는 분야를 택했습니다. 소심한 관종이니까 대놓고는 아는체 못하니 글쓰기가 참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저는 교양책을 단번에 쓸만큼 지식이 풍부하지 못합니다. 아는 체 하고 싶은 욕망과 부족한 지식. 이 두 가지 상황 사이의 모순을 남들은 몰라도 저 자신만큼은 잘 알고 있지요. 이 때문에 제 내면의 목소리가 글 쓰는 스스로에게 저런 말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제가 현재 집필하고 있는 원고 중 하나가 경제에 관련된 청소년 책입니다. 가령 그 원고 중 자본주의에 관련된 부분을 쓰려하면 내면의 목소리가 다음과 같이 속삭입니다.

 네가 자본주의에 대해 뭘 안다고 이걸 쓰고 앉아 있어.
자본주의가 네 얕은 지식 체계로 설명이 되니?


청소년 책은 타깃 독자에 맞게 쉽고 정확하게 지식과 정보를 나타내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글쓰기가 까다로울 때가 있습니다. 쉽고 정확하게 글을 쓰려면 더 깊고 풍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적당한 사례를 들고 쉽고 명확한 용어로 책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어마어마한 개념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만큼 저의 지식이 풍부하지 못합니다. 이런 목소리가 들릴 때에는 참고도서를 뒤적거리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며 정확한 글감과 개념 설명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현재 제가 올리고 있는 브런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아는 체하고 싶어 이런 글 주제를 택했지만, 제가 미술 전공이 아니기에 미술에 관련된 부분을 설명할 때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저는 미술이나 미술가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니까요. 자연히 글을 쓸 때 "네가 뭘 안다고 이걸 쓰냐"는 내면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지요. 이 때도 내면의 목소리를 이겨내기 위해서 되도록 많은 자료를 찾아 헤매야 합니다.  


2.  글을 써봤자 몇 명이나 보겠어? or 열심히 썼는데 반응이 안 좋으면 어떻게 하지?


이 목소리는 주로 브런치 글을 쓸 때 많이 들립니다. 브런치에 글 쓰는 분은 아시겠지만 브런치 작가의 기쁨이자 슬픔인 4가지 망령이 존재합니다. 조회수, 라이킷, 댓글, 구독자수가 그것이지요. 초기에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나오지 않아 브런치에 글쓰는 것을 때려치울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운 좋게도 글 하나가 다음 메인에 올라서 글의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글을 쓸 때마다 이 숫자들이 주는 압박감은 여전합니다.


 게다가 온라인에 쓰는 글은 그 반응이 즉각적입니다. 책은 장기간의 집필과 교정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기 때문에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지요. 반면 온라인에 글을 올릴 때에는 당장 그날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거나 반응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스트레스가 뒤따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이상, 구독자가 만족할 만한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피하기 어려운 짐이지요.


책쓰기에도 비슷한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입니다.

"청소년 경제... 아무리 봐도 청소년한테 인기 분야는 아닌데(그러나 어떤 저자분들의 도서는 분명 인기를 끄는 분야입니다), 과연 이 책이 반응이 있을까. 이렇게 열심히 써도 안 팔리면 출간 후에 슬픔은 어찌 감당하려나."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는 목소리가 속삭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글쓰기에 가장 큰 위협입니다. 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글감도 잘 생각나지 않고 조바심만 나서 글쓸 의욕이 뚝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3.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지? or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제가 호기롭게 출판사에 제안하여 계약한 원고는 혐오와 차별에 관한 청소년 책입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써보고 싶었던 데다 청소년들한테 꼭 필요한 이야기라 선택한 주제이지요. 그래서 출간기획서에 마구 흥미로워 보이는 제목 위주로 넣어 목차를 싸질렀습니다(표현이 조금 저속하지만. 일단 출간 계약을 위해 흥미롭고 다채로운 내용을 원고에 다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목차를 써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혐오와 차별에 대한 글은 기존에 쓰던 경제에 대한 책과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소수자 차별이나 성 차별, 인종차별 등 주제에 알맞은 글감과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가야 합니다. 예민한 사회 현상을 담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에 대한 사례나 사회현상을 어느 선까지 다루고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그 선이 주요 독자인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것인지 매 순간 고민이 됩니다.


브런치 글도 비슷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더군요.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이상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자기 검열의 늪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겁쟁이인 저는 실제로 나를 아는 분이 글을 읽을까 겁도 많이 났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인간관계를 다룬 글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오해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이런 목소리가 따라다닙니다.


"마음속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려도 되는 걸까?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

"이렇게 쓰면 글 읽는 사람들이 너를 불쌍하거나 비뚤어진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닐까??

"솔직한 글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어두운  거 아니야? 글 읽는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거 아니니?"


청소년 교양책을 쓸 때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가끔 저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이라야 글 읽는 이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압니다. 이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자기 검열을 하는 목소리 vs 진심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일같이 싸웁니다.




 3가지 정도를 이야기했지만 그 외에도 글쓰기를 방해하는 목소리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좀 더 놀고 써. 드라마 좀 보고 써도 되잖아"라고 말하는 유혹의 목소리, "차라리 집안일을 하거나 가계부를 쓰는 게 쓸모가 있겠다"라고 속삭이는 주부로서의 제 자아가 속삭이는 목소리, "지금 애 방치하고 글 쓰고 있는 거야?"라며 저를 다그치는 엄마 자아(?)의 목소리도 있지요.


 사실 글 쓸 때의 기쁜 순간은 글쓰기에 엄청나게 몰입했을 때의 1시간, 다 쓰고 나서 뿌듯함을 느끼는 5분 정도가 다입니다. 책을 쓰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전체 과정 중 좋은 글감이나 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글쓰기가 잘되어 몰입이 될 때, 운 좋게 출간 계약을 할 때 등 대략 30% 정도의 과정은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나머지 70% 정도의 과정은 크고 작은 압박감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아, 생각해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경우에는 제 글에 위로를 공감하셨다거나 위로를 받았다는 말씀을 들을 때 진심으로 기쁩니다. 이전에는 주로 지식글을 써왔기 때문에, 제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거든요. 저 역시 다른 분들 글 읽으면서 공감이나 위로를 받을 때도 많습니다. 글을 쓰면서, 또는 댓글을 쓰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느낌이야말로 지금의 저에게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가끔은 저도 이런 목소리들과 싸우면서 힘들게 글을 쓰는 제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에도 현타가 오는 순간입니다. 이럴 때는 생각 멈춤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행동이 생각보다 빨라야 합니다. 안 그러면 오늘 분량의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를 방해하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잠재우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끝마치는 것(그리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다 쓰고 나면 다른 분들의 브런치글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것). 이것이 오늘의 저에게 있어 가장 사소하지만 중요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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