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적지는 홍대에 있었다.
홍대는 주말에 나도 가끔 나오는 곳이라 익숙했다.
그런데 장춘자 계장의 SUV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향했다.
홍대와 신촌 사이 어디쯤인 것 같았다.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다 왔어. 가보면 알 거야.”
장춘자 계장은 허름해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 주차장에 SUV를 세웠다.
뭐가 있는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곳에서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장춘자 계장의 뒤를 따랐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익숙한 듯 8층을 눌렀다.
다른 층에는 어떤 가게가 들어서 있는지 광고판이 붙어 있는데 8층은 예외였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8층에는 일반 가게는 없나 봅니다?”
“응. 8층에는 회사가 있어.”
“회사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어떤 회사인지 바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복도 곳곳에 검은색 정장 입은 떡대 여럿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셨습니까?”
그들은 장춘자 계장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나는 복도 끝에 달린 문과 그 옆에 붙은 간판을 발견했다.
<대봉 무역>
아무리 봐도 수상한 간판이었다.
간판만 내건 조폭 사무실이 틀림없었다.
“여길 왜 온 겁니까?”
내 질문에 장춘자 계장은 툭 한마디를 했다.
“친한 동생이 여기 사장이거든.”
잠시 후 나는 그 친한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장담컨대, 지금껏 내가 본 누구보다도 거구의 남자였다.
그는 2미터가량 되는 키에 100킬로는 훌쩍 넘을 듯한 체중, 그리고 험악한 인상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건달이었다.
그런 사내가 장춘자 계장을 향해 그야말로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형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근처 지나는 길에 들렀어. 참! 소개할게. 앞으로 나랑 같이 다닐 파트너야. 잘 좀 부탁해.”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 파트너. 이게 참 드문 일인데, 그렇죠?”
사내는 큼지막한 미소를 지으며 역시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쥐고 악수했다.
“안녕하세요? 신기탄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대봉 무역 사장 한대봉입니다. 앞으로 우리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형님은 내가 아니더라도 잘 지낼 테지만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동파 김 사장이 풀려날 거야.”
장춘자 계장은 우리의 악수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렇게 말했다.
“와! 김 사장 운 좋네요.”
한대봉은 분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혐의없음이라고 하니 위쪽에서 꽤 힘을 썼나 봐.”
“위쪽이라면 어디일까요?”
한대봉이 물었다.
“짐작 가긴 하지만 넌 모르는 편이 좋을 거야. 몰라야 약이 될 때도 있거든.”
장춘자 계장은 자연스레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엉거주춤 서 있던 나도 소파에 앉았다.
“어쨌든 김 사장 그 새끼 풀려나면 우리한테 복수하려 할 건데…….”
한대봉 역시 소파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미리 알려주러 온 거야. 대비하라고.”
“고맙습니다, 형님.”
장춘자 계장을 향해 한대봉은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둘 사이는 어떤 관계이기에 이 정도로 돈독한지 너무 궁금했다.
“넌 뭐 알려줄 거 없어?”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그러자 한대봉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있잖습니까, 이번에 음주운전으로 사고 낸 여자 연예인. 걔가 더 큰 걸 덮으려고 일부러 사고 쳤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 신기탄 31세.
바쁜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지만 젊은 나이인지라 자연스레 연예계 소식에 흥미가 많다.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는 그 여자 연예인은 다름 아닌 아이돌 겸 배우 조하나이다.
며칠 전까지 그 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니 모를 수가 없지.
조하나는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랬기에 팬은 물론이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까지 꽤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 사고가 기획된 거라고?
“걔 팬이야?”
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장춘자 계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좀 충격이긴 하네요.”
“그래서 뭘 덮으려 했다는 거야?”
장춘자 계장은 이번에는 한대봉을 향해 물었다.
“그 여자가 요즘 뜨는 젊은 정치인 중 한 명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그걸 기자한테 들켜서…….”
“기사 나오기 전에 음주운전으로 막았다?”
“네. 그런 셈이죠. 아마 정치인 쪽에서 코치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기자라는 양반도 위험하겠네.”
“안 그래도 명동파 애들이 그 기자를 쫓는 중이랍니다. 근데 아직 잡히진 않은 모양이고요.”
“그래? 그 기자가 누군지 알 수 있나?”
“네. 한두 다리 건너면 이름과 연락처까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부탁 좀 하지.”
“알겠습니다, 형님.”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대봉 무역에서 나왔다.
한대봉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와 우리, 아니 장춘자 계장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물론 그 뒤에 선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외쳤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1층으로 내려와 다시 SUV에 오르고 나서야 말했다.
“계장님은 인맥이 참 넓네요.”
여러 가지 의미로…….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인맥은 곧 정보야. 정보는 곧 인맥에서 나오고. 나는 서류나 보고서보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 믿거든.”
“그렇군요.”
“자네도 내 파트너가 됐으니 점점 인맥을 넓혀가야 해. 물론 그 전에 제일 중요한 건 안 죽고 살아남는 거지만.”
“네?”
농담인가 싶어 장춘자 계장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고급 정보일수록 위험하지. 어떤 건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 범정에서 오래 못 버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그러면 계장님은 무슨 수로 이렇게 오래 계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나? 난 안전장치를 많이 만들어뒀거든.”
“안전장치라면…….”
“차차 알게 될 거야. 자, 오늘은 이만 헤어지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집에 가라고. 퇴근이야.”
장춘자 계장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직 점심도 안 됐는데요?”
“잘 들어. 우리한텐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의 개념이 없어. 자네도 그 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며칠 씩 밤샘도 해야 하고, 한밤중에 움직여야 할 때도 있지. 다행히 오늘 같은 날은 일찍 가서 발 닦고 한숨 자는 거고.”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니 내려.”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네?”
“차에서 내리라고. 자네 집까지 태워다 주지는 않을 거니까. 난 또 다른 곳에 가봐야 하거든.”
“아! 알겠습니다.”
나는 허둥지둥 SUV에서 내렸다.
장춘자 계장은 내가 조수석 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핸드폰은 365일 어느 때라도 켜두고 있어. 그리고 가까이 둬. 똥 눌 때도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한다고. 알았지?”
“네!”
괜스레 기합이 들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내일 보자고.”
장춘자 계장은 그 말을 남기고 SUV를 몰아 사라졌다.
남겨진 나는 얼마간 서 있다가 지하철역을 향해 움직였다.
단 몇 시간 같이 있었을 뿐인데도 기가 다 빨린 느낌이었다.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거짓말처럼 피로가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깨어났다.
오후에 잠들었으니 거의 반나절 이상 잔 셈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밤 11시였다.
다행히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배가 고팠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백반을 먹은 후로 쭉 공복 상태였다.
냉장고를 뒤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한 음식 말고는 나오는 게 없었다.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갔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당겼기 때문이었다.
밤공기는 서늘했다. 한편으로는 상쾌하기도 했다.
나는 집 근처 단골 편의점에 가서 두 메뉴를 계산한 뒤 테이블에 앉았다.
통유리 바깥으로 어둑한 골목이 보였다.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편의점 바로 앞, 가로등 아래에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통유리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는 채 몇 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남자라는 사실은 물론이고 마른 체구라는 것도 대번에 알아봤다.
또 하나…….
아주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을 가졌다는 것도.
“설마!”
벌떡 일어났다.
잊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건 나를 덮쳤던 덤프트럭 운전사의 눈빛이었다.
나는 편의점 밖으로 달려 나갔다.
몇십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남자는 가로등 아래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갔지?”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 어딘가에 숨었는지 안 보였다.
내 기억력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
분명 놈이었다.
나는 골목으로 더 들어가 보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장춘자 계장님’이라고 떴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계장님.”
“오! 훌륭하군. 단번에 받고 말이야.”
장춘자 계장은 그 말에 이어 바로 용건을 꺼냈다.
“지금 자네 힘이 필요해. 빨리 움직여야 하거든.”
“지금이요? 뭐, 뭘 하면 됩니까?”
“내가 메시지를 보낼 테니 그걸 보고 그 기자 신병을 확보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놔.”
“기자라면…….”
“맞아. 오전에 한대봉이 말했던 바로 그 기자야. 지금 위험한 상황이니까 자네도 몸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임무 완수하면 바로 연락 해줘.”
“네!”
전화는 끊어졌다.
곧 장춘자 계장이 보낸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거기엔 기자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주소가 적혀 있었다.
- 이민아, 010-XXXX-XXXX, 서울 서대문구 XXX 빌라 102동 402호
나는 바로 이민아 기자에게 전화부터 했다.
한참 신호가 떨어진 후에야 차가운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아! 저는…….”
“장 계장님 쪽 사람인가요?”
여자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아직까진 아무 일 없어요.”
“제가 지금 댁으로 갈 테니 절대 다른 사람에겐 문 열어주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네.”
“참! 저는 신기탄 검찰 수사관입니다. 자세한 건 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할 만한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그렇게 말했다.
“알았어요. 서둘러 주세요.”
이민아 기자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네.”
나는 전화를 끊고는 바로 큰길로 달렸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