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기자를 사칭하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따지듯 물었지만 장춘자 계장은 신경도 안 썼다.
그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운전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불법적으로 얻은 정보가…….”
“서울구치소 교도관 중에 내가 아는 친구가 있어. 그이가 말하더군. 조부현은 기자 아니면 면회를 안 할 거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다고. 그러니 어쩌겠어? 그렇게 해서라도 만나야지.”
“그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보를 얻는 게 범정 수사관의 역할이야. 게다가 이건 꼭 필요한 정보였고.”
“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럼 됐어. 그리고 앞으로는 내 방식에 토 달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춘자 계장은 딱히 화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이 정보를 가지고는 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건 아직 원석이야. 가공하면 뭐가 될지 지금부터 분석해 봐야지.”
“설마…… 정말로 같은 정치인이 사주한 건 아니겠죠?”
“모르지.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내가 아는 정치인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연쇄살인범과 다르지 않아, 뇌 구조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라는 거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장춘자 계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나는 흔한 업무 통화라고만 생각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뭐?”
장춘자 계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놀라서 그를 돌아봤다.
“조부현이 자살…… 했다고?”
장춘자 계장이 전화를 걸어 온 이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충격을 받았다.
“방금 우리가 만나고 왔어. 자네도 알잖아! 그런데 그사이에 목을 매고 죽었다?”
나는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입막음 당한 거야! 분명해. 자네도 조심해. 나랑 통화한 거, 메시지 주고받은 거도 모두 지워. 당분간은 연락하지 마.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장춘자 계장은 전화를 끊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조부현이 죽었다는 겁니까?”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래.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해.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걸로 그것들이 서울구치소 안에까지 손을 뻗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군.”
“그것들이라면?”
“그림자 조직.”
장춘자 계장의 그 말이 더는 음모론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유소영 사건도 그림자 조직이 연관되어 있다는…….”
“잠깐!”
장춘자 계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내 말을 막았다.
“왜 그러세요?”
“놈들은 조부현의 입을 막았어. 다음은 어떻게 할 것 같아?”
“다음……. 설마 우리를 노리는 건…….”
“충분히 가능해. 빨리 이동해야 해!”
장춘자 계장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가속페달을 밟으려 할 바로 그때였다.
쾅!
엄청난 충격이 뒤에서부터 SUV를 강타했다.
나는 에어백이 터지는 걸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멍했다.
귀가 지잉, 하고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나는 옆을 돌아봤다.
장춘자 계장은 에어백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조수석 문을 열고 거의 쓰러지듯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봤다.
검은색 스타렉스 한 대가 우리 차를 뒤에서 들이받은 거였다.
그리고 그 차 안에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이 줄줄이 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사고를 낸 게 고의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놈들이 우릴 처리하려 한다는 것 역시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았다.
반면에 놈들은 각목을 들고 있었다.
“너희들 뭐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일단 세게 나갔다.
“아니까 이러는 거지.”
놈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렇게 되받으며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사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나는 맨 앞의 상대방을 향해 훌쩍 날아들어 거리를 좁혔다.
검찰 수사관 일을 하면서 꾸준히 단련했다.
특히 나는 한 번 본 동작은 절대 잊지 않았다.
그래서 권투도, 유도도, 태권도도 자세만은 복사한 듯 그대로 따라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전에서 쓸 일은 거의 없었지만.
거리를 좁힌 후 상대방의 복부와 옆구리에 차례로 주먹을 꽂았다.
“윽!”
첫 번째 사내는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문제는 두 번째부터였다.
각목이 어깨로 날아들었다.
간신히 몸을 돌려 피하며 동시에 옆차기로 반격했다.
내 오른쪽 발은 각목 휘두른 사내의 명치를 정확히 찼다.
하지만 뒤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건 피할 수도 반격할 수도 없었다.
퍽!
각목이 등을 때렸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러면서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내가 엉거주춤 서 있던 자리에 각목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나는 앉은 상태로 사내 한 명의 오금을 걷어찼다.
놈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죽어!”
또 한 놈이 달려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는 힘을 이용해 그놈의 턱에 박치기를 먹였다.
결국 이런 식으로 머리를 사용하게 될 줄이야…….
턱을 강타당한 놈이 픽 쓰러졌다.
나는 재빨리 돌아섰다.
남은 이는 넷이었다. 모두 멀쩡했고, 살기등등했다.
대장은 한 걸음 뒤에 서서 나이프를 빼 들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범정 이틀째 만에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할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부아앙!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장춘자 계장의 SUV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SUV는 잠시 멈췄고, 그 순간에 장춘자 계장이 운전석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빨리 타!”
나는 SUV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수석 문이 열려 있었다.
내가 차에 올라타 문을 닫은 것과 거의 동시에 사내들이 달려와 각목을 휘둘러댔다.
“꽉 잡아!”
그렇게 외친 후 장춘자 계장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힘껏.
차가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사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괜찮으세요?”
내가 물었지만, 장춘자 계장은 눈을 부릅뜬 채 운전에만 집중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사내들이 다시 스타렉스에 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끝까지 쫓아올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죠?”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긴, 따돌려야지!”
장춘자 계장은 큰 소리로 외친 후 핸들을 홱 꺾었다.
SUV는 도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장춘자 계장은 마치 근방 지리를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요리조리 골목을 지나 한적한 공터에 차를 세웠다.
스타렉스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하아. 젠장.”
장춘자 계장이 운전석에 머리를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맥이 탁 풀려 한숨부터 나왔다.
“어휴.”
“다치진 않았어?”
나를 향해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각목에 한 대 맞긴 했는데 다행히 등이라 크게 아프진 않습니다.”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혀 안 아픈 건 아니었다.
“개새끼들이 감히 검찰 수사관을 담그려고 해!”
장춘자 계장은 분노에 찬 표정이었다.
“어떤 놈들일까요?”
내가 물었다.
“조부현의 말이 새어나가길 원치 않는 놈들이겠지.”
“이제 어떻게 합니까?”
“내 인생 좌우명이 뭔지 아나?”
“모릅니다.”
“한 번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준다야.”
“전 세 배로 갚아주고 싶습니다.”
“좋아. 좋은 자세야. 역시 빨리 배우는군.”
“그런데 지금 당장은 반격할 힘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정보야. 정보만 있으면 꼭 물리적으로 복수할 필요가 없거든.”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잘…….”
장춘자 계장은 내 말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기사를 내.”
상대방이 뭐라고 질문했는지 장춘자 계장은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내 목숨이 달린 문제라니까!”
조금 화를 누그러뜨린 장춘자 계장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서울구치소에서 연쇄살인마 조부현이 살해당했다. 분명히 살해당한 거야. 자살이 아니고. 범인은 구치소 내부자로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다. 그리고 이게 중요해. 잘 들어. 죽은 조부현은 유소영 의원 살인 사건의 진범임이 밝혀졌다. 좋아. 받아적었지? 그 내용 다 넣어서 바로 기사 올려!”
그 말을 끝내고 장춘자 계장은 전화를 끊었다.
그런 뒤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한테 전화한 겁니까? 근데 아직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잘못된 정보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했지? 이게 바로 그런 경우야. 이 기사가 나가고 나면 다른 언론에서 다들 퍼 나르기 바쁠 거야. 그러면 그 순간 이 정보는 ‘진짜’가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우릴 공격한 쪽은 당황하게 될 거고.”
“이게 계장님 방식의 역공이군요.”
“맞아. 단, 이건 시작일 뿐이야. 우선은 이렇게 정보를 흘린 뒤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는 거야. 그런 다음 이후 단계를 구상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좀 쉴까?”
장춘자 계장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네?”
“이 근처에 잘 아는 불가마가 있거든. 자고로 몸이 뻐근할 땐 뜨거운 곳에서 지져야 해.”
“아! 불가마 좋죠. 하하.”
이번에도 내게 선택 권한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몸을 뜨겁게 지지기 위해 불가마로 향했다.
뒤쪽 범퍼가 박살 난 SUV를 끌고서.
불가마에서 샤워를 마치고 구운 달걀에 식혜까지 시켜 장춘자 계장과 모여 앉았을 땐 이미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아무래도 장춘자 계장에게 단단히 약점 잡힌 기자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거지. 잘 썼네. 최대한 자극적으로.”
그랬다.
몇 줄 안 되는 기사에는 자극적인 단어가 넘쳐났다.
그걸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메시지는 단 한 줄이었다.
- 장춘자 계장을 넘겨야 네가 살아.
“뭐해?”
메시지를 거듭 읽고 있는데 장춘자 계장이 불쑥 물었다.
“아, 아닙니다. 스팸인 것 같네요.”
“자네도 이 일 하려면 핸드폰 한 대 더 필요하겠어. 업무용으로 따로 하나 파. 아니, 내가 사줄게.”
“아닙니다. 제 돈으로…….”
“다 내가 편리하자고 하는 거니까 그냥 말 들어. 사준다고 할 때.‘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요 계장님. 파트너는 제가 처음입니까?“
”아니. 한 5년 전에 아주 똘똘한 놈을 파트너로 데리고 다녔던 적이 있었지.“
장춘자 계장은 의외로 술술 다 말해줬다.
”그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니, 갑자기 궁금해서요.“
”죽었어.“
”네?“
”업무 중에 사고로 죽었어. 그뿐이야.“
장춘자 계장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
죽었다…….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죽었다고?
장춘자 계장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전화해 온 의문의 남자가 날 속이는 걸까?
”뭐해? 불가마 안 들어가?“
어느새 목에 수건까지 감은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아! 들어가야죠.“
나는 순순히 그를 따라 불가마로 향했지만 머릿속은 미칠 듯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