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elona의 Gaudi, Gaudi의 Barcelona
바르셀로나 Barcelona의 계획된 신시가지 “엑삼플레 거리”
스페인의 경우 근대 사회로 가는 큰 변곡점의 하나인 산업혁명을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늦게 시작하였다. 1836년 무렵에서야 까탈루냐 지방에서 섬유산업과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1834년에 400여 년간 이어오던 종교재판이 정식으로 폐지되고, 1840년에는 스페인의 첫 철도가 “바르셀로나”에서 북부 “바스크”Basque 지방까지 연결되기도 하였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다른 나라처럼 많은 노동력이 대도시인 바르셀로나에 유입되었고, 증가된 인구는 도시의 확장을 불러와 새로운 신시가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19세기 말 바르셀로나에 계획적으로 조성한 신시가지 구역이 “엑삼플레Eixample 거리”이다. 마치 서울의 강남처럼……
“까탈루냐 광장”에서 “디아고날 역”Diagonal까지 거리에 해당되는 이 구역에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명품 점들이 모여있는 “그라시아 거리”Gracia와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카사 밀라”Casa Mila 등 가우디 Antoni Gaudi 중기 예술의 특징이 나타나는 중요한 건축물들이 있다. 그 외에도 “카사 칼베트” Casa Calvet, “카사 아마트예르” Casa Amatller,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 등 “모데르니스메 운동” Modernisme 건축의 걸작들이 있는 바르셀로나 여행의 핵심 구역이라고 할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은 “엑삼플레 거리”에 있는 “가우디” 건축을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조금 이른 아침에 들른 “까탈루냐 광장”은 어제 오후에 본모습과 달리 한산하기까지 하였다. 새벽부터 광장을 청소한 청소차들 덕분에 비 온 듯 축축이 적셔있는 광장 바닥이 아침 공기와 함께 싱그럽게 다가왔다.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지중해의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거리의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그라시아 거리”를 걸었다. “스페인은 건축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건물들 하나하나가 특색 있는 창조작들 이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그저 감탄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아직 열지 않은 명품점들의 파사드와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해골 모양의 창문 테라스를 가진 “카사 바트요”Casa Batllo가 건너편으로 보였다.
곡선의 아름다움 “카사 바트요”
아침 9시부터 입장을 시작하는데 입구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오면 편했을 텐데……’ 다행히 아침 이른 시간이라 현장에서 표를 사 들어가는데도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은 없었다.
“카사 바트요”는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으로 지은 지 30년 된 집을 주인인 “호셉 바트요” Josep Batllo의 요청을 받아 “가우디”가 리모델링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건축물에는 기본 구조를 손대지 않은 정연함이 숨어있었다. 1904년부터 1906년에 걸쳐 개조하면서 지중해를 테마로 한 푸른 색조와 유리 모자이크, 색색의 타일로 장식을 하였다.
“직선은 인간의 선, 곡선은 신의 선”이라면서 곡선을 강조한 “가우디” 양식의 특징이 건물 곳곳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외벽 벽면의 뼈와 해골의 상징으로 장식된 테라스를 보면서 곡선의 우아함과 그 발상에 놀라울 뿐이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표현한듯한 건물 내부의 소용돌이치는 천장과 부드럽게 휘는 창문과 기둥, 모서리 없는 둥근 공간의 곡선 등에서 극히 자연스러운 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중앙 홀 벽면은 유리로 모자이크 되어 있어 자연광에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한다. 그라시아 거리가 환히 보이는 홀에서 창 밖의 거리를 보니 내가 주인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가우디는 까탈루냐 수호성인의 이야기도 건물에 반영하여 지붕에 “카사 바트요”의 또 다른 특징인 용의 등뼈와 비늘을 형상화한 굴뚝을 만들었다고 한다.
‘곡선, 자연, 카탈루냐라는 세 가지가 “카사 바트요”에 담긴 가우디의 철학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