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day. Barcelona의 Gaudi...3)

Barcelona의 Gaudi, Gaudi의 Barcelona

by Arista Seo

가우디의 영광 “성가족 대성당” Sagrada Familia


길을 지나가는 노인에게 구글맵으로 찾은 “성가족 대성당”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다시 물어봐 최종 확인을 한 후 버스를 타고 성당으로 갔다. 성당으로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보이는 바르셀로나의 거리가 왠지 다정스럽게 다가왔다. 성당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빠에야와 파스타로 점심을 먹은 후 성당의 동쪽으로 갔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연못 공원에서 성당 중 가장 먼저 지어진 “탄생”의 파사드와 4개의 종탑이 보이는 성당 전경이 보였다.


성당 앞 공원에서 바라 본 "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첫 눈길을 빼앗는 타원형으로 길게 늘여진 옥수수 같은 모양의 탑과 100년이 넘은 흔적을 보여주는 색들의 명암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경건함을 우러나오게 하였다.


“성가족 성당” Sagrada Familia이 가우디를 위대한 예술가로 존경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대표적 이미지로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유럽의 성당 중 다른 많은 성당들도 몇 백 년에 걸쳐서 지어졌지만, “성가족 성당”은 유일하게 현재도 지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현재의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점과 “가우디”만의 독특한 디자인 즉 “자연”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디자인이 다른 성당과 차별화된 예술적 가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가족 대성당 Sagrada Familia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성가족 성당”은 1882년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통해 비야르 Villar가 신고딕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1년 뒤 가우디가 후임자로 공사를 맡게 되었다. 이때 가우디의 나이가 31세로 다시 처음부터 성당 설계를 하여 죽는 날까지 43년간을 이 공사에 바쳤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가우디는 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설계를 하면서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숙식을 하는 등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고 한다.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어 있다.

성당은 가우디가 죽은 뒤에도 기부금과 성당 입장료로 비용을 충당하면서 그가 남긴 3개 건물의 파사드와 18개의 첨탑 설계도를 가지고 후배 건축가들에 의해 130여 년째 계속 건축되어왔다. 이제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입장 시간보다 여유 있게 일찍 도착하여 성당 주변을 여러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성당 이름의 성가족은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당이 최종적으로 완공되면 “탄생” “수난” “영광”의 3개 파사드와 각 파사드 별 4개의 종탑 도합 12개의 종탑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12개의 종탑은 예수의 12제자를 의미하며, 12개의 종탑 외에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저자를 상징하는 4개의 탑을 포함하여 성모 마리아를 위한 첨탑,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탑 등 6개의 탑이 12개의 첨탑 안쪽에 세워질 예정이다. 현재는 동쪽 “탄생”의 파사드와 4개의 탑, 서쪽 “수난”의 파사드 와 4개의 탑이 완공되었고 “영광”의 파사드 와 4개의 탑 그리고 안쪽의 6개 탑은 공사 중이다.


가우디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동쪽 “탄생”의 파사드


동쪽 “탄생”의 파사드와 4개의 종탑은 가우디 생전에 완성을 해서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이 동쪽 파사드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왼쪽이 “소망의 문”, 가운데가 “사랑의 문”, 오른쪽이 “믿음의 문”이다.


문 위쪽으로 파사드에 가우디는 예수 탄생과 관계된 성경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풀어놓았다. 왼쪽에 ‘요셉과 마리아의 정혼’ ‘이집트로의 피난’ ‘예수를 돌보는 요셉’ ‘로마 병사의 영아 살해’ 등이 새겨져 있었다. 중앙에는 ‘수태고지’ ‘예수 탄생과 천사들의 찬양’ ‘동방박사와 목동들의 경배’ ‘성모 마리아 대관식 장면’ 등을 새겼고, 오른쪽에 ‘목수일을 하는 예수’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어린 예수를 찾는 요셉과 마리아’ ‘교회에서 학자들과 대화하는 어린 예수’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등을 새겨 놓았다.


마치 조각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화려하고 생생한 사실적인 조각들에 놀라울 뿐이었다. 파사드 위 네 개 탑 중에서는 가장 왼쪽에 있는 탑이 가우디가 살아 있을 때 유일하게 완성한 탑으로서 높이가 100m라고 한다. “탄생”의 파사드와 4개의 종탑은 가우디가 죽은 후 1930년에 최종 완성되었다.


동쪽 "탄생" 파사드의 종탑
동쪽 "탄생" 파사드 문 위 왼쪽, 중앙, 오른쪽 조각


때론 파격이 감동일 때도 있다. “수난”의 파사드


성당의 서쪽은 “수난”의 파사드로 장식되어 있다. 가우디가 죽은 후 “호셉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라는 바르셀로나 출신 조각가가 성당 공사의 총책임자가 되어 예수의 수난 장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제 카탈루냐 광장에서 보았던 조각품을 만든 그 예술가이다. 가우디를 이어 책임을 맡은 그는 부담이 꽤 되었던 것 같다.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가우디는 형식과 모양을 반복하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그 원칙에서 생각하고 접근하여 “수난”의 파사드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탄생”의 파사드와 다르게 그는 현대적이고 남성적인 양식을 도입하여 파격적,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간결한 직선과 단순화시킨 조각들로 파사드를 장식하였다. 성서의 중요한 이야기들 –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와 베로니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예수의 옷을 갖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는 로마 병사 등 – 을 새기면서 현대 조각의 기법인 ‘명암의 농담’으로 상징성을 극대화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예수의 얼굴도 음각 조각을 적용하여 시선의 이동에도 예수의 얼굴 표정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였다.


조각들을 자세히 보다 보니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옆의 로마 병사들이 쓰고 있는 투구의 모양이 “카사 밀라” 옥상 굴뚝의 모양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서쪽 파사드의 출입구는 청동으로 된 육중한 문으로 정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문 앞에는 기둥에 묶여 고초를 당하는 예수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1976년에 4개의 탑을 포함한 “수난”의 파사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서쪽 "수난"의 파사드 종탑
"수난"의 파사드 조각
청동 문 앞 기둥에 묶인 예수 와 "카사 밀라" 옥상 굴뚝에 있는 투구 모양의 로마 병사


현재 진행형의 남쪽 파사드


성당의 남쪽은 “영광”의 파사드로 계획되어 있다. 종탑으로 올라갈 때 현재 공사 중인 남쪽 파사드의 일부가 조금 보였다. 아주 일부분밖에 볼 수 없었지만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데르니스메 운동의 특징이 반영된 나무와 꽃의 상징을 활용한 세밀함과 화려함으로 남쪽을 장식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혼자서 하였다. 2026년 완성될 성당의 모습이 기대 되었다.


종탑 올라갈 때 와 성당 밖에서 보인 남쪽 파사드의 일부


자연과 햇살의 향연 성당 내부


성당의 내부는 숲 속이었다. 마치 야자수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기존의 성당에서 볼 수 없는 나무와 꽃들을 디자인화한 형상이었다. 천장은 해와 나뭇잎을 형상화하여 장식하였고, 회랑의 상부 천장을 주변의 천장보다 높여서 선명한 빛의 통로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마치 울창한 숲 속에서 하늘을 보는 느낌이었다. 4대 복음서를 의미하는 네 개의 기둥 위에는 가지들이 천장으로 뻗어져 있었다.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운 색채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천장과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살에 따른 아름다운 빛의 조화에 황홀할 뿐이었다. ‘이래서 모든 건축의 근본은 자연이라는 말이 나온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 파사드로 넘어가면서 들어오는 햇빛의 조화에 반해 성당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성당 안에 앉아 그저 천장과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만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의 내부는 2010년에 완성되어 교황이 집전하는 봉헌미사가 거행되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


창문의 스테인드그라스


성당 내부 빛의 향연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성당을 짓는다는 발상이 충분히 나올 만큼 성당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성가족 성당”을 가려면 반드시 인터넷 예약을 하고 가능하면 오전에 둘러볼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 가우디의 건축물을 몇 개 둘러보지도 않았는데도 수많은 관광객들에 놀랐다.

“와~ 이렇게 사람들이 많으면 도대체 관광 수입이 얼마나 되는 거야? 완전히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리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어쩌면 가우디는 진심으로 바르셀로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예술 같은 건축물들이 나올 수 있었을 거야. 이제 거꾸로 바르셀로나가 가우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놀라움 반, 부러움 반에 덧붙인 말이었다.


도시 메트로 L2선과 L4선을 갈아타면서 “산 하우메”San Jaume역에서 내렸다. 보른 Borrn지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역에서 내려 미술관을 찾아가면서 광장에 있는 “까탈루냐 자치정부 청사”도 구경할 수 있었다.


산 하우메 광장의 자치 정부 청사


골목골목을 돌아 피카소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은 ‘바르셀로나 카드”가 있으면 무료 관람이 되었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고 하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많이 걸어 힘들기도 해서 미술관을 대강 둘러본 후 근처의 람브라스 거리를 따라 숙소로 갔다.

피카소 미술관 입구와 미술관 안 중정 이층


이틀밖에 안됐지만 유럽에서 도시를 여행할 때는 가능하면 구시가지 중심 근처로 숙소를 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면 쉬었다 나갈 수도 있고, 숙소로 돌아갈 때도 편하고, 시간도 절약되고 여러모로 편리했다. 숙소에서 1시간 정도 쉬면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다시 숙소를 나와 까탈루냐 광장으로 간 후 그라시아 거리를 걸었다. 그라시아 거리와 아침에 보았던 “카사 바트요”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은 “카사 바트요”의 야경이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혹시 “카사 밀라”도 야경이 아름답지 않을까 해서 가보았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해서인지 야경 조명을 장치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카사 바트요 야경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서 람브라스 거리를 향하여 걸으며 엑삼플레 지역의 야경을 즐겼다. 여행의 이틀째는 이렇게 가우디와 바르셀로나에 깊이 빠져들면서 마무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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