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설월(風化雪月)의 바이족(白族)

따리(大理)

by Arista Seo

길 위의 인생 "리밍의 눈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양가 집안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여자들의 꿈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에 속하는 윈난성(云南省) 후타호샤(虎跳峽) 오지 계곡에 결혼을 반대하는 시아버지에게 쫓겨나 7년 동안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아이 하나를 낳아 키우며 살아온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가 7년 만에 다시 시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기 위하여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EBS ”길 위의 인생” ‘리밍의 눈물’ 편으로 소개되었다.


시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소수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남자인 “리룽”은 바이족(白族)이고, 여자인 “리밍”은 나시족(納西族)이다. 이들 소수 민족은 같은 민족끼리만 결혼하는 풍습이 있어 “리룽”의 아버지만 결혼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리밍”의 집에서도 “리룽”을 환영하지 않았었다.


"후타오샤" 나시 객잔이 있는 오지 마을의 아침

바이족 자치주 "따리"


바이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15번째로 인구가 많다. 성품이 친절하고 손님 접대하기를 좋아하며 연장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지닌 우리와 가장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흰색을 중요시하는 백색 숭배 민족으로 흰색 옷을 좋아하고 전통 가옥도 흰색이다. 바이족은 쿤밍(昆明)에서 서쪽으로 300여 km 정도 떨어진 윈난성 중서부 지방의 따리(大理)에 약 80%가 거주하고 있어 이곳이 “바이족 자치주”이다.


따리 지역은 당나라 시대에는 남조국(南诏國)이라는, 송나라 시대에는 따리국(大理國)이라는 개별 역사를 지닌 따리를 도읍지로 한 독자적 국가였다. 특히, 따리국 시절에는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중국 남서부 일대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북부 지방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 후 원나라 때 쿠빌라이 칸의 침략에 패배하면서 성의 수도가 쿤밍으로 옮겨졌고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따리 톨게이트 입구 와 따리 고성의 야경
따리 고성 출입 성문

일찍이 따리(大理)는 미얀마와 인도 북부로 통하는 주요 교역로에 위치한 푸얼차의 집산지로 차창(茶倉)이 있었다고 한다. 서쪽으로는 띠엔창산(點蒼山)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얼하이호(洱海)가 놓여 있어 남북으로만 출입이 가능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북쪽을 상관(上關)이라 하며, 남쪽을 샤관(下關)이라고 하는데, 샤관이 교통의 요충지로 도시 행정 공공건물이 모여있었고 상업의 중심지였다. 상관 쪽에는 따리 지역의 상징인 “금계 조각상”과 “따리삼탑”이 있었다. “따리삼탑” 입구에 있는 대리석 전시장을 갔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대리석이란 돌이 따리의 특산물인데 가공하지 않은 돌 자체의 무늬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따리삼탑” 또한 한 개의 돌을 깎아서 만든 탑이라고 한다.


따리삼탑
창산 앞 따리고성 과 대리석 전시장

따리를 풍화설월(風化雪月)의 도시라고도 하는데 이는 “샤관의 바람, 상관의 동백꽃, 창산에 쌓인 눈, 얼하이에 비친 달”을 말한다고 한다. 따리 고성 담벼락에 글자나 그림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고 따리 맥주의 브랜드 이기도 하다.


해발 3,500m 이상 되는 19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창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성안을 흘러 얼하이로 내려가고 있는 따리 고성은 1200년 전 명나라 초기에 지어진 것이었으나 많이 훼손되어 1982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고, 남문과 북문은 일직선으로 놓여 있었다. 고성은 많은 여행객들로 붐볐는데 성을 둘러보는 동안 심심치 않게 전통 의상을 입은 바이족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바이족의 젊은 여자들은 흰색 모자를, 나이 든 여자들은 검은색 모자를 쓰며 공히 전통 꽃신을 신는다고 한다. 이 꽃신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것으로 헝겊을 겹겹으로 해서 밑창으로 댄다. 여자들의 모자에도 따리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모자 뒤의 흰 수는 샤관의 바람을, 꼭대기 흰 장식이 창산의 눈을, 울긋불긋한 수는 상관의 꽃을, 모자의 둥근 모양은 얼하이의 달을 상징한다고 한다.


따리고성 안 바이족 의상을 입은 여인들


중국 3대 염색 기술 바이족의 홀치기염색


중국 3대 염색기술이 바이족을 통해 아직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고성 거리 곳곳에서 염색한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바이족의 전통 염색법인 홀치기염색은 염색하기 전에 실이나 직물의 일부를 실로 견고하게 묶거나 감아서 염색약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염을 한 후, 침염법으로 염색하고 감은 실을 풀면 묶은 모양의 무늬가 나타나게 되는 염색법이다. 이 방법을 반복하면 색들이 서로 겹쳐 희미하게 얼룩진 것과 같은 여러 모양의 색조를 얻을 수 있다.


전통 염색 기술로 말리는 천들


고성 내에 사당이 있어 들어갔는데 누구의 사당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바이족은 뻔주(本主 최고의 보호 신으로 조상 숭배와 영웅 숭배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신)가 마을마다 있으며, 하나의 마을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뻔주를 모시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뻔주가 다양하며 그만큼 종교적 포용력이 큰 민족이라고 하겠다.

흰색 가옥이 특징인 바이족은 부엌에 천정이 뚫어져 있으며 잡신을 모셔둔다고 한다. 집의 정중앙 지붕 위에는 와묘(입을 크게 벌린 고양이 모양)가 있는데 재물과 복을 부르고 평안을 기원하며, 재해를 막는 구실을 한다고 한다.


지붕 위 와묘와 차안에서 본 흰집들, 고성 안에 있는 사당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얼하이호


얼하이호(洱海糊)는 창산의 18개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들어 형성된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면적이 246㎢에 이른다. (울릉도 면적의 3배 이상) 남북으로 42.6km의 길이로 호수 주변에 예쁜 카페와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이 곳곳에 있었다. 띠엔동(电动车)을 타고 호수 주변 도로를 돌면서 사진에 담았다.


얼하이호 주변 띠엔동 타는 드라이브 거리 풍경

얼하이호의 난차오펑칭타오


얼하이호에는 난차오펑칭타오(南诏風情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남조국 왕족들의 휴양지로 이용되다가 바이족의 공동묘지로 변했는데, 1997년부터 중국 정부가 모두 이장시키고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섬까지 5분 정도 걸리는 우리나라 남이섬 같은 곳이었다. 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사일모(沙壹母)"라는 청동 조각상이 보였다. 사일모는 바이족의 여시조 신으로 여신이 낳은 여덟 명의 자손이 부족의 대표가 되어 남조국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이름 모를 남국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섬이었다. 호텔 앞 관세음보살상은 242개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한다. 둘레 길처럼 잘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돌면서 멀리 창산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수면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잠시 편안함을 즐겼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선착장 근처에 오니 섬 앞 호수를 배경삼아 옆으로 누워있고, 서 있는 여인의 나체상이 보였다. 근데 그게 왜 거기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섬은 여유있게 길을 걸으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호젓한 꽤 괜찮은 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일모상
섬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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