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들은 각자 자기 다운 걸 만들고 있더라.
작년 바이브코딩이 한창 유행일 때, 나는 뭘 만들면 좋을지 몰랐다.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하던 일도 딱히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주변에 잘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뭘 만들면 좋을지 물어봤더니 당장하고 있는 일 중에 반복되는 업무가 있으면 그것부터 자동화시켜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도 썩 와닿지는 않았다. 반복 업무는 나름의 방법으로 어느 정도는 자동화가 되어있었고(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기존 PC도 간단한 자동화 기능은 기본 탑재되어 있음) 그 이상을 기대하면서 바이브코딩을 시도해 보면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실망하며 바이브코딩에 대한 기대를 거뒀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바이브코딩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런 어설픈 존재가 아니다. 지금은 정말 못 만드는 게 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만들지 못하는 게 나온다면 그건 AI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나의 능력이 문제일 거라 생각한다. 작년 바이브코딩으로 많이들 시도했던 간단한 웹사이트 만들기, 랜딩페이지 만들기 등은 요즘은 너무나 간단한 기능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과거 오랜 시간을 들여 잘 만들어 놓은 웹사이트를 넘어설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중이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에 시도했다가 실망했던 것들을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 크롤링이었다. 크롤링은 바이브코딩이 나오기 전 파이썬으로도 여러 번 시도해 봤고 바이브코딩이 나오자 더 신나게 도전해 봤던 작업이다. 그러는 동안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소소하게 부딪히는 한계가 있었는데 그건 크롤링하는 사이트의 구조가 지속적으로 조금씩 바뀐다는 점이었다. 잘 읽어올 수 있도록 사이트별로 맞춤작업을 해놔도 사이트에서 기습적으로 구조를 바꿔버리면 정보를 제대로 가져올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수정 작업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데 올해 다시 시도해 본 Agentic AI를 등에 업은 바이브코딩은 나의 불편사항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개발방향을 제안하며 실패 시 알람을 보내주고 원하면 수정까지 알아서 해줬다.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인 동시에 공포까지 엄습해 오는 이 시점에서 나는 더 이상 이게 될까 하는 망설임은 저 멀리 내던져 버리기로 했다.
그래 하고 싶은 게 생각나면 일단 해보자, 그리고 안되면 해결방법을 같이 찾아가 보자.
지금이야 말로 내 삶에서 귀찮고 반복적인 업무들을 위임해 버리기에 최적의 순간이 아닐까 싶어서 우선 나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뭔지 생각해 봤다. 요즘은 퇴사하고 딱히 마감이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궁금한 것들을 디깅 하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 교육과 투자이고 시간의 배분을 따지자면 투자에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이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장기투자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투자를 시도해 보는 중이라 실제로 공부해야 할 것도 세팅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 이거다. 이것부터 AI의 도움을 받아보자.
이렇게 시작한 나의 작은 투자시스템 구축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pre버전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3월부터 메인 개발을 할 예정이라 그전에 시스템에 익숙해질 겸 가볍게 도전해 봤는데 의외로 그럴듯하게 잘 나와서 내가 너무 AI를 얕봤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pre버전 완성을 축하할 겸 잠시 PC앞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작업들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생각해 볼수록 웃음이 나왔다. 작년 퇴사를 하기 전 나의 30대를 다 바쳐해 왔던 일, 딱 그 일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AI를 통해서 분명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것은 내가 가장 잘했던,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해와서 익숙했던 그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에 애정하는 커뮤니티 high output club에서 개최한 AI 해커톤에 참여하는 기회가 있었다. 70여 명이 모여 그 자리에서 70여 개의 프로젝트가 탄생한 순간이었는데 그걸 지켜보니 참여자들 모두가 AI라는 도구를 쥐어주니 각자 그동안 필요했던 것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업종의 종사자들이 모였던 만큼 실제로도 다양한 결과물이 나왔고 내 입장에서는 ‘저런 것도 서비스가 될 수 있구나’하고 많이 놀라기도 했었다.
이 경험까지 더해지니 결국 AI라는 것도 활용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세계가 그대로 반영되며, 만드는 그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AI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다고 느껴지지만 AI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결국 우리 인간이더라.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고 나니 AI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엔트로픽(클로드를 만든 회사)과 미국 정부의 갈등이 꽤 이슈이다. 엔트로픽의 창업자들은 과거 OpenAI 탄생에 큰 기여를 했던 연구원들로 인간을 위하는 안전한 AI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전 회사를 나와 엔트로픽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철학에 대한 그들의 의지는 꽤나 놀라운데 당장 거둬들일 수 있는 눈앞의 수익을 포기하기도 하고 감히? 미국정부에 대놓고 반발을 하기도 한다. 미국방부에 자신들의 AI 모델이 사용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 모델에 대한 신뢰를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AI 회사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엔트로픽은 클로드가 인류를 위한 AI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어긋나게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불이익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너무도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의지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각 AI의 모델이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이 반영되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엔트로픽의 신규 기능 오픈일에 맞춰 몇몇의 SaaS 기업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사실이 있었다. 클로드의 새로운 기능이 SaaS 기업들의 주수입원을 사라지게 만들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엔트로픽은 몇몇의 파트너들과 함께 개발을 한다는 식의 발표를 했고 다시 주가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참 엔트로픽 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투자시스템도 결국은 나를 닮은 시스템으로 완성이 될 것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게 수익과 직결된다면 말이다. 당연한 논리 앞에서 작디작은 개인투자자가 할 고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의도하는 대로 탄생할 시스템을 앞두고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AI라는 칼자루를 들고 어떻게 휘두를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