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학기 내내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봉사활동을 가고 다음엔 바로 수업을 가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새벽 1시까지 도서관에서 사는 삶을 반복하다 보니 무리를 해서 인지 갑자기 목과 허리 통증이 생겨버렸다.
내가 산 목, 척추 교정기
그래서 목과 허리에 도움 될만한 게 없을까 하고 아*존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목, 척추 교정기”라는 게 있었고, 가격은 한 30불 정도 했지만 내 통증에 도움이 될까 하여 냉큼 구매를 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배송이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이번에도 한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훨씬 느렸다. 거의 열흘이 다 되어가는데도 택배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동안 목과 허리가 많이 괜찮아진 탓에 그냥 취소할까 하는 마음에 재빨리 아*존 사이트에 들어가 배송상태를 체크해봤더니, 벌써 며칠 전에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떠있었다. 나는 짜증 나는 마음 반, 황당한 마음 반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 혹시나 편지함에 넣어놨나 하고 편지함도 체크해보고, 다른 집 앞에 두었나 싶어 4층, 5층까지 올라가 다른 집 문 앞도 체크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내가 시킨 “목, 척추 교정기”는 없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좀도둑들이 택배를 훔쳐가는 경우가 있는데, 하필 내가 시킨 “목, 척추 교정기”를 훔쳐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존의 경우, 고객센터에 누군가가 택배를 훔쳐갔다고 전화하면 두말없이 공짜로 새 택배를 다시 보내 주거나 환불해 주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고객센터에서 전화받은 직원은 친절하게 내 말을 들어주면서 한마디 건넸다.
“네가 그런 일이 겪다니, 정말 미안해. 내가 최대한 빨리 택배를 다시 보내줄까 아니면 환불받을래?”
30불이 엄청나게 큰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닌 데다가, 목과 척추의 통증이 많이 가셨기 때문에 나는 직원분한테 새 택배 대신 환불을 요청했고, 며칠 뒤에 내 통장으로 30불이 무사히 다시 입금되었다.
그렇게 환불을 받고 난 뒤 며칠 후가 또 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난 3시간짜리 화학 실험 수업 때문에 녹초가 되었지만, 계단을 이용해서 집으로 올라갔다. 난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계단을 이용했는데, 헬스장에 가서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운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힘든 몸을 이끌고 계단을 통해 집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계단 한구석에 오픈된 박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런데 그 박스를 보는 순간 갑자기 뭔가 싸한 느낌이 들면서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박스 겉과 안을 보니, 박스 겉에는 내 이름이, 그리고 박스 안에는 며칠 전에 도둑맞았던 나의 “목, 척추 교정기”가 들어있었다. 아마도 좀도둑이 택배를 훔쳐 간 뒤 어디에다가 쓰는지 몰라서 다시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택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CCTV 때문에 자신이 들킬 위험이 있으니 CCTV가 없는 계단에 던져놓고 간 것 같았다.
버리지 않고 다시 되돌려줬으니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도둑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난 졸지에 “목, 척추 교정기”가 생겨버렸다. 물론 지금은 목과 척추가 아프지 않아서 이게 꼭 필요한가 싶었지만, 나중에 또 아플 수도 있으니 그냥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환불까지 받은 마당에 이걸 공짜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아*존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고객센터 직원:안녕,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나: 아, 저기 내가 저번에 누가 내 택배를 훔쳐가서 환불해달라고 했었거든? 근데 환불을 받기 했는데, 도둑이 내 택배를 다시 가져다 놔서 말이야. 그래서 다시 돈을 내고 싶은데, 어디다가 어떻게 지불을 해야 하는 거야?
고객센터 직원이 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면서 갑자기 나를 향해서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객센터 직원: 어머, 너 정말 정직하다. 보통은 이렇게 전화 안 해. 나는 이런 전화받은 건 처음이야! 와! 너 정말 대단하다! 진짜! 넌 멋진 애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너 계정에 5달러 기프트 카드 넣어줄게. 이건 정말 칭찬받아야 돼. 나 정말 감동받았어. 잠시만 기다려. 너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겠니?
나는 그냥 내가 다시 돌려받은 택배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직원분이 나에게 5달러 기프트 카드를 내 계정에 넣어줬다. 사실 내가 한 행동은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라기보다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직원분에게 분에 넘치는 칭찬을 거의 5분 이상 동안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직원분이 말하기를 내가 한 행동은 너무나도 용기 있고 정직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가 받은 택배에 대한 값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할 행동으로 인해 택배도 공짜로 얻고, 덤으로 5달러 기프트 카드까지 얻은 것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처음엔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하였다. 공짜로 물건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돈까지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좀 진정되고 나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이런 사소한 행동에도 감동받는 사회가 된 걸까? 하기사 "정직하게 살면 손해야"라는 말이 만연하고, 심지어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뉴스만 봐도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 투성이고,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기까지 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화도 나고, 안타깝고 한심하고, 정말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곤 한다. 도대체 이 짧은 인생에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는 걸까? 단지 자신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인 걸까? 물론 누군가가 나보고 그럼 난 평생 내내 거짓말도 안 하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았냐고 물어본다면 나 또한 그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내가 사는 동안 최대한 해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정직함"이란 사실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행동도 아니고, 손해를 불러일으키는 행동도 아니고, 당연히 세상에서 일어나야 하는 행동이기에. 물론 당연한 행동을 노력하면서까지 행하려고 하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으니깐. 그러므로 나는 나 하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보다는 나 하나부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정직하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해보려 한다.
부디 "정직하게 살면 손해야"라는 말이 언젠간 이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말이 아닌 말도 안 되는 말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