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살가운 딸의 고백
나는 어릴 때부터 신발 때문에 발이 아팠던 기억이 없는데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발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물집은 기본에 발가락이 눌려 멍이 들거나 발톱이 빠지기 일쑤였고, 심하면 발목이나 무릎이 아파 굽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신지 못 했다.
그게 대체 언제부터인지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니
내가, 내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사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아빠는 알만한 회사의 운동화 디자이너셨다.
나는 어릴 때 남들 다 신던 걸을 때 뾱뾱 소리가 나는 신발이나 요술공주나 캐릭터가 그려진 일명 '귀여운' 신발을 신은 기억이 없는데
(심지어 하트가 그려져 있거나, 핑크색의 신발도 없었다.)
그건 아빠가 그런 신발을 싫어해서였다. 정말 대쪽 같은 취향이다.
대신 발이 답답하거나 아팠던 기억이 없다.
어디 나갈 때마다 앞코 부분을 눌러 계속 확인하며 바로 새신을 사주셨고, 애들은 빨리 자란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큰 신발을 사는 일이 없었다.
무조건. 딱 맞는. 편한 신발.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날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TV 옆에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거기엔 대여해 온 만화 비디오테이프 5개와 쪽지가 안에 들어있었다.
'딸, 어린이날 축하해. 선물 못 해줘서 미안해. 아빠가'
우와~ 비디오테이프 선물인데? 왜 미안하시지? 하며 신나 하면서도
많아봤자 초등학교 2학년, 뭣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나는 왜 마음이 울컥했을까.
나는 내 발볼이 넓은 것도, 조금 평발인 것도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걸 모르고 자랐던 게 생각해 보니 아빠만의 사랑 표현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 하게 되는.
아빠나 나나 애정 표현에 아주 소극적인 사람이다.
(우리 가족이 다 그렇다. 뻔한 말로 핑계를 대보자면 경상도 사람이라 그렇다.)
아빠들은 딸의 애교 보는 재미로 산다던데
그것 참, 아빠한테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누굴 닮아 그럴까. 난 생긴 것조차 아빠 판박이다.
표현 방식을 지금 바꾼다고 노력해 봤자 서로 하기도, 보기도 힘들 테니. 오.. 그건 하지 말고.
딸내미가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미안해 마시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지금은 애정표현이 아주 대단한 짝을 만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었다.
이건 살갑지 않은 딸내미의 아주 용기 있는 사랑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