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시점에 접어들면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익숙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영원히 곁에서 반짝일 줄 알았던 것들을 하나둘씩 배웅하는 일에 능숙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머리로는 당연한 섭리라고 되뇌지만, 상실이 남긴 구멍들로 내 마음은 점점 스펀지가 되어간다. 숭숭 뚫린 그 틈 사이로 아주 작은 바람만 스쳐도 뼈가 시린 느낌. 괜찮은 척 웃어 보이다가도 문득 찾아오는 그 서늘함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도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며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지극히 사소하고도 간절한 '이별 대처 의식' 같은 것들이다.
첫째, 회복을 위한 에너지를 강제로라도 주입할 것.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목구멍으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아도 무언가를 꼭 챙겨 먹는다. 밥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라는 엔진이 꺼지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같은 이유로 잠도 넉넉히 잔다. 잠은 슬픔을 잠시 멈춰 세우는 고마운 휴식시간이다.
둘째, 마음이 고이지 않게 흘려보낼 것.
눈물이 터지면 참지 않고 그냥 운다. 마음은 고이면 무조건 탈이 난다. 슬픔이 제 길을 찾아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나를 내버려 둔다. 길 위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올 눈물을 대비해 마스크를 쓰고 걷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셋째, 적절한 처방과 도움을 구할 것.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진통제를 먹는다. 정서적 통증이 신체적 통증과 같은 경로로 전달된다는 의학적 근거를 믿고, 약의 힘을 빌려 조금 무뎌지게 만든다. 그리고 주변에 나의 상실을 알린다. 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2차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예방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배려와 위로는 당시에는 큰 힘이 안 되는 것 같아도, 훗날 돌아보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해 준 든든한 지지대였음을 깨닫게 된다.
소중한 것을 하루아침에 잃고 나면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차피 영원할 수 없다면 왜 이토록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어 냉소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일 당장 끝날 수도, 혹은 백 년을 더 버텨내야 할 수도 있는 이 극단적인 생의 불확실성 앞에 우리는 자주 무력해진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오늘마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건 꽤나 억울한 일이다.
이별은 아프지만, 그 아픔조차 내가 뜨겁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일단은 살자. 거창한 희망 같은 것은 없어도 좋으니,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 보자. 숭숭 뚫린 마음의 구멍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