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길치

전기뱀장어 - 타고난 길치

by 아리따


나는 소위 말하는 '공간지각능력' 금수저다. (실제로 검사에서 꽤나 훌륭한 점수를 받는다. 흠흠)


마트 자율 포장대에서 내 짐의 크기에 딱 맞는 박스를 '착' 골라 테트리스하 듯 빈틈없이 채워 넣을 때, 혹은 매뉴얼 없이도 조립형 가구를 척척 맞춰낼 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감각 있다'며 엄지를 세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 감각적인 내가, 모임 단톡방에 "저 지금 제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ㅜㅜ" 하며 지도 앱을 켜고도 10분 째 같은 골목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내 머릿속의 나침반은 레고 같은 블록을 조립할 때나 작동하는 게 분명하다.


'난 직감도 좋고 공간지각능력도 좋은데 왜 매번 길을 잃는 걸까?'


하루는 문득 억울해져 찾아보니, 이건 지능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종류'가 다른 거란다.


공간지각능력에도 종류가 있는데 머릿속으로 도형을 돌려볼 수 있는 '물체 회전 능력'과, 내가 지금 지도상의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경로 탐색 능력'이 따로 있다는 거다.


나는 물체의 회전에는 강하지만 이동에는 약한, 그저 '고정형 천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길치라서 불편했던 건 주위사람들이지, 정작 나는 아니었다.


길을 잃었을 때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풍경을 자주 발견했고,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릴 만한 영감을 줍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음껏 길을 잃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종종, 기꺼이 길을 잃어야겠다.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 가사처럼,


비록 눈을 뜨고도 길을 헤매는 나지만 나의 직감은 결국 가장 멋진 곳으로 나를 이끌 테니까. 그곳엔 언제나 지도가 알려주지 않는 예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