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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희 Aug 14. 2021

Her, 그녀의 가능성

 눈이 오려나 보다.

 깊고 차분한 회색빛 하늘이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조용히 관조하듯 지켜보는 한강을 마주하며 한남대교를  건넌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보러 리움미술관에  들어선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 엘리아슨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빛,  움직임과 시간 등 비물질 요소를 시각화하고 이끼 벽, 무지개, 우주와 같이 거대한 자연을 미술과  안으로 들여와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계로 만들어진 자연 유사현상,  다양한 시각 실험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그것이 놓이는  장소를  변화시키고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여 보는 이에게 새로운 인식과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전시과 입구, 천정에서 내려진 긴 줄에 매달린 환풍기가 머리 위에서  제멋대로 떨어지며 흔들리고 있다.  이것도 작품일까. 옆 눈으로 주시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환풍기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 위에서 바람이 인다. 바람은 몸으로 느끼고  나무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바람이 환풍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연속적인 움직임으로  궤적을 만들면서 공간을 가른다.

 바람이 분다.  라일락 향이 스치는 봄바람이다. 젊은 날의 떨림과 설렘이 느껴진다.  지리산 둘레길,  머리를 맞대고  정자에 누웠을 때 졸음을 부르던 상쾌한 바람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화장장을 나올 태  살을 에는 바람을 그녀는 기억한다.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동일성'은 벽에 부착된 로봇 팔 끝에  LED 등이  달려있다. LED 등은 로봇 팔에  의해 솟아올랐다가 툭 떨어지고, 왼쪽으로 내던져졌다가 오른쪽으로 보내지며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하나의 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좇는다. 빛에 고정된 시선은 각을 이루고 원을 이루며 이어졌고,  빛이 만들어낸 궤적은 점점이 이어져 공간을 만든다.  이 작가는 그녀가 빛에 반응하듯이 빛을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따뜻한 시선으로 조용조용 따라가 본다.  빛 속에 자신을 투사해 본다.  빛은 시간이 되고,  시간은 촘촘히 이어져  한 해를,  그리고 삶을.  의식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감정과 생각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변화를 열심히 이어 보면 그녀 안에 담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순록 이끼를 미술관 한 면에 가득 채운 작품, '이끼 벽'은 아이슬란드에서 숨 쉬던 이끼를 미술과 벽으로 옮겨와 작품으로 살아나게 했다.  기존에 벽에 대한 이미지,  소통의 부재, 장막 ,  보호받는 경계  막이라는 갇힌  공간의 경험을 단숨에 바꿔버린다.  넓은 초원에 펼쳐진 잔잔한 들꽃들이  포근히 안아줄 것 같아 가까이 간다.  순간 가이드의 조용한 일침이 들리고 화들짝 놀란 근육이  재빨리 그녀를 수습한다. 살아있는 이끼에서는 희미한 건초 향이 나고 습도가 낮을 때는 연한 갈색으로, 높을 때는 연두색을 띤다고 한다.  이끼는 연한 갈색이다.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 앞에 서는 순간,  넓게 펼쳐진 은하단과 마주 선다.  우주가 황홀하다는 건 이런 장면일까. 가끔 밤하늘을 볼 때 멀리 보이던 별과는  달리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별자리와 성운에  영감을 받아 각기 다른 크기의 영롱한 빛을 발하는 금, 은구슬과 남색 노랑 보라 분홍의 유리구슬을 설치한 작품이다.  그녀는 드넓은 은하단 세상 속으로 흡인되어 그 공간을 유영한다.  드문드문 설치된  유리구슬에 거꾸로 선 모습이 비친다. 우주공간을 떠도는 우주선  안에서  애타게 지구를 찾고 있는 그녀를 보는 듯하다.  별안간 발을 딛고 서있는 지구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어둠들에 둘러싸인 '무지개 집합'은 신비감마저 감돌며 다른 세상을 펼쳐놓았다.  물과 빛으로 만들어낸 무지개가 원형의 무대에 둘러 있다.

 보드랍게 내리는 안개비를 어루만지며 비단결 장막을 걷듯 무지개 안으로 들어선다.  안은 동굴처럼 안온하고  소리는 흡입되어 낮게 깔리다가  사라져 자궁처럼 편안하다. 무지개 안으로 들어서면서  일상이 저절로 벗겨지고  머리는 리셋되어  태초의  인간으로 서 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이 동굴에 눌러살고 싶다.

 젊은 남녀가 팔을 벌려 손을 잡고 머리는 서로를 향해 기울인 채 서 있다. 실루엣이 아름답다.  무지개가 사방에서 빛을 발한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엘리아슨은 관람객을 참여시킴으로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에  친근하게 다가가 교감하면서 다양한 의미가 그녀를 깨어나게 한다. 고정적이고 상식적인  사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빛과 시간을 쫓아 가보면 숨겨져 있던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낼까. 그녀 안에 숨 쉬고 있는  바람과 빛은 무엇일까. 그들은 시간의 궤적에 따라  무엇이 되어 나타날까.  그녀의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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