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잉태한 겨울 풍경

운길산역 근처 북한강변을 산책하면서

by 북스타장

겨울의 끝자락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농부는 봄에 밭 갈고 파종할 생각으로 바쁘고,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은 새 움을 틔우기 위해 바쁠 터이다.


중년이 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취미 하나 가져보자는 마음으로...

그러나 원래 예술적인 감각이 없어서 색감이 둔하고, 구도도 어렵기만 해서 사진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좌절도 많이 해 봤다. 다른 취미를 찾아보아야 하나 생각도 많이 했다. 아직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시간 나면 카메라를 메고 나간다.


주말에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면, 어디나 그렇듯 등산객 차림이 참 많다.

부부가 같이, 동호회로 여러 사람이 같이, 나처럼 혼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전철 안에 가득하다.

운길산역... 낯설다. 북한강이 보이는 어느 즈음을 예상하고, 운길산역에서 내렸다. 아직 춥다.


막상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뭘 찍지?' 하는 생각은 늘 똑같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은 다들 산 쪽으로 향하는 모양이다. 나는 강 쪽으로 길을 잡았다.

큰 교각 앞에 서서 위를 쳐다본다. 다리의 상판 아래가 이렇게 생겼구나.

저 무거운 상판이 버티고 있는 것이 늘 신기했는데, 지탱하기 위해 많이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바쁘게 살다 보니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고들 하는데, 다리 밑에서 위를 쳐다본 일도 참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니 이런 것도 보게 되는가 보다.


운길산역에서 양수리 방향으로 건너가는 두 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전철이 지나다니고, 하나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흐린 하늘빛이 물에 내려와 더 차분한 마음을 만든다.

눈에 보이는 두 다리는 저 끝에서 맞닿아 보이는데,

실상은 절대 맞닿을 수 없어 언제나 나란히 놓여 있는 두 다리의 팽팽한 긴장감이 새삼 느껴진다.


어느 계절엔가 아름답게 꽃을 피웠을 꽃대들이 차가운 겨울 강바람을 견디며 서로를 의지하여 서 있다.

이들은 화려했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서로 더 예쁘게 보이려고 발돋움하면서 때로는 동료의 어깨를 누르고, 옆으로 밀치기도 하면서

그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처럼 생각했던 그때를 기억할까?

꽃이 지고, 앙상하게 꽃대만 남아 겨울을 보내면서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 짧았던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아쉬움으로 탄식했을까?

아니면,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간 씨앗이 봄에 싹을 틔우고, 거기서 다시 아름다운 꽃을 피울 날을 꿈꾸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흰 구름도, 무채색의 앙상한 가지도 유난히 선명해 보인다.

사진에 관심이 생기면서 '오늘 날씨는 어떤가?'하며 유난히 자주 하늘을 쳐다보고, 수시로 일기예보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자연 현상에 대해 이렇게 예민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 소풍가기 전 날, 혹시라도 비가 올까 봐 안타깝게 하늘을 바라보던 그 때 이후로...


강에는 살얼음이 남아 있고, 가족들의 옷차림도 겨울 패딩을 벗지 못했다.

그렇지만, 저 다리 건너 어딘가에는 봄이 오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저 가족도 그 봄을 맞기 위해 아직은 추운 강변에 나온 게 아닐까?

올 봄에는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과 꽃들에게 말을 걸어 보리라.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냈느냐고? 봄을 기다린 겨울이 지루하지는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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