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내가 그걸 느끼고도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 회사에서 근무한 13년 동안 네 명의 대표이사를 모셨다. 앞의 세 명은 소위 전문경영인이라 할 수 있지만, 마지막 대표이사는 오너의 가족이었는데, 나이가 나보다 어렸다.
대표이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론이 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회사 내에서 최고령자가 되어 있었고, 어린 후배들 앞에서 나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식뻘 되는 직원들과의 소통도 쉽지 않았고, 그들에게 건네는 한마디 말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물러나야 저 후배들이 진급할 텐데···‘, ’내가 젊은 후배들에게 꼰대로 비치는 건 아닐까?’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 불편했고,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대표이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말의 진의를 이해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조금은 갑작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면담이 진행될수록 서로의 본심을 얘기하니, 이후 면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동안 일에 있어서는 서로의 생각이나 스타일이 달라서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때에 와서 비로소 인간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 내가 대표이사를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표이사도 나이 많은 부하 직원 때문에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면담은 꽤 긴 시간 이어졌지만, 이미 결정된 일에 대한 후일담이었다. 눈치 빠른 직원들은 이미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대표이사의 생각이 뭔지 알고 나니, 더 이상 당황할 것도 없고, 주저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로서도 마지막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속마음은 쓰렸지만, 시원스럽게 물러서는 것이 그나마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퇴직이 결정된 이상 오래 미적거릴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곧 그만둘 상사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어색함을 내가 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날 사무실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오고 싶었지만, 우선은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29년 4개월의 직장생활이 끝나는 상황인 데다 다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이 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관한 생각,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생각을 조용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4일간의 휴가를 내서 마음을 정리한 후 금요일에 출근해서 퇴직 절차를 밟고 사무실을 정리하겠다고 하자, 대표이사는 겉으로 놀라는 것 같았지만, 내심은 고마워했을 것이다.
대표이사는 직원들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오래 같이 일하던 본부장이 갑자기 퇴직하는 일로 직원들이 동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나도 어차피 그만두는 마당에 시끄러운 잡음을 남기기는 싫었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별도로 퇴직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예하 실장 6명과 간단한 티타임을 갖는 것으로 퇴직 인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전 직원에게 직접 인사하는 게 어려우니, 메일로라도 간략하게 퇴직 인사를 남길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그만두었다.
퇴직을 결정하고 퇴근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아내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그날 일을 얘기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대표이사를 모시면서 힘들어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빨리 재취업을 해서 다시 돈을 벌겠다고 말했다. 전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겠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퇴직 시점으로부터 4~5년 전부터 인생 2막을 위한 준비를 했다. 내가 오랫동안 교육기업에서 근무했으므로 그 경력을 이어서 교육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사이버대학에 편입해서 ‘평생교육’을 공부하고,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에서 평생교육으로 석사학위 취득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종전 회사의 경력을 이용해서 좀 더 작은 교육기업에 임원으로 취업하는 것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싫었다. 그런 회사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자리가 그리 오랜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고, 스트레스는 이전보다 더 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더 들어서도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희망했다. 그래서 공부했고, 자격을 취득했던 것이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을 타진해 보니, 내 생각과는 달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평생교육사를 채용하는 곳이 생각보다 적은 데다가 대부분 2~30대 젊은 사람을 선호했다. 평생교육기관을 직접 설립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해당 경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격증만 가지고 기관 운영이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큰일을 벌이는 데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다. 비교적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일이 벽에 부딪히자, 조금씩 퇴직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에 재취업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회사 내에 있을 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다가 퇴직이라는 현실 속에 내던져지고 보니, 바깥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한여름인데도 말이다.
깊은 좌절에 빠질 상황이었지만, 이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독서 습관이었다. 가족은 나에게 변함없이 신뢰를 보냈고, 용기와 희망의 말로 격려했다. 독서 습관도 큰 힘이 됐다. 나는 퇴직 전 약 8~9개월 전부터 ‘1천 권 독서’를 실천하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 다양한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다. 나에게 이런 확실한 우군이 있었기에 냉엄한 퇴직 이후의 삶을 그나마 큰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이 내용은 곧 출간될 e_book <퇴직, 그 다음 페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