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기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완벽한 세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차이가 없으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임이 없으니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는 곳에서는 시간조차 의미를 잃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온통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밤과 낮이 나뉘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죽습니다.
이 불완전함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요?
1. 우주의 균열
빅뱅 직후, 우주는 완벽한 대칭 상태에 있었습니다.
물질과 반물질이 정확히 같은 양으로 존재했고,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은 하나로
뭉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균일하고, 차이가 없고, 구분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 완벽한 대칭이 유지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질과 반물질은 만나는 족족 서로를 소멸시키고, 결국 우주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별도, 행성도, 물도, 생명도 없는 텅 빈 무(無)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 대칭은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자발적 대칭 깨짐'이라 부릅니다. 우주가 식어가면서 완벽한 균형이 무너졌고,
물질이 반물질보다 10억 분의 1만큼, 아주 미세하게 더 남았습니다.
그 10억 분의 1의 잔여물이 별이 되고, 은하가 되고, 지구가 되고, 인간이 되었습니다.
2. 동양철학의 공망
동양철학에서 무극(無極)은 아무런 구분도, 차이도 없는 상태입니다.
빅뱅 이전의 완벽한 대칭 상태는 무극과 같습니다.
이 무극에서 태극(太極)이 생겨나고, 태극이 음(陰)과 양(陽)으로 나뉘는 순간, 비로소 세상이 시작됩니다.
음양이 나뉘지 않았다면 변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온도의 차이가 없으면 대류는 일어나지 않고, 기압의 차이가 없으면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완전한 하나의 상태, 즉 열역학적 평형 속에서는 어떤 흐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음양이 갈라지면서 세상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은 목, 화, 토, 금, 수라는 다섯 가지 기운인
오행을 낳았습니다. 오행은 다시 하늘의 기운인 천간 10글자와 땅의 기운인 지지 12글자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이 체계에는 태생적인 균열이 하나 있습니다.
천간은 10개, 지지는 12개이므로 이 둘은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주명리에서 천간과 지지는 하나씩 짝을 이루어 갑자(甲子), 을축(乙丑)과 같은 기둥을 만들어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조합이 총 60개, 이것이 60갑자입니다.
그런데 천간 10개가 지지와 순서대로 짝을 맺어 나가면, 10번째 천간이 짝을 찾고 나서도 지지는 2개가
남습니다. 교실에 의자가 12개 있는데 학생이 10명뿐인 것과 같습니다.
아무도 앉지 못하는 빈 의자 2개가 반드시 생깁니다.
이 빈 의자가 바로 공망(空亡, 비어있을 공, 사라질 망)입니다. 말 그대로 '비어서 사라진 자리'입니다.
공망은 개인의 잘못이나 선택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10과 12라는 숫자의 구조적 불일치가 만들어낸, 체계 자체의 빈자리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공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극이 음양으로 쪼개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세계는 완전함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공망은 그 선택의 흔적이며, 우리 모두가 안고 태어나는 보편적 결핍입니다.
3.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인간'이 시작되다
에덴동산은 완전한 상태의 세계입니다.
결핍도, 고통도, 죽음도 없는 세계에서 인간은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나'와 '세계'를 분리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 순간 인간은 완전함의 바깥으로 나오게 됩니다. 신학자들은 이를 '신과의 분리'라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기독교의 교리를 위한 설정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돌이켜 보면, 창세기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은 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 그 자체이다.
기독교에서 원죄는 개인이 저지른 구체적인 죄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지니게 되는 존재론적 결핍입니다.
왕이든 거지든, 선인이든 악인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완전한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왔기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신앙을 구하고, 선행을 행하고, 구원을 갈망합니다.
우주의 대칭이 깨져야 별이 태어났듯, 태극이 음양으로 갈라져야 만물이 생겨났듯,
에덴의 완전함이 깨져야 비로소 인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4. 빈자리가 만드는 삶의 방향
명리학에서 공망은 단순히 '없다'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망이 걸린 자리는 그 기운에 대한 집착이 옅어지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역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재성 (재물운)에 공망이 걸린 사람은 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물질 대신 경험이나 의미에 삶의 무게를 싣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성(명예운)에 공망이 걸린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덜 묶입니다.
남들이 직함과 자리에 매달려 소모될 때, 그 중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아닙니다.
도화지의 여백이 그림의 숨결이 되듯, 공망의 빈자리가 당신 삶의 방향과 결을 만들어갑니다.
운에서 그 기운이 흘러들어올 때에도, 공망을 가진 사람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움켜쥐려 하지 않으니 힘이 들지 않고, 힘이 들지 않으니 자연스럽습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무엇이든 흘려보낼 수 있는 유연함입니다.
기독교인이 기도와 신앙을 통해 원죄의 무게를 은총으로 바꾸듯,
명리학에서는 공망의 빈자리를 이해하고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개운(開運)의 출발이 됩니다.
5. 불완점함이라는 설계
완전한 존재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필요가 없으니 손을 뻗지 않고, 손을 뻗지 않으니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찾고, 무언가를 배우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모두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의 근본적인 설계입니다.
[명리 노트]
당신의 사주에도 비어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태극이 음양으로 쪼개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하늘의 10글자와 땅의 12글자가 어긋나지 않았다면 공망은 없었을 것이며,
에덴의 문이 닫히지 않았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쓰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완벽한 피조물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신, 불완전하되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공망이 걸린 자리는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입니다.
그곳을 억지로 채우려 할수록 에너지는 소모되고, 삶은 무거워집니다.
남들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그것이 내 공망의 자리는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비워둘 곳을 알아야, 채울 곳에 힘을 쏟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