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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Nov 30. 2023

옥례

새벽시장

달그락달그락 어두움이 깔린 부엌에 30촉 전등이 켜진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큰 솥의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세숫대야에 붓고 양동이에 들어있는 찬물도 한 바가지를 섞어서 남들이 깰까 조용히 세수를 한다. 옥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가볍게 세수를 마친 후에 안방구석 좌식 화장대에 앉아 정리되지 않은 화장품을 노련한 솜씨로 얼굴에 바른다. 립스틱으로 마무리를 하고 부엌으로 나와 밤새 자신을 태워 헌신한 연탄을 꺼내고 한편에 쌓여 있는 19공탄을 밑불과 겨냥하여 한 방에 올려놓는다. 노련하고 거침이 없다. 그 위에 냄비에 물을 부어 누룽지를 올려놓는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와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누룽지를 찬장에 있는 김치와 함께 후루룩 마시듯이 식사를 마친다. 칫솔질을 하고 어깨에 가방을 대각선으로 맨 후에 집을 나선다. 아직도 골목은 어둡다. 시장통을 지나서 한일은행 옆길로 나와 대로를 질주한다. 알레그로의 하루이다. 찬 기운에 입김이 콧등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도 청평화, 동평화, 남평화를 거쳐 평화시장까지 섭렵하며 물건을 구입한다. 상가 내부의 풍경은 요지경이다. 양쪽으로 마주하는 가게들에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옥례는 자기 물건인 양 뒤척여 원하는 물건을 봉투에 담는다. 항상 다니는 단골집에서 물건들을 낚아채듯이 꾸러미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목뼈를 철로 만들었는지 흔들림 없이 시장통을 빠져나간다. 여러 시장을 거칠수록 물건의 양이 많아져서 이제는 양손에도 가득 물건을 들려있다.  

옥례는 청계천 5가 노상의 좌판에서 장사를 한다. 두 평 남짓한 나무판 위에 물건을 깔아놓고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골라서 사 간다. 목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고른다. 씩씩하게 준비해 온 물건들을 후다닥 정리하고 이미 나와서 물을 끓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타준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동전을 건넨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뱃속으로 전달되자 의욕이 함께 달아오른다. 영하의 날씨에 하늘을 가리는 흰 천막 하나로 추위와 싸우며 생존을 위하여 오늘도 장사를 시작한다. 장사꾼들은 첫 개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유난히 징크스가 있다. 경험에서 나오는 간절한 생존의 방법이다. 일찍 착한 손님들이 후하게 물건을 사 가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 아마도 기분일 것이다. 명절 턱밑에 시장통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무리 어려워도 명절은 보내야 한다. 사람들은 손에 가득 먹거리와 설빔으로 옷가지, 신발을 구입한다. 시장통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아직 오전인데도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 걸며 큰소리치는 사람, 오가는 행인들 사이로 땀을 흘리며 지게를 지고 가는 사람까지 북새통을 이룬다. 그 틈을 비집고 큰 소리가 들린다. "골라 골라 여기가 이천 원" 태중이가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몰리며 물건을 고른다. 옥례는 좌판 중앙에 돈 통을 깔고 앉아서 손님들의 물건값 계산을 한다. 장사를 할 때에는 따로 밥때가 없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재빨리 한 끼를 때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천막 밑에 매달린 백열등을 켠다. 마치 요즈음 카페 전등 같은 연출이다. 해도 저물며 행인의 발길이 줄어든다. 시장통 상가 사이에 자리 잡은 좌판은 아마도 따로 임대차 계약서는 없는 것 같다. 점유하고 있는 주인이 구전으로 권리금을 받고 양도하여 사용하기에 보호받을 수가 없다. 각자가 알아서 비닐로 덮고 노끈으로 잘 묶어서 마무리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오늘도 옥례는 다른 가게들이 모두 불을 끄고 나서야 비로소 파장한다.

돈 통을 정리하여 검정 비닐봉지에 물건 판 돈을 넣어 몸에 묶고 겉옷을 입는다.


늦은 밤 창신동 시장 골목은 아직도 불야성이다. 서울에서 비교적 집값이 저렴하고 교통편이 좋아서 소시민들이 밀집하여 사는 동네이다. 대로에서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철수네 도나스집이 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도나스를 골라 종이봉투에 담았다. 오는 길에 열무와 대파도 구입한다. 시장 중간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튀김집이 있다. 가족들이 애용하는 가게이다. 가게 앞에 천막을 달아내어 튀김을 튀기기에  시장통에 튀김 냄새로 가득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튀김도 섞어서 한 봉투 담았다. 양손에 가득 들고 부지런히 집 문을 연다. '삐거덕 철컹' 녹슨 철문이 닫친다. 셋방을 지나 마루에 짐을 풀고 허리를 펴는데 아이들이 나와서 인사한다. "이제 오셨어요" 안방과 건넛방에서 나온 아이들은 어머니가 사 온 간식 봉투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가 묻는다. "저녁은 먹었니?" 옥례가 대답한다. "네 먹었어요." 사실 옥례는 늦은 점심으로 뱃골을 채웠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 배가 고플 텐데 장을 본 열무를 다라이에 넣는다. 겉옷을 벗고 부지런히 씻고 소금을 뿌리고 간을 한다. 후딱 열무김치가 만들어졌다. 드럼통에 채워진 물을 퍼서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옷 사이에 숨겨 온 돈 봉투를 꺼내어 방바닥에 풀었다. 수북이 쌓인 돈을 아이들이 와서 차근히 정리한다. 천 원짜리, 백 원짜리, 십 원짜리... 오늘도 옥례의 땀방울이 보물이 되어 돌아왔다. 이 돈으로 학비도 내고 적금과 보험도 들고 생활을 한다. 옥례는 여장부가 되어 가정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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