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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Jul 18. 2017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한 선배 작가의 이야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수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마치 선배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작가라는 직업으로 그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작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에 대해 그 핵심을 이야기 안에 잘 섞어서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수십 년간 작가로 살아온 그의 공력이 녹록지 않음과 동시에 인간적인 친밀함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근 17여 년을 오래 작가로 살았기에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그간의 내 인상은 인상적이고 독특한 글을 쓰는 작가지만 나 자신에게 큰 재미를 주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별로 많은 책을 읽었던 작가는 아니었는데 이 에세이에서는 그에 대해 (내 멋대로) 좀 더 많이 알게 된 기분이다.

물론 여전히 그의 작품은 나와는 조금 재미의 핀트가 맞지 않을 테지만.


[인상적인 문구]


p9

내가 본 바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가 대부분은-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또한 보아하니, 그리 큰 소리로 할 얘기는 아니지만, 칭찬하기 힘든 특수한 성향이며 기묘한 생활 습관이며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p97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 form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가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p162

물론 타인의 의견을 모두 다 덥석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개중에는 잘못 짚은 의견, 부당한 의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든 그것이 제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기에는 '뭔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견은 당신의 머리를 조금씩 냉각시켜 적절한 온도를 이끌어줍니다. 그들의 의견이란 즉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고, 당신의 책을 읽는 건 결국 세상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당신을 무시할 것입니다.


p229

우리는 그런 '효율'이라는 성급하고 위험한 가치관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고와 발상의 축을 개개인 속에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축을 공동체=커뮤니티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p391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라고.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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