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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mel Nov 29. 2022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초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퇴근한다고 사무실을 나선 팀원이 돌아왔다. 내 정직원 전환을 축하해주려고 그랬단다. 결정이 있고 일주일쯤 됐을 무렵의 일이었다. 크게 환대를 해주거나 분위기를 띄우며 축하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담백한 말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빤히 바라보는 동료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작 나는 덤덤해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졌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다.


6개월의 계약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되었다. 소감을 곱씹는 과정이 늦어진 건 큰 감흥이 없어서였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덤덤했다. 딱 ‘올 것이 왔구나’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인가부터 정규직은 그냥 이름, 즉 허울이 됐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팀에 합류했을 당시의 내 목표는 정규직 전환이었다. 실력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내 성장을 도와주겠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처음 정직원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때는 인정받았다는 마음에 기뻤다. 하지만 단기 연장으로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초기 팀이라 재정적 여유가 없어 신중할 수 있는 팀의 입장도 이해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일에는 내내 혼자만의 생각에 시달리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실망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휘둘리고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정규직은 결국 이름이고, 정규직을 통해 내가 얻는 건 연봉과 안정적인 포지션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여기서 그걸 얻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는 않나?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나 연봉은 어떤 의미인지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직함이나 직종, 회사의 명성은 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며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실력이 뒷받침되면 조직의 규모와 평판, 연봉 같은 것들은 전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좋은 사람들과 나를 성장시켜줄 환경 외에는 모두 부수적인 것들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다. 현재 팀은 내가 원하는 최고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조건은 어떻게든 좋으니 가능한 오래 이 팀에 붙어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막상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정규직이 되어 버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팀장님은 내 가장 큰 강점이 ‘변동성’이라고 이야기하곤 하셨다. 고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내색하지 않는 맷집과 자기 자신이 확신 갖기까지 섣부르게 주장하지 않는 성향, 일관적인 퍼포먼스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만든다고 하셨다. 때론 성장이 조금 더디거나 업무가 조금 늦어질 수 있어도 그것이 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문득, 깨달음이 뒤따랐다.  


‘아, 그동안 내가 팀에게 얻은 건 신뢰였구나.’


정규직과 계약직 중 일반적으로 회사가 선호하는 건 계약직이다. 정규직 채용은 복지나 처우 등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약직보다 해고가 어려워 정규직 인원에 대한 비용은 고정적으로 작용하는 반면, 이들의 퍼포먼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래서 수습기간이 있는 것도 같지만). 조직의 입장에서 굳이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싶은 사람은 고정적인 비용에 대한 가치를 안겨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규직은 신뢰의 증표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의 퍼포먼스가 팀에 어떤 기여를 할지 믿을 수 있게 되면 그에 맞는 투자를 하는 셈이다.


초기 창업 팀에서 자본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귀하다. 시간은 더더욱 금이다. 그러나 가장 희소한 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실력은 단순히 누군가의 가치를 입증하는 수단이고, 팀으로의 합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최소 조건일 뿐이다. 팀장님은 한 때 블로그에 ‘비즈니스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면 믿음의 총합을 키우는 일’이라는 내용의 글을 쓰신 적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었다.


결국 팀이 필요로 하는 건 단순히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닌 가치관을 공유하고 회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얻은 건 팀의 입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었지만, 나는 정작 그 중요한 것을 얻고 난 뒤에도 내가 얻은 것의 가치를 몰라보고 있었다. 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아직 많이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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