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딛고 있는 '평화'라는 이름의 균열된 발판

협력: 가장 고도한 인류의 문명 04

by Armel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발판 위 균열의 틈새를 파고들어 들어가고 들어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틀어져 있는 지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년 10월, 초협력자 클럽 두 번째 모임에서 클럽장님이 남긴 클로징 멘트이다. 이 날을 위해 우리는 두 번째 책으로 미군사전문가인 존 미어셰이어John Mearsheimer의 <강대국 국제 패권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를 읽었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미국의 돈으로 굴러간다


현대 사회에서 석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인터넷 사전은 석유를 두고 "없으면 사회가 바로 붕괴하는, 현대 문명 그 자체"라고 서술한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컴퓨터부터 그 옆에 있는 핸드폰, 석유 하면 보통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자동차, 그리고 심지어는 지금 입고 있는 옷까지 우리의 일상은 사실 석유를 이용한 것들 투성이이다. "일상의 70%는 석유화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의 삶은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건 산유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가능한 풍경일까?


"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고등화된 협력 체계입니다"
- 초협력자 클럽장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비산유국들은 석유 사용에 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석유를 수입해 쓰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산유국들도 석유를 수입한다는 점인데 그중에서도 이웃인 일본과 중국은 우리와 같이 주로 중동에서 원유(정제되지 않은 석유)를 수입한다. 이렇듯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듯한 당연한 팩트의 이면에는 사실 굉장히 고도로 한 협력 체계가 존재한다.


중동에서 나는 원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출처: The Fuse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원유는 중동에서 생산되어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인도양 – 말라카 해협 – 남중국해 – 동중국해 - 대한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여기, 이 익숙해 보이는 호르무즈 해협은 요즘 떠들썩한 '그 바다'가 맞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불거지기 전부터 위험하기로 악명을 떨치던 바다이다. 작년 6월에만 해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일본과 노르웨이 대형 유조선이 피격당했다는 사건이 있었던 만큼 말이다. 사실 호르무즈 해협 이외에도 이 해상 루트는 생산지부터 목적지까지 거치는 모든 경유지에 위험요소와 변수들이 도사린다. 말라카 해협의 해적으로부터 남중국해의 영토분쟁과 동중국해의 자원 분쟁까지 다양한 사건 사고가 있는 이 해상 루트가 절대로 안전할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원유 공급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해상 운송이 안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미 해군의 7함대가 이 해상루트의 안전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풍요롭게 석유를 사용할 수 있는 데는 미국과의 협력에 있다.


엥, 미국 혼자 다하는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협력이냐고?


미국은 지구를 떠받드는 아틀라스


전 세계 국가들이 이룩하고 있는 협력 시스템은 '시장경제'이다. 여기서 미국은 '안보'라는 비용을 지불한다. 무역을 통해 전 세계 시장을 통합시킴에 있어 미국의 역할과 비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고액의 비용에 상응하는 혹은 그보다 더한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무역 협력은 마치 북유럽 국가의 복지 시스템과도 얼핏 닮아있다. 개인이 각자의 소득 역량에 맞게 세금을 내는 것처럼 동맹국은 기본적으로 방위비 형태로 본인 형편에 합당한 비용을 지원하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치안을 담당하는 셈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의 경찰'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비용 지원도 받고 전 세계적인 무역시장도 구축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석이조이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일 때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두 명보다 세 명일 때 그 가능성이 더 무궁무진하다고 했던가. 이는 동맹국의 모든 나라가 자유롭게 시장 거래를 함을 의미한다. 활발한 무역 교류는 곧 동맹국의 경제적, 기술적 발전을 증진시키며 이는 시장을 통해 미국에 있어서도 혜택을 꾀할 수 있음이다. 이 협력을 통해 미국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자국의 선박만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방대한 결과와 긍정적인 명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미국과의 협력 덕분에 풍요로워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최근 행보는 심상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예고해왔던 미 국방비 예산 절감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나토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방위분담금은 동맹국과 미국이 서로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해 도출해낸 균형인데 미국의 일방적인 증액 요구는 지금까지의 과정과 외교관계를 외면하는 처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트럼프의 장사치 속셈이 굴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떠도는데 과연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결단일까?


중국은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 악당?


이러한 미국의 태세 전환에 대해 중국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어마 무시한 경제 성장을 두고 미어셰이머가 입각하는 국제관계학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중국을 단순히 아시아 지역 골목대장이 아닌 지구촌 최종 보스로 성장하고 있는 괴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중 패권경쟁의 시대>를 살짝 짚고 넘어가겠다. 미어셰이머는 국제체제에서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며, 국제관계학에 있어 뿌리 깊은 현실주의적 시각에 기반하는 세 가지 전제를 소개한다.


1. 국가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를 가진 조직은 없다.

2. 국가들은 항상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군사력을 어느 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다.

3. 어느 나라라도 결코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미어셰이머에 의하면, 어떤 나라던 간에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이므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국의 생존이다. 때문에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 없으며, 이는 군사력 보유라는 국가의 필수 요소로 직결된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자국을 소멸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간주된다. 국가들은 항상 다른 나라의 의도에 대해 우려하고, 그들 스스로의 생존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는 일, 즉 패권국이 되는 일이 최선이 된다. 국가에게 있어 권력에의 의지는 본질적인 것이며, 이는 국가들이 항상 세력균형 상태를 바꿀 기회를 넘보게 만든다. 이를 위해, 미어셰이머는 국가들은 대체로 유사한 비율로 자신의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시키며 다가올 기회를 준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책을 통해 미중 갈등을 예언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미 국방부는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며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원칙을 부정하려 한 바가 있다. 얼핏 각기 다른 움직임 같아 보이는 중국에 대한 견제 시도와 동맹국에 대한 방위분담금 증액 압박은 미국에 있어 자국의 안보 증진을 위한 신호탄으로도 비추어진다.


위의 개인이 국가라고 했을 때 우리가 믿고 있던 현재의 세계 평화는 대충 이런 모습이랄까. 출처: © Rocket Jump


미어셰이머의 관점은 그간 냉전 이후 우리가 믿고 있던 평화는 사실 모든 국가가 빙 둘러서서 한 손에는 권총 리볼버를 쥐고 총구를 옆 나라의 머리에 겨누고 있는 긴장상태임을 시사한다. 아무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딱히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거랄까. 한 국가의 군사력이 제아무리 막강해 머신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방에서 총구를 겨누는 다수의 국가 무리를 이길 수는 없듯이 작은 나라들이 일제히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도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비록 서로 앞에서는 웃고 뒤로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해도 시장경제라는 이해관계 덕분에 긴장상태라도 평화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의 성장은 필시 권총을 쥔 무리들 옆에 험악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혹은 더 큰 크기의 기관총을 조립하고 있는 적의 모습으로 비치게 된 것이다.


미국이 관계를 맺어온 국가들은 자신보다 작고 약한, 즉, 다루기 까다로운 국가는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날이 경제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국이 군사력마저 강화하기 시작한다면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중국이 언제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고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국의 국제적 지위와 안전, 그리고 현재 세계질서를 위해서라도 미국은 중국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태세 전환은 "언제 위급해질지 모르는 자국의 위상과 안보를 우선시하겠다"라고도 풀이된다.


미국의 변덕을 통해 국제 체제를 되돌아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앞으로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가 트럼프라는 유래 없는 인물의 장사치 기질에서 나왔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이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한 국가가 자국의 안보를 우선시한다라는 합리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력을 이루고 있는 많은 동맹 국가들 중, 미국 하나의 변덕으로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는 현재 체제는 결코 그 방식이 안정적인 시스템은 아녔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결국, 우리가 그간 안위하고 있는 국제시장을 만든 세계평화에는 사실 많은 부분 미국에 기대어져 유지되어 왔고, 신강대국인 중국의 성장은 여기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냉전 이후 평화의 시대는 결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차지했던 미국이 전략적으로 ‘협력’ 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클럽의 결론이었다. 현재 더 이상의 국가들 간의 전쟁이 없는 것과 전 세계 대부분의 바다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집 밖을 나갈 때 항상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 등 많은 것들은 사실 이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협력이 제공하는 혜택인 셈이다.


미국의 태세 전환은 그동안 "평화"와 균형에 안위해온 우리가 사실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시사한다. 더불어 방위비 증액 압박은 이 시대적 전환이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부여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락되면서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까지 대립하려는 것 같진 않다는 것. 하지만 다가올 제2차, 3차 미중 갈등에 대비해 우리의 처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몇 년 전 난제로 불거졌던 사드 배치 논란과 같은 문제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무작정 정치인들에게 결정권을 떠맡기기보다 국민 개개인의 차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력과 다양한 각도에서 사안을 볼 줄 아는 눈이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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