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가장 고도한 인류의 문명 05
만인의 꿈, 내 집 마련과 건물주
나는 꿈에 관해 이야기하고 꿈을 설계하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 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이 일이 나를 어디를 향해, 어디까지 이끌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나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만큼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가며 이야기를 할 때면 꼭 꿈에 대해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면 네 종류의 사람을 발견한다. 몇몇 사람들은 눈을 영롱하게 밝히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하면,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돈 많은 백수 또는 건물주라는 대답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마지막은 의외로 많은 한국 사람들의 꿈이라는 사실이다. 의아했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의 꿈이 좋아하는 활동이나 일과는 관련 없는 돈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청년들 사이에서 건물주가 떠오르면서 등가교환으로 잃어버린 꿈이 하나 있다. 바로 '내 집 마련.' 집값은 연일 오르는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불발하면서 내 집 마련이라는 이 만인의 꿈은 현재 수많은 청년들과 무주택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조사에 의하면 성인남녀 4091명 중 27.3%는 본인의 꿈을 건물주라고 대답했다.
건물주와 내 집 마련이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현실의 꿈은 한 가지 공통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가 나눠 사용하는 자연으로부터 온 토지를 온전히 나만의 소유로 삼는다는 것. 이 사실은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안착한 것일까?
당신은 본인 명의의 집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2019년 12월, 마지막 초협력자 모임을 위해 우리가 모인 날은 대한민국이 한창 부동산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을 때였다. 마지막 모임을 위한 책은 에릭 포즈너Eric Posner와 글렌 웨일Glen Wale의 <래디컬 마켓>. 부동산 문제가 떠오른 시점이 마치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마침 시의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셨을까? 클럽장님의 강력한 질문 하나가 토론의 막을 올렸다.
"이 중에 혹시 자기 명의로 된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하고자 서로 나이조차 밝히지 않았던 우리 초협력자 모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종류의 질문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눈동자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멈춘 듯했다. 곧이어, 어림잡아 열댓 명 정도의 인원이 있는 방안 천장을 향해 두 개의 손이 올라갔다. 몇몇 사람들의 표정에서 소리 없는 감탄과 부러움이 흘러나왔다. 클럽장님께서 질문을 이어 가셨다.
"당신은 <래디컬 마켓>이 제안하는 사회를 위해 현재 본인 명의로 된 집을 포기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 모두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책에서 나온 것처럼 경매를 통해 집을 임대로 갖고,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을 경우 집을 팔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가지고 계신 집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따르실 수 있나요?"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위해 책의 내용(1장)을 되짚어야 했다. 지금 내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듯이.
결국 문제는 불평등이야, 이 바보야!
<래디컬 마켓>은 2018년 하반기 출간되기 전부터 미국에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책에 실린 찬사가 이렇게나 많았던 책은 처음 봤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장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뒤엎는 제안 때문이다. 이는 연초 화제가 되었던 <기생충>이 제기하는 것과 같이 '불평등'에 뿌리를 둔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 다 제쳐두고 이야기해보자면 저자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세 줄로 요약할 수 있다.
1. 우리가 앓고 있는 불평등은 사실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한 시장 경제에서 기인했다
2. 현재 시장경제 시스템이 갖고 있는 사유 재산권은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3. 자기 소유 공동 평가제를 이용해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장을 급진적으로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포즈너에 의하면, 탈식민지화 이후 1970년부터 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리면서 국가들 간의 불평등은 20%가량 감소했지만 선진국 내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세계화를 이루면서 전 세계 사람, 회사, 정부의 연결이 가능해진 시대에 "전 지구적인 불평등은 감소했다는 사실은 불평등이 자유 시장보다는 식민지화와 폐쇄 경제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가 흔히 그동안 알고 있던 자본주의와 자유에 대한 역사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손: 근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고전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미스는 자신의 대표작인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처음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위대한 역작 두 권,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단 두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상당 기간 동안 보수 정치인과 자본주의자의 최애 인용구로써 자리 잡았다. 역설을 좋아했던 스미스의 기질 때문이었을까?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21세기에 들어서야 재조명되면서 곧 근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설이 되었다.
'자유로운 시장' 혹은 '자유시장경제체제'라는 말을 살다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두 단어에 공통으로 들어간 '자유 시장'은 현시대의 보수 정치인들과 자본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이 자유 시장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전제로, 모든 경제적 거래가 정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이 실시되어 시장을 이루는 시스템을 말한다. 스미스는 1)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 하며, 2) 교역의 욕구를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정부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아도 시장은 스스로 활성화되고, 경제는 성장하며, 고용은 증가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양조장,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분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이기심 덕분이다."
- 아담 스미스
위와 같은 그의 가장 유명한 인용문처럼 스미스는 개인이 순수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사회 전체가 이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보수 정치인들과 자본주의자들은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려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하며 정부의 개입을 거부해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 시장론의 기본 사상으로 자본주의를 수호해왔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재차 반복되어온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를 비롯한 경제위기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도록 만들었다. <국부론>과 함께 <도덕감정론>을 다시금 파헤친 학자들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동안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오용되어 왔음을 밝혔다. 사실 인류가 현재 앓고 있는 불평등은 스미스가 이전부터 고심해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는 "귀족 계층을 위해 존재하고, 시장 경제와 어울리지 않는 법적·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한다고 확신"했다. 스미스가 주장한 요점은 시장이 도덕을 기초로 할 때, 즉 사회 정의의 통제 하에 보이지 않는 손은 가장 자유롭게 작동한다는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의 경제 활동에서의 자유를 강조한 것이고, 시장이 규제해야 할 주체는 경제 생산 활동의 주체인 셈이다. 따라서, 그는 법을 통해 경제 생산 주체들의 회합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시장을 단순히 생산성 증진을 위한 도구가 아닌 더 깊은 의미에서 평등을 이루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여전히 불평등, 불평등, 불평등!!!
스미스가 몇 백 년 전부터 지적한 불평등이란 문제는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됐을까? 불평등은 자본주의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을까? 이는 정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의 농노제로부터 왔다. 당시에는 가문의 영주들이 상당 양의 땅과 농노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같은 소수의 독점 형태는 거래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여기에 18세기 말, 19세기에 지역 간 거래가 활성화하고 산업화가 시작하면서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로 인해 농노제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토지와 노동력이었다.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사업가들이 공장을 지어 가동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문의 영주들로부터 땅을 확보하고 그들의 농노를 노동자로 고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데는 영국의 스미스와 같은 급진적인 개혁가들의 영향도 한 몫했다. 급진적 개혁가들은 재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분배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재산권의 확립과 자유로운 재산의 행사를 옹호했다. 봉건주의 영주들이 가진 특권과 전통은 이에 반한다고 여겨졌다. 더불어, 급진적 개혁가들은 재산권의 확립을 위해 공동 소유 부지를 사유 재산으로 삼는 데 대해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부상은 19세기 미증유의 경제 발전 덕분에 별 다른 반감 없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불평등은 여전히 팽배했다. 봉건사회에서는 영주와 농노로 존재하던 구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Bourgeosis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의 형태로 재현되었다. 이를 처음으로 문제 삼은 건 <진보와 빈곤>을 쓴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였다.
19세기에는 부를 창출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증기 기관, 전기, 기계화, 전문화, 새로운 사업 방식은 노동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다... 이런 새로운 힘들이 사회의 기저부터 영향을 미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물질적 결핍을 걱정할 필요 없게 만들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비자발적 실업과 낭비되는 자본에 대한 불평을 들을 수 있다. 물질적 풍요가 극대화되었는데도 왜 절대적 빈곤, 힘겨운 생존 투쟁, 최악의 비자발적 실업을 목도해야 하는가? 빈곤과 진보의 관계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
- 헨리 조지
조지는 산업화를 통해 이룩한 진보에 대해 사회는 비약적인 경제적, 산업적 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빈곤이란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역작인 <진보와 빈곤>은 사회주의 비평가들로 하여금 스미스가 강조하는 효율성에는 동조하지만 사유 재산권을 통한 효율성의 달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하였다.
부라는 이름의 독점 권력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유명한 일화 중 미다스 왕의 이야기가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를 구해준 대가로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얻는 미다스 왕은 처음에는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게 금이 되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지만, 이내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변해버린 후에야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디오니소스의 도움으로 미다스 왕은 강에 머리와 몸을 담금으로써 만물을 황금으로 만드는 능력을 강에 이전시키고 시골로 내려가 자연의 신인 판을 숭배하며 살았다. 미다스 왕이 몸을 담근 이 강이 팍톨로스 강이다. <정치학>에 등장하는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화폐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황금만능주의와 함께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가장 아낀다는 점을 일찍이 간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유 재산권을 문제로 삼은 의견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19세기 후반 사회주의자들이 사유 재산권과 소유에 대한 불평등이 사회 번영, 복지, 정치적 질서에 심각한 도전을 던진다는 데 동의하면서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20세기 경제사상을 형성하는 데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ma Stanley Jevons는 "사유 재산권은 독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라고 말했을 만큼 깊은 반감을 품고 있었다. 또한, 미시경제학의 원류인 레옹 발라스Léon Walras는 토지에 대한 사유 재산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발라스는 토지의 소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유로운 경쟁의 긍정적인 효과를 저해함으로, 토지의 임대료는 국가의 소유 하에 대중에게 환원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발라스의 토지 소유에 관한 주장은 사회주의와 굉장히 유사한 모양새를 갖춘다. 그도 그럴 게, 발라스는 본인의 소유권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인위적 사회주의Synthetic Socialism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발라스는 중앙집중식 계획 방식에 반대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발라스의 사유는 자본주의가 가진 기업 집중식 계획과 사회주의가 가진 중앙집중식 계획 간의 치명적이고 공통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바로 권력을 갖는 계획자 자신이 토지를 독점 삼아 봉견 영주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포즈너 또한 21세기에도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싸움이 자유와 규제의 사이에서 같은 리스크를 짊어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결국, 우리는 몇 세기에 걸쳐 사상의 빈곤을 안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셈인 걸까?
공산주의는 이제 물러가라! 비크리 코먼스가 새 시대의 이상향이다!
앞서, 자본주의가 들어서고 불평등에 관한 문제제기를 했던 헨리 조지는 독점 문제의 해결에 관해 국유제보다 공동 소유제를 제안한 바 있다. 조지는 토지를 세금으로 환수한 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공동 소유제를 무난하게 실행할 수 있을 거라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게 이상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협력자 시리즈 2편의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 보았듯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투자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포즈너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통해 배운 '경쟁'이라는 요소를 덧붙여 비크리 코먼스Vickrey Commons라는 획기적인 제안을 꺼낸다.
비크리 코먼스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저명한 학자인 윌리엄 스펜서 비크리William Spencer Vickrey의 이름에서 따온 이상향을 말한다. 비크리 코먼스에서는 우리가 흔히 '가진다'라고 규정하는 소유에 관한 개념이 철폐되고 모든 재물에 관해 임대권을 갖으며 모든 재물은 '상시' 경매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재물이든 간에 이 시장 경매를 통해 물건의 '임대권'을 갖는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란 말인가! 비크리 코먼스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즈너가 소개하는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로 부분적 공동 소유제와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이다.
우선 부분적 공동 소유제는 단일한 재산권 제도 아래 배분과 투자의 효율을 최적화하기 위한 제도로 회사와 같은 소유권 문제를 중심으로 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이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공동 창업자가 갈라선다고 할 때 지분을 나누기 위해 미국 법조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텍사스 슛아웃Texas Shoot-out을 적용한다. 텍사스 슛아웃은 당사자가 동시에 회사 가치에 대한 평가액을 제시하고 더 높은 평가를 매긴 사람이 이겨 회사를 갖되, 두 평가액의 평균 액수를 다른 당사자에게 지불함으로써 구매하는 방식이다.
부분적 공동 소유제가 단일한 재산권의 질서를 위한 장치라면,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시장의 질서를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소유권의 철폐와 임대권에 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포즈너의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개인의 부에 관한 소유권을 임대권으로 돌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임차 계약 행위'로 전환한다. 임대를 위한 비용은 임차 계약을 맺고 있는 당사자가 그 물건의 가치를 직접 책정해서 원하는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다. 이 제도의 이름인 '자기평가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에서 '소유자'는 자기 평가로 정해진 가격에 어떤 물건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물건의 임대권을 무조건 넘겨야 한다. 가격을 무조건 높게 부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소유자'는 자기 평가를 할 때에 물건의 '이전율'과 '세율'을 고려해야 한다. 이전율은 물건의 구매자가 나타날 확률이고, 세율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지불하는 세금을 말한다. 이 두 장치는 비크리 코먼스에서 시장의 질서를 담당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가진 집의 이전율과 세율이 40%라고 했을 경우, A는 이 집의 이전율을 고려해 실제 가치에 40%를 더 높게 책정해 경매에 부칠 수 있다. 이 경우, A는 집의 원값의 4할만큼 편익을 얻는다. 그러나, 소유하는 동안 집의 실제 가치에다 40%에 해당하는 가치를 더해 세금을 지불한다. 만약 A가 이 집을 팔고 싶어질 경우, 40%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으므로 4할의 편익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A는 집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40%의 인상된 세금 또한 내게 된다. 결론적으로 가격을 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편익과 인상되는 세금이 서로 상쇄하기 때문에 A는 집을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경매에 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 포즈너의 비크리 코먼스를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질문에 다다른다. "누가 경매를 관리하고 주도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권력의 독점을 우려한 포즈너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헨리 조지가 제안했던 공동 소유제를 기반으로 채택한다. 포즈너는 이전까지 이런 국가적 단위의 대규모 경매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면, 현재 인간의 기술력은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경매시장을 만들어 진정한 의미의 자유 시장을 이룩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비크리 코먼스라는 새로운 사회 제도 아래에서는, 정부의 개입도 없고 기업의 독점 행포도 없이 우리 모두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생산과 소비 활동에의 참여가 시장과 경제를 움직이게 된다.
포즈너의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시카고 대학의 교수였던 아놀드 하버거Arnold Harberger 교수가 중남미 국가에 제안했던 재산세 제도를 기초로 한다. 하버거 교수는 세수를 위해 올바른 자기 평가 제도를 주장했으나 포즈너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올바른 자기 평가 제도가 이전부터 골칫거리를 썩였던 독점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제안하는 비크리 코먼스라는 이론은 독점 문제뿐 아니라 정부가 세수를 올리기 위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부과하는 세금의 필요성을 감소시킬 것이며, 더불어 전체적인 경매를 통한 경제는 돈의 추적을 용이하고 분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비크리 코먼스를 상상해보다
자, 비크리 코먼스라는 먼 길을 왔으니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에릭 포즈너가 제안하는 비크리 코먼스를 현재 한국이 앓고 있는 부동산에 적용할 수 있다면, 당신은 찬성할 수 있겠는가? 초협력자 클럽의 멤버들의 의견은 처음에 팽팽하게 갈렸으나 열띤 토론 이후 절반 이상이 찬성한다는 쪽으로 표를 옮겼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재정립했고 클럽장님께서 추가로 몇 가지를 더 정리해주셨다.
1. 비크리 코먼스의 경매를 부동산에 도입했을 때의 그림은 의외로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집을 임대의 개념으로 소유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전세로 집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은 이미 여러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전세로 집을 임대한다.
2. 경매 제도의 도입 초기에 어마어마한 혼란이 있을 것이며 곧 모든 거주구가 사람들의 경제적 재량에 맞게 분리될 것이다. 우리가 비크리 코먼스 경매에서 가장 문제로 삼은 부분은 '낙찰에 대한 방어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도입 초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량에 맞는 집을 찾을 때까지 사고파는 행위가 반복될 거라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는 물론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는 점 또한 말이다.
3. 낙찰에 대한 방어권이 없다는 사실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괴롭히기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우려를 낳는다. 돈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아 그 사람이 이사하는 집마다 족족 입찰을 해버릴 수 있다는 점은 비크리 코먼스 마저도 가진 자의 폭력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4. 상업구와 주거구를 분리시켜 도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상업구에서 건물과 토지의 가치가 책정되는 방식에는 각자의 상업의 역할이 큰 비중을 담당한다. 그리고 개인 혹은 몇몇 상업은 이는 자릿값 상승에 있어 무임승차를 발생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로수길에 아주 맛없기로 유명한 포장마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거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포장마차의 음식 맛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포장마차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로수길의 다른 상권들은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방문객이 늘어난다고 했을 때, 이 거리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포장마차가 위치한 자리의 가치도 자연스레 같이 상승할 것이다. 이 경우, 이 포장마차의 주인은 이 상업구의 가치가 오르는 데 아무 공헌도 하지 않고 더 비싼 값에 포장마차의 자리를 팔아 수익을 챙길 수 있다.
5. 비크리 코먼스는 아직 초기 단계의, 그야말로 날것의 아이디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몇 가지 같이 아직은 허공에 뜬 이야기처럼 들리는 면이 있으며 부동산에만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현실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하지만 그런데도 굉장히 간결하고 깔끔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초협력자 클럽에서 여기까지 다다를 때 즈음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내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어떻게 협력과 연관되는 거지?"
마침, 클럽장님께서 입을 떼셨다.
협력의 딜레마와 비크리 코먼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두 가지는 '소유'와 이 '자기 평가제'입니다. 이 책의 1장의 제목을 기억하시나요? 바로 '소유는 독점이다'입니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고도의 협력체인 시장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초협력자>를 읽을 때 이야기했던 협력의 딜레마를 깨버립니다."
우리는 흔히 부동산에서 삼성이 어떤 땅 위에 건물을 지으면 그 주변 부지의 가치도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전체에서 발생하는 초과수익이 전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소수에게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유행하는 재테크의 방식 중 하나가 서울에 얻을 수 있는 집을 사 가격이 오를 때까지 버티는 방식이다.
이 같은 현상에 있어 '서울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리적인 구조도 한몫하고 있지만 포즈너는 더욱이 근본적으로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개인에 부여하는 '소유권'에 주목한다. '소유'라는 행위는 곧 온전히 나만의 것, 즉 '독점'이라는 행위와 직결된다.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곧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 우리가 가진 시장에 있어서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암시한다. 바로, '시장은 공익 추구와 사익 추구를 일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소유의 문제에 대해 포즈너의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새로운 전환을 제시한다. 공동 소유 자기평가제는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폐지한다.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에 대해 갖는 주관적인 애착과 객관적인 가치를 분리시킨다. 다시 한번 집을 생각해보자. 집의 매매값은 전셋값보다 비싸다. 집의 '소유'와 '애착'에 대한 비용이 이 둘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유와 애착에 대한 가치는 집을 소유함이 가져다주는 안정성과 주변 부지와 건물로 인해 가치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소유의 권한을 폐지한다는 이야기는 곧 어떤 물건을 객관적인 기준에서 책정한 가치로 누구든 평등하게 그 가치에 반영되는 값을 치르고 임시로 소유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가 된다.
소유권은 인간의 협력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나는 이전에 초협력자 시리즈 2편의 마지막에서 협력의 딜레마를 소개했다. 인간의 협력은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일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협력과 배신의 기로에서 서게 된다. 협력과 배신에 대한 고민은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한다'라는 본질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협력이 사익과 공익이 분리된 구조라는 지점을 꼬집는다. 그리고 이는 위에서 언급한 시장과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
협력의 시각에서 시장을 바라본다는 일은 곧 같은 본질을 바라본다는 의미로도 성립한다.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누군가의 이익은 누군가에게 손실을 초래하는 걸 보면서 어떤 단위에서의 협력은 다른 어떤 단위에서는 배신이라는 사실을 짚어냈다. 그러나 소유권의 폐지는 이 협력과 배신의 본질에 있는 공익과 사익이 상충하는 지점을 무마시킨다. 이 둘의 일치는 내가 초협력자를 읽은 후 갖고 있던 초협력자 시리즈 번외편에 남긴 개인적인 질문에도 답한다. 어쩌면 이 작은 책이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 초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초협력자 클럽을 하면서 문제를 바라볼 때 그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을 길렀다. 초협력자 시리즈를 통해 우리 인간이 가진 협력이라는 문화와 조건, 그리고 그 선택을 결정짓는 본질에 대해 탐구했다. 이 어려운 글을 쓰면서도 나름의 공부가 되었고 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 또 새로운 시각을 얻은 듯하다. 이 길고 어려운 글 따라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