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서 여자라서는 이제 그만

by 박희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채널 A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는 ' bye Seoul 여기 살래?' 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야구선수 양준혁과 그의 예비 신부라는 분이 나와 결혼 후 살아갈 모습에 대해 보여주는 프로그램 같았다. 야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양준혁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고 '뭉치면 찬다'라는 축구예능에 나온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 예능에 나온 양준혁의 이미지는 어딘가 무뚝뚝하면서도 수더분한 쪽이었다. 늦게 나마 인연을 만나 결혼한다는 연예뉴스를 봤을 때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 bye Seoul 여기 살래?' 를 계속 보다가 놀란 부분이 있다. 양준혁과 그의 예비 신부가 결혼 후 서로가 지켰으면 하는 규칙을 정해서 알려주자고 하며 자신의 요구사항 비슷한 걸 말하는 부분이었다.


양준혁은 예비 신부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바라며 아침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이에 예비 신부는 노력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는데 삐지지 않기 스킨쉽 많이 하기를 말했고 마지막으로 꼭 들어줬으면 하는 요구사항을 말한다. 그녀의 요구사항은 바로 "전 재산을 공동명의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양준혁은 '개떡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예비신부는 좀 겸연쩍어 하며 자신이 양준혁의 내조를 잘하면 양준혁이 돈을 열심히 벌어올것이라는 말로 설득했다. 그녀의 말에 양준혁은 발끈 했고 끝끝내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씁쓸한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 예능임을 감안하고서라도 두사람이 결혼 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역할의 이미지가 너무나 보수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두 사람의 대화가 모두 설정이었다면 내가 느낀 불쾌한 감정은 프로그램을 만든 PD의 탓이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느낀 감정이야 각자의 몫이니 어쩔 수 없다. 그냥 욕 조금 하고 다시 그 프로를 보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만약 저 상황이 설정이 아니고 두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였다면 문제는 좀 다르다. 아무도 없는 혹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눈 대화라면 고개는 끄떡여진다. 그야말로 사적인 대화, 사적인 생각이나까.


그러나 누구나 볼수 있는 TV프로그램에서 나누는 대화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그 대화 속에 녹아있다. 결혼을 통해 남자는 무엇을 기대하고 여자는 무엇을 기대하는지 말이다. 양준혁의 나이가 많아 혹은 성향이 보수적이라 그렇지 않을까, 예비 신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 여자가 그 정도 기대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자는 당연히 돈을 벌어 오고 여자는 결혼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해주는 역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그것도 TV 방송을 빌어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의무적으로 양성평등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도 남자라서 여자라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제한받는 것에 예민하다. 사소한 작은 역할에도 이러한데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는 오죽하랴.


코로나로 세상은 또 한번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앞에 두고 화상으로 수업을 한다. 남자라서 데이트할 때 돈을 내고 남자라서 결혼할 때 집을 사고 여자라서 결혼하면 아침밥을 해야하고 여자라서 내조를 해야하는 이런 생각들을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건 이제 좀 사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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