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를 기억하며

체팔루 어느 멋진 저녁

by 박희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소설가 김영하가 시칠리아를 여행한 후 쓴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 이런 문장이 있다.


"돌아보면 지난 시칠리아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있을 것들은 모두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짱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한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고 있지만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늘 함정이었다. 소설가의 예리한 감성은 그 상실감을 간파했고 그는 시칠리로 떠나 한동안 여행을 했다. 소설가는 시칠리에서 다양한 경험(고생)을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에게 시칠리 여행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김영하의 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고 여전히 여행을 다니고 싶지만 예전과 같은 떨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칠리가 내게 그 떨림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떠나기로 했다. 이탈리아로 가는 이들은 많았지만 정작 시칠리를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보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대중교통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확신 없이 떠난 여행. 그러나 그래서 더 재미있고 떨렸던 시칠리 여행이었다.


쿠바의 하바나를 떠올리게 했던 시칠리의 주도 팔레르모

시네마 천국의 배경으로 유명한 노을이 아름다웠던 체팔루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었다는 에리체

와인과 소금 염전의 추억 마르살라

우울한 잿빛 도시 카타니아

자전거 타고 누린 자연의 호사 파빅나냐

고대 유적이 주는 짜릿한 유혹 아그리젠토

지중해를 품은 말레나의 도시 시라쿠사

따뜻한 바람이 마음을 품어주던 중세도시 라구사

초콜릿 그라니따의 추억 모디카

비와 함께한 그리스식 극장 타오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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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시칠리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때로는 좋았고 때로는 힘들었다. 지금도 나는 시칠리에서 렌트를 해서 여행하지 않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편했겠지만 기차 창문 너머로 보이던 시칠리의 아름다운 풍경들 낡은 버스에서 만난 시칠리 사람들의 친절함을 만나지는 못했을 테니까.


누군가 내게 다시 시칠리로 여행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Yes! Why not!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