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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Feb 23. 2023

미키 마우스의 피칸 파이

시간을 먹다


8살쯤 되었을까. 디즈니 만화동산에서 미키 마우스가 피칸파이를 먹는 장면을 보고 나는 엄마에게 “피칸 파이!! 엄마 나도 나도 피칸 파이!!”하며 엄마에게 뛰어갔었다.

엄마는 다음날부터 베이킹 수업을 들으러 다녔고 우리 엄마는 그제야,


피칸 파이가 호두 파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엄마가 기쁘고 자랑스럽게 나에게 내민 피칸 파이를 먹어본 나는


미키 마우스가 별로 맛없는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는데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구나,라는 것도 배웠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아빠를 위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었다.

때로는 그것이 구멍이 엄청나게 넓은 레이스 커튼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눈이 짝짝이로 달린 산타할아버지 인형일 때도 있었고,

가끔은 말도 못 하게 달기만 한 사과 잼 일 적도 있었다.


우리 집은 늘 엄마로 가득했다.

엄마가 내는 소리, 엄마가 내는 향기, 엄마가 내는 온기까지.


그렇게 나는,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라나,


아내가 되었다.


오늘 저녁에 나는 케이크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하여 베이킹 클래스를 들으러 간다.

물론 내가 기쁘고 자랑스럽게 내민 케이크를 맛본 남편은


우리 색시가 가엽게도 헛된 짓을 하였구나.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느꼈던 맛없는 것을 먹는 행복을 우리 남편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큰 욕심은 아닐 거라 믿어 본다.


내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행복해질 남편을 생각하면

20대로 보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이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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