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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Feb 26. 2023

보리차를 끓이며

한잔의 컵에 담는 우주

주말의 부엌은 소란스럽다.

여러번의 요리와 설거지를 겪고 평소보다 다소 피로해보이는 주방(을 사칭한 나…)을 깨끗하게 치우며 마지막 루틴을 향해 경건하게 마음을 편다.

부엌과 나의 마지막 루틴은 바로 보리차를 끓이는 일.

파스타를 삶는 용도로 쓰이는 파스타 냄비는 보리차 끓이는 역할을 맡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습관처럼 물을 마시는 우리 가족을 감당할 만큼 용량이 큰 이유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물이 끓는 것을 감상하기 좋게 모양새가 높고 깊다는 것이다.




물은 은하수로 끓는다.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작고 엷은 것이 반짝이며 하나 둘 올라온다.

반짝이는 것들이 무수해져 은하수가 될 무렵,

반짝임은 체리 씨앗으로 커지고, 체리 씨앗은 얼만치 보글거리다,

탱탱볼이 되어 탱글탱글 튀어다닌다. 물방울이 탱탱볼이 되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세어지면 불을 끄고 보리티백을 넣는다.

낱개로 튀어오르던 별들이 모여 거대한 블랙홀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의 기쁨이란.


나에게 보리차를 끓이는 행위는 우주를 그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뜨거운 냄비 뚜껑을 열어 튼튼한 머그컵으로 우물을 퍼내듯 듬뿍 첫 잔을 퍼낸다.

그리곤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보리차를 왼쪽 심장에 가만히 대본다.

아, 따뜻해.


나의 우주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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